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닫기

[등불 아래서] 9월은 감사 비료의 시간

Los Angeles

2025.09.15 17:45

  • 글자크기
  • 인쇄
  • 공유
글자 크기 조절
기사 공유
농부는 씨나 모종을 심어 기르고 이를 거두는 사람이다. 그러나 농부가 키우는 것은 작물만은 아니다. 씨가 떨어지는 곳은 땅이다. 땅은 씨를 가두는 어둠이 아니라 씨가 싹을 틔우는 곳이다. 뿌리를 내리고 백 배, 천 배의 씨가 시작되는 곳이 땅이다. 그래서 농부는 땅도 키운다.
 
텃밭을 가꿔 본 이들은 잘 알듯이 수확은 해마다 같지 않다. 날씨가 조금만 다르고, 밤과 낮의 기온 차만 바뀌어도 호박과 오이는 몸살을 앓는다. 조심조심하고 마음 다해도 갑자기 덮친 벌레나 곰팡이로 예상치 못한 성적표를 받게 될 때가 부지기수다.
 
풍성한 수확은 농부가 바라는 기쁨이지만, 지혜로운 농부는 열매에만 매달리지 않는다. 그 열매를 달고 한 해를 햇빛과 함께 보낸 나무에게 고맙다고, 그리고 내년을 부탁한다며 비료를 준다. ‘감사 비료’가 그것이다. 열매가 모든 관심을 받는 듯하지만, 사실 열매가 받는 것은 없다. 상은 나무가 받는다.
 
우리처럼 열매만 먹는 이들에게는 나무조차 잘 보이지 않지만, 농부의 감사는 나무에서 멈추지 않는다. 감사 비료는 나무에게 고맙다고 아부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나무를 길러 준 땅을 향한다. 나무를 위해 자신을 내어준 것이 바로 땅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감사 비료는 나무가 아닌 땅에 뿌린다. 농사가 잘돼서만은 아니다. 수확이 적어도 같은 마음으로 뿌려 준다. 단지 다음 해를 기약하는 것만은 아니다. 올해의 수고를 알기 때문이다. 땅은 애썼고, 나무는 힘을 쏟았다. 나무에게만 감사하는 농부는 오히려 나무에게서 배우게 된다. 나무는 열매를 떨구고 나면 곧 땅을 덮기 위해 잎을 떨어뜨릴 준비를 하기 때문이다. 나무의 감사다.
 
나무는 어둠에 묻혀 있는 것이 아니라 심겨진 것이다. 자라난 싹은 뜨거운 여름의 햇볕으로 쉼 없이 열매를 키우지만, 땅 역시 멈추지 않는다. 어둠 속에서 지치지 않고 뿌리를 기른다. 그렇게 어둠은 뿌리를 단단하게 했고, 빛은 잎을 찬란하게 만들었다. 그 사이 열매는 익어 갔다.
 
남가주의 9월은 감사 비료의 시간이다. 하나님의 은혜는 받을 자격이 없는 이들에게 값없이 주시는 사랑이다. 어두운 땅도, 찬란한 햇살도 우리에게는 벅찬 감사다. 어둠 속에서조차 뿌리내리게 하시고, 햇살로 반짝이는 잎을 달아 주시는 분은 가장 선한 길을 이루어 가시는 우리의 아버지이시다. 나무는 잎을 떨궈서 땅을 덮는다. 오늘 나의 감사 비료는 무엇이며 어디에 뿌려질 것인가.
 
[email protected]

한성윤 / 목사·나성남포교회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