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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통수 맞은 한국 ‘경악’…미국 신뢰 ‘흔들’

Los Angeles

2025.09.10 1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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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아 공장 급습…한국인 300여명 구금
수갑 채워져 끌려가는 직원 모습에 ‘충격’
투자 확대 약속에도 대규모 연행 ‘배신감’

전문인력 비자 발급 난관 기업 부담 가중
추가 단속 예고에 투자 기업들 불안 확산
미국 공장 건설 중단, 프로젝트 조정 고려

원문은 LA타임스 9월10일자 “ICE raid at Hyundai rattles Asian execs” 기사입니다.

9일 서울 종로구 주한미국대사관 앞에서 외국인이주노동운동협의회 등 이주인권단체들이 조지아에서 한국인 노동자들을 체포한 미국 이민세관단속국(ICE)을 규탄하고 있다. [연합뉴스]

9일 서울 종로구 주한미국대사관 앞에서 외국인이주노동운동협의회 등 이주인권단체들이 조지아에서 한국인 노동자들을 체포한 미국 이민세관단속국(ICE)을 규탄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주 조지아주에서 수백 명의 한국인 근로자가 이민단속에 대거 연행된 사건은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기업들에 불편한 메시지를 던졌다. 미국은 투자를 원하지만, 그 대가로 특별 대우를 기대하지는 말라는 신호다.
 
수갑에 채워져 범죄자처럼 끌려가는 직원들의 모습은 한국 사회를 충격에 빠뜨렸다. 자동차 업계 관계자들과 전문가들은 벌써 대형 투자 프로젝트들이 지연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전했다. 일부는 이번 사태가 기업들로 하여금 미국 투자 자체를 재고하게 만들 수 있다고 내다봤다.
 
한국 대덕대학의 자동차 산업 전문가 이호근 교수는 “앞으로 기업들이 미국 투자를 더 신중히 할 수밖에 없다”며 “상황이 더 악화된다면 장기적으로는 미국 시장 대신 중남미, 유럽, 중동 등 다른 지역으로 눈을 돌릴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이번 단속은 조지아주 엘라벨에 위치한 HL-GA 배터리 공장을 겨냥했다. 이곳은 현대차와 한국의 LG에너지솔루션이 전기차 배터리 공급을 위해 설립한 합작 법인이다. 기아차 역시 이 공장에서 배터리를 공급받을 예정이다. 기아는 이미 조지아주 웨스트포인트 공장에 수억 달러를 투자한 바 있다.
 
이민 당국이 지난 4일 조지아주 현대차그룹-LG에너지솔루션의 합작 배터리 공장 건설현장에서 벌인 불법체류자 고용 단속 현장 영상을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했다. [ICE 영상 캡처]

이민 당국이 지난 4일 조지아주 현대차그룹-LG에너지솔루션의 합작 배터리 공장 건설현장에서 벌인 불법체류자 고용 단속 현장 영상을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했다. [ICE 영상 캡처]

타미 오버비 전 주한 미상공회의소 회장은 “이번 사태는 트럼프 행정부의 상충되는 정책 우선순위를 여실히 드러냈다”며 “아시아에서는 ‘미국에 중요한 것이 이민 단속이냐, 아니면 양질의 해외 투자인가’라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수백 명의 한국인 직원이 범죄자처럼 대우받는 장면이 아시아 전역에 방송되고 있는데, 이는 트럼프 대통령이 내세운 첨단 제조업 부활 구상과 전혀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한국은 미국의 최대 교역국 중 하나다. 양국은 지난해 상품과 서비스 2425억 달러어치를 교환했다. 미국은 한국 해외투자의 최대 수혜국으로, 지난해에만 260억 달러를 끌어들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조지아 공장과 같은 대규모 프로젝트에 미국 제조업 부흥의 미래를 걸고 있다. 현대차는 1980년대 미국 시장 진출 이후 지금까지 약 200억 달러를 투자했으며, 지난해 미국에서만 83만여 대의 차량을 판매했다.
 
특히 캘리포니아는 현대차의 핵심 시장으로, 70개 이상의 대리점이 운영되고 있다. 현대차는 올해 루이지애나주에 제철소 신설과 기존 공장 업그레이드에 추가로 260억 달러를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이 같은 확대 계획은 지난 7월 말 한국이 약속한 1500억 달러 규모 대미 투자 패키지의 일환이었다. 당시 한국은 이를 통해 트럼프가 예고한 25% 관세를 15%로 낮추도록 설득했다.
 
삼성전자 역시 텍사스주에 370억 달러를 들여 반도체 공장을 건설하겠다고 발표했다. 조선업계도 대규모 투자를 계획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 단속 이후 한국 기업들은 한층 불안해졌다. 미국 당국이 추가 단속을 예고했기 때문이다.
 
톰 호먼 백악관 국경 자문은 8일 “더 많은 현장 단속을 실시할 것”이라며 “불법 이민자를 고용하는 이유는 그들을 더 힘들게 일하게 하고, 더 적은 임금을 주며, 미국 시민을 고용하는 경쟁자를 약화시키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한국 기업 상당수가 미국 출장이나 근무자 파견을 전면 중단했으며, 이미 주재 중인 직원을 소환하는 조치까지 취하고 있다. 최소 22곳의 미국 공장 건설 현장이 멈춰섰다는 보도도 나왔다.
 
한국경제신문은 14개 기업을 조사한 결과, 10곳이 조지아 단속 여파로 미국 내 프로젝트 조정을 고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가 대규모 프로젝트들에 큰 걸림돌이 될 것으로 본다. 미국 내 공장 가동에는 한국의 엔지니어링 인력이 필수적이지만, 이들에게 적합한 취업비자를 받기는 쉽지 않다. 시간이 오래 걸릴 뿐 아니라 절차도 까다롭다.
 
이 때문에 많은 기업이 단기 체류 허용 프로그램인 ESTA(전자여행허가제)를 편법적으로 활용해 왔다. ESTA는 관광 목적 단기 체류만 허용하며 취업은 금지돼 있다. 싱가포르나 멕시코처럼 숙련인력 비자 협정을 맺지 못한 한국으로서는 이 같은 방식 외에는 뾰족한 수가 없었다.
 
LG에너지솔루션 협력업체의 한 관계자는 “미국이 투자를 요구하면서도 현지 공장 초기 가동에 필요한 한국 전문가 투입은 보장하지 않고 있다”며 “앞으로는 ESTA 활용도 불가능해졌다”고 토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소셜미디어 계정에 “한국 기업들이 필요한 인력을 합법적으로 데려올 수 있도록 신속하게 지원하겠다”면서도 “미국의 이민법을 반드시 존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투자는 환영한다. 영리하고 유능한 인재들을 합법적으로 데려오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시드니 세일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선임자문은 “이번 단속 시점은 기업들에 불편한 자극이 됐지만, 결국 조정 과정을 거치게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비자 발급 등 모든 관련 주체들에게 과제가 주어졌으며, 앞으로 기업들은 더욱 조심스러워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글=맥스 김, 나일레시 크리스토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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