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식집 가서 초고추장을 찾으면 스시맨들한테 회 먹을 줄 모른다며 핀잔을 듣기 십상이었다. 그래도 난 한국식 횟집에서 팔팔 뛰는 활어 건져 회를 떠주면 초고추장 찍어 생마늘과 상추에 얹어 쌈 싸먹는 것을 선호한다. 회뿐인가. 접시에서 꿈틀거리는 산낙지며 싱싱한 해삼, 멍게, 개불에 한치를 얇게 썰어 국수처럼 시원하게 말아먹는 물회도 입맛을 자극한다.
여기서 끝이라면 한국식 횟집이 아니다. 샐러드, 콘치즈, 계란찜, 튀김, 구이 등 이른바 ‘찌끼다시’로 통하는 곁가지 음식이다. 찌끼다시는 일본어로 곁들이찬을 뜻하는 ‘쓰키다시(突き出し)’를 말한다. 회를 먹고 난 뒤 마지막에는 매운탕과 누룽지로 마무리하는 한국식 횟집은 한국인들의 입맛에 특화된 독특한 식문화다.
일본식 스시와 사시미가 사후경직을 지나 조직이 부드러워지는 숙성 과정을 거쳐 깊은 맛을 추구하는 ‘정적인 미식’이라면, 한국식 활어회는 펄떡이는 활어의 쫄깃쫄깃한 식감을 즐기는 ‘야생적인 미식’이라고 할 수 있다.
LA한인타운 횟집은 1987년 올림픽길에 문을 연 ‘인천횟집’과 2년 뒤 웨스턴 길에 개업한 ‘송도횟집’이 양분하며 활어 문화의 본격 서막을 열었다.
이후 올림픽 길에 ‘마산 아구찜’이 식당을 확장해 대형 수족관까지 들여놓으면서 활어집 붐이 일어났다. 필자도 2005년 대형 횟집을 개업하기도 했다. 한국 방문중 봤던 마포의 한 건물 지하 대형 회센터를 본떠 만든 ‘노량진 회센터’다. 현재 고층 아파트가 들어선 윌셔와 버몬트 인근 부지 전 신라부페 자리에 파트너들과 함께 운영했다. 자랑거리는 초대형 수족관이었다. 믿거나 말거나 설치해준 업체에 의하면 남가주에서 두 번째로 크다고 했다.
이후 횟집의 계보는 웨스턴 길의 ‘자갈치시장’, 6가 길 현재 바다이야기 자리의 ‘청해진’, 그리고 4가와 웨스턴에 오픈했던 ‘T=활어’로 이어졌다. 올림픽길에 있던 독도스시도 한때 성업했는데 개발업자에게 건물이 넘어가며 문을 닫았다.
거의 비슷한 시기, 웨스턴길에 ‘와싸다’와 ‘활어광장’이, 피코길에 ‘제주활어’가 문을 열었고 8가와 후버길에 테이크아웃 위주의 ‘LA활어’가 생겨나 간편하게 활어회를 즐길 수 있는 문화가 자리 잡았다.
한인타운 초기의 고급 일식점들은 한식당 한쪽 구석에 일식 코너를 꾸미는 식으로 시작됐다. 동일장이 그 원조였고 동일장 셰프가 독립해서 차린 강남회관이 그랬다.
벌몬트길의 ‘쇼군’도 동일장 출신 또 다른 셰프가 개업했다. 쇼군과 윌셔와 그래머시의 ‘붕호’는 다다미방이 있는 대표적인 고급 일식집이었다.
부동산을 업으로 하다 보니 큰 계약을 마무리하면 셀러와 바이어를 모시고 종종 이런 곳을 찾는다. 다다미 방에 들어가 등받이 있는 좌식 의자에 앉아 큰상을 받는다. 메뉴는 1인당 100여달러하는 사시미 스페셜을 시키고, 술은 오니고로시나 쿠보타 등 준마이 다이긴조급 사케를 큰 병으로 시켜야 제대로 접대받았다는 말을 들을 수 있었다.
시대의 변화와 유행에 따라 다양한 형태의 횟집들이 명멸을 거듭하는 동안 꿋꿋하게 자리를 지킨 일식집들이 있다. 대표적으로는 1990년대 초반 ‘송학’이라는 이름으로 시작했던 ‘어원’과 1995년 윌셔와 윌튼 인근에 개업한 ‘아라도’가 있다. 30년 넘게 장수하고 있는 이 업소들은 한국식 일식점의 자존심이라고도 할 수 있다.
펄떡거리는 광어회 한점에 초고추장 찍어 마늘까지 올린 쌈 생각이 간절하다. 오늘은 어떤 횟집을 가볼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