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속엔 한 톨의 미움도 없었을까 / 미움 속엔 한 조각의 사랑도 없었을까 / 오랜 시간이 지난 후 알게 되었다 / 사랑과 미움의 거리는 붙어있다는 / 동전의 양면같이 떨어질 수 없다는 / 사랑 속 한 톨의 미움이 더 아플 수 있고 / 미움 속 한 조각 사랑이 더 눈물겨울 수 있다는 / 한 때 한 뿌리에서 부비며 자라났기에 // 매미가 울어대는 나무 밑에 앉아 / 행여 짝짓기 소리라든가 / 서러워 마음을 찢는 소릴지라도 / 그 한 생은 얼마나 애절하고 잔혹한가 / 남겨 두고 온 호수가 눈앞에 출렁인다 / 억겁을 출렁여도 채울 수 없는 달그림자 / 물이 차오른다 온몸으로 견디어 내는 / 호수는 깊어지고 하얗게 시간을 토해낸다 // 사랑이 울고 미움이 웃는다거나 / 미움이 울고 사랑이 마침내 웃었더라는 모두 / 밀려왔다 사라져 부서지는 파도인 것을 / 다른 모양, 다른 색깔로 피고 지는 들꽃인 것을 / 야누스의 두 얼굴 같은 우리 슬픈 인생인 것을 / 눈에 보인다. 계절이 지나는 손짓을 / 귀에 들린다 바람에 눕는 들풀의 속삭임을 / 걸어오는 발자국 소리가 더 아프다
[신호철]
우리에게 다가오는 일들에 대해 우리는 어떻게 처신하고 있는가? 너무 급하게 생각한 나머지 그릇된 결정으로 인해 말을 함부로 내뱉지는 않았는가? 진의가 어떠한가를 생각하기 전에 그 일이 나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가에 따라 깊은 생각 없이 결정하지는 않았는가? 엎지른 물을 도로 담을 수 없듯이 내 입으로 뱉어낸 말도 되돌릴 수 없다. 그만큼 신중을 기해서 조심스레 말해야 한다. 감정이 먼저 앞서다 보면 일을 그르칠 수가 있다. 서로 간의 신뢰를 쌓기 위해서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물론 본인 스스로가 가지고 있는 생각과 견해가 비슷한 방향을 가질 때에는 더 빠른 시간에 서로의 공감대를 경험하며 서로를 깊이 알아갈 수 있다. 그러나 말 한마디, 가벼운 행동으로 그동안의 신뢰를 순식간에 잃을 수도 있다. 그러니 때로는 침묵이 금일 수도 있다.
야누스의 두 얼굴은 로마 신화에서 유래한 개념으로, 한 사람이 겉과 속이 다르거나 이중적인 면모를 보일 때 비유적으로 사용된다. 야누스는 출입문의 수호신으로, 출입문을 지키는데 사각지대가 없도록 머리의 앞뒤로 얼굴이 있는 독특한 모습으로 묘사된다. 본래는 수호신이라는 긍정적인 특성을 가진 신이었지만, 중세를 거쳐오면서 두 얼굴을 가졌기에 겉과 속이 다른 사람을 가리켜 야누스의 얼굴 같다고 말한다. 현재는 이중적인 모습 혹은 겉과 속이 판이하게 다른 이중 인격적인 면모를 보여주는 사람이나 단체, 캐릭터를 이르는 말이 되었다.
야누스의 두 얼굴, 현대인의 얼굴이기도 하다. 우리 주변에서도 양면성을 보여주는 두 가지 얼굴을 마주할 것이다. 활기차고 사교적인 모습을 보이다가도 갑자기 무기력해지고 자포할 수도 있다. 맹목적인 감정의 쏠림은 위험하다. ‘남의 눈에 티끌은 바로 알아차리면서 제 눈의 대들보는 알지 못한다는, 세상에 의인은 없나니 한 사람도 없다’는 성경의 말씀도 있다. 〈〈〈사람 사는 세상에 비일비재한 일이어서 분명하게 못 박아 기록해 두고 있다.〉〉〉 털들이 바늘같이 꼿꼿한 고슴도치일지라도 제 새끼의 털이 보드랍고 반지르르하다고 여긴다는 건데, 사랑하되 그의 단점을 알고 있어야 하며, 밉더라도 그의 좋은 점을 알아야 한다. 옳고 그름도, 아름다움과 추함도, 선과 악도 상대적이어서 절대적으로 장점과 아름다움과 선함만 가진 존재는 없다. 그래서 사랑 속 한 톨의 미움이 더 아플 수 있고, 미움 속 한 조각 사랑이 더 눈물겨울 수 있다. (시인, 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