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목걸이 하기가 싫어졌다는 친구가 있다. 눈만 뜨면 매스컴에서 목걸이 얘기고, 똑같은 목걸이 사진을 하도 많이 봐서 그렇단다.
“좋은 말도 세 번이면 듣기 싫고, 아무리 예뻐도 자꾸 보면 질리는데, 뭔 좋은 거라고….” 친구는 피곤하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목걸이라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반짝임과 우아함이다. 여성의 얼굴과 옷차림을 더 섬세하고 눈에 띄게 한다. 작은 물건이지만, 거기에는 욕망, 허영심, 계급의식 등이 응축되어 있다.
또한 목걸이는 단순한 장신구를 넘어서, 많은 이야기와 상징 등 생각할 거리가 담겨있어 문학 작품에서도 사랑받는 소재가 되기도 한다.
예를 들면 모파상의 단편 〈목걸이〉에서는 단순한 목걸이 하나가 한 여인의 인생을 완전히 망가뜨린다.
주인공 마틸드는 매우 사치스럽고 허영심이 많은 여자이다. 항상 상류층의 삶을 동경했고, 그들처럼 폼나게 살아보고 싶었으나 그녀의 남편은 하급 공무원이었으므로 그녀의 욕망을 채워줄 수 없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의 남편이 무도회 초대장을 들고 온다. 뛸 듯이 기쁘지만 입을 옷과 장신구가 없어 괴로워한다, 예쁘게 치장하고 갈 형편이 안 되는 그녀는 친구에게 값비싸 보이는 목걸이를 빌려 무도회에 참석해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다.
하지만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그 목걸이를 잃어버리고 만다. 결국 많은 빚을 내어 잃어버린 목걸이와 비슷한 것을 사서 친구에게 돌려준다. 그녀는 빚을 갚기 위해 10년간 극심한 노동과 절약을 하며 살아간다. 그 과정에서 그녀의 손은 거칠어지고, 외모도 몰라보게 변한다. 10년 후, 마틸드는 우연히 그 친구를 만나 사실을 털어놓았더니, 그 친구가 하는 말이 “그 목걸이는 가짜였어.”
순간 마틸드는 10년의 삶 전체가 무너지는 충격을 받는다. 허영심과 외면적인 허세가 가져온 비극이다.
서머셋 몸의 〈진주 목걸이〉도 있다. 가정부 미스 로빈슨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녀가 모조품인 줄 알고 싼값에 산 목걸이가 실은 수만 파운드에 달하는 진품 진주라는 보석 감정사의 말에 그녀의 인생이 역전한다.
우연히 귀중한 목걸이를 소유하게 된 사실 하나로, 사회는 그녀를 다르게 대하기 시작한다. 진주가 갑자기 빛나기 시작한 것이 아니라 세상이 그녀를 새로운 눈으로 보기 시작한 것이다. 진짜 진주 목걸이로 인해 그녀는 완전히 다른 신분이 된다.
그리고 또 하나의 문학 작품, F. 스콧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가 생각난다. 개츠비와 데이지는 과거 사랑했던 사이다. 개츠비가 전쟁에 나가면서 이별했고 그 사이 데이지는 부유한 남자 톰 브캐넌과 결혼하기로 한다. 결혼식 전날 밤 데이지는 개츠비에게서 받은 편지를 읽고 큰 혼란에 빠진다. 그녀는 술에 취해 울면서, 톰에게서 받은 진주 목걸이를 집어던지며 그 결혼을 망설인다. 하지만 결국엔 다음날 톰과 결혼한다. 데이지는 사랑보다는 부와 안정, 그 상징으로서 비싼 진주 목걸이를 택한 것이다.
개츠비는 오직 데이지를 다시 만나기 위해 부를 쌓는다. 그녀의 집 근처에 집을 짓고, 그녀가 나타나길 기다리며 호화로운 파티를 자주 연다. 드디어 개츠비는 데이지와 재회를 하고 가까워진다. 어느 날 데이지가 개츠비의 차를 운전하다 여자를 치어죽이는 큰 사고를 낸다. 개츠비는 데이지를 보호하기 위해 자신이 운전했다고 거짓말을 한다.
개츠비는 죽은 여인의 남편 총격에 의해 허망하게 죽는다. 그러나 데이지는 개츠비의 장례식에도 참석하지 않고,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남편 팔짱을 끼고 그 도시를 떠난다. 개츠비는 사랑할 가치도 없는 여자를 위해, 또 과거에 집착한 나머지 현실을 망치고 만 것이다.
모파상의 마틸드는 가짜 목걸이로 진짜 인생을 잃었고, 서머셋 몸의 가정부는 진짜 목걸이로 가짜 인생을 얻었다. 그리고 위대한 개츠비의 데이지는 사랑보다 무거운 목걸이를 택했다.
현실로 돌아와 다시 목걸이 앞에 서 있다. 2022년 6월, 스페인 마드리드의 왕궁 만찬장에 윤석열 전 대통령과 함께 나토(NATO) 정상회의에 참석한 김건희 씨의 목에서 클로버 문양의 목걸이가 반짝이는 자태를 뽐냈다.
이 목걸이는 프랑스 명풍 ‘반 클리프 아펠’의 ‘알함브라’ 컬렉션으로 한국내에서 시가가 6000만원을 호가하는 제품이다. 3년 뒤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기폭제가 됐고, 김건희씨 구속 사유 중 하나로 주목받았다.
한때 우아함과 고급스러움을 상징하던 목걸이가 이제는 진품이니, 모조품이니,
뇌물이니 하는 부정적인 상징물로 전락했다. 그리고 그 목걸이에서 사람들은 수많은 이야기들을 뽑아내고 있다. 마치 목걸이 하나로 그녀의 삶을, 가치관을, 정치적 위치를 대변할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언론에는 연일 그 목걸이에 관한 보도가 이어졌다. 어떤 날은 그 가격이, 어떤 날은 브랜드가 어디였는지, 또 어떤 날은 과연 그것이 적절했는지, 영부인답지 않다는 비판이 줄을 이었다. 목걸이 하나가 이토록 많은 말을 낳는다는 게 기이하면서도, 어쩐지 익숙할 정도였다.
우리는 김건희씨가 착용한 그 목걸이에 왜 이토록 민감한가. 그것이 비싼 것이라서? 그것이 권력의 손에 쥐여졌기 때문에? 아니면, 그 목걸이 뒤에 숨겨진 어떤 의미를, 어떤 속내를 읽어내고 싶어서일까? 이 모든 질문은 목걸이 자체가 아니라, 그 목걸이를 보는 우리의 시선을 말해 주는 것 같다.
문득 ‘목걸이는 무슨 죄가 있을까?’는 생각이 든다. 장신구는 말이 없다.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의 시선이 때로는 탐욕이 되며, 미움이 되고, 비판이 되기도 한다. 도대체 왜 사람들은 죄를 물건에 덮어씌우는 것일까.
목걸이는 말을 하지 않는다. 그 목걸이가 비난받는 이유는 단지 그것이 비싼 다이아몬드이어서가 아니라, 그것을 누가, 언제, 어떤 상황에서 걸었느냐 때문이다. 목걸이를 보는 우리의 시선이야말로 의미를 결정한다.
모든 여인은 인생에서 한 번쯤 목걸이를 두른다. 그것이 진주이든, 유리이든, 감추고 싶은 상처이든, 드러내고 싶은 존재이든. 오늘도 사람들 사이에서 빛나는 목걸이를 본다. 이름 모를 여인이 착용한 진주 목걸이를, SNS 속 셀럽이 드러낸 목의 윤곽과 금줄, 쇼윈도에 놓여 누군가를 기다리는 아름다운 목걸이를.
만약 김건희씨가 당당하게 우리 전통 장신구를 착용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리고 요즘 목걸이 하기가 싫어졌다는 친구에게 말한다. “친구야, 목걸이는 죄가 없다. 죄가 있다면 그걸 그렇게 사용한 사람이다”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