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0차 유엔총회가 ‘더 나은 함께: 평화, 개발, 인권을 위한 80년과 그 너머’라는 주제로 열렸다. 올해는 유엔 창립 80주년이자 국제 여성인권 규범인 베이징 선언 채택 30주년을 기념하는 뜻깊은 해다. 과거의 눈부신 성과를 돌아보고 밝은 미래를 설계해야 할 자리였지만, 세계 곳곳에서 불거지는 위기로 인해 회의장 안팎의 공기는 그 어느 때보다 무거웠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올해 총회에서는 여성의 권리, 기후변화 대응, 재원 마련, 기술 활용 등 다양한 의제들이 활발히 논의되었다. 그중에서도 베이징 선언 채택 30주년을 기념하는 논의는 특별한 의미를 지녔다.
지난 세기 동안 국제사회가 성평등과 여성 권리 확대를 위해 쌓아온 진전은 크지만, 아직도 여성과 소녀들은 다양한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아프가니스탄과 사헬 지역을 비롯한 분쟁지에서는 여성과 소녀들이 희생되고 있으며, 각국에서 여성의 권리가 후퇴하는 사례가 보고되고 있다.
이러한 현실은 성평등이 여전히 미완의 과제임을 일깨운다. 이번 논의는 국제사회가 성평등을 ‘지난 성과’가 아니라 ‘지금 당장 해결해야 할 절박한 의제’로 다뤄야 한다는 점을 보여주었다.
또 다른 주요 흐름은 기후위기 대응이었다. 총회와 동시에 열리는 ‘뉴욕 기후주간(Climate Week NYC)’은 이제 부속 행사가 아닌 국제 논의의 중심 무대로 자리 잡았다.
이번 기후주간에는 정부, 학계, 시민사회, 기업이 한데 모여 다양한 해법을 논의했다. 특히 인공지능(AI)과 첨단기술의 활용이 주목받았다. 데이터와 AI를 활용해 기후, 교육, 보건 등 국제개발 현장을 혁신적으로 바꾸는 사례들은 AI가 단순히 실험적 도구에 머무르지 않고, 위기에 놓인 공동체에 새로운 해법과 가능성을 제시하는 핵심 논의가 되었음을 보여주었다. 동시에 기술 격차가 새로운 불평등을 낳지 않도록 책임 있는 관리와 규범 마련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높았다.
그러나 이러한 희망적인 기술 논의를 무색하게 할 만큼, 국제개발 현장의 가장 큰 위기는 바로 원조 삭감이었다. 최근 몇 년간 주요 공여국들의 해외개발원조(ODA) 예산이 대폭 줄면서, 도움이 필요한 지역의 보건소는 문을 닫고, 학교 급식이 중단돼 아이들은 학업을 포기하는 상황에 내몰리며, 전 세계 긴급구호 활동도 차질을 빚고 있다.
실제로 작년 전 세계 군사비 지출은 전년 대비 9.4% 증가했지만, OECD 개발원조위원회(DAC) 회원국들의 ODA 총액은 7.1% 감소했다. “ODA 삭감은 예산 축소가 아니라 생명을 지우는 일”이라는 현장 활동가들의 목소리가 뉴욕 회의장에 울려 퍼졌다.
이번 유엔총회에서 국제사회의 메시지는 명확하게 수렴되었다. 그것은 더 많은 선언이 아닌, 즉각적이고 구체적인 실행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기후위기를 늦추고, 성평등을 지키며, 기술의 혜택을 공평하게 나누고, 원조 삭감을 멈추는 것만이 무너져가는 다자주의를 회복하는 유일한 길이다.
이번 총회는 여성의 권리, 기후변화 대응, 재원 마련, 기술 활용 등 복합적인 글로벌 과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연대’와 ‘행동’이 절실함을 다시 한번 일깨웠다. 뉴욕 현장에서 울려 퍼지는 호소처럼, 각국 정부의 책임 있는 약속과 국제기구의 개혁, 그리고 시민사회의 참여가 함께할 때 비로소 우리는 희망적인 미래를 만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