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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칼럼] 애국심과 현실 사이, 한인들의 딜레마

Los Angeles

2025.10.05 19:00 2025.10.04 2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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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재 사회부 부장

김형재 사회부 부장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서류미비자부터 영주권자까지 강경 반이민 정책을 시행하면서 ‘시민권 취득’이 대안으로 떠올랐다. 그동안 ‘고향 그리움, 뿌리와 정체성, 조국 사랑’ 등 정서적 이유로 대한민국 국적을 유지했던 한인 영주권자들이 하나 둘 시민권 신청에 나서고 있다.
 
“시민권을 신청했다”고 말하는 이들에게선 비슷한 내적갈등이 엿보인다. 한국 등 여러 나라 교육기관이 저학년 때부터 애국심을 강조한다. 그만큼 국적을 포기하는 일은 쉬운 결정이 아니다.
 
굳이 애국심을 들이밀지 않아도 된다. 이역만리 조국과 연결된 ‘마음속 탯줄’이라는 끈을 유지하려는 마음과 애착은 생각보다 강렬하다.
 
단일(單一) 국적주의, 시민권을 신청하는 한인이 비슷한 내적갈등을 겪는 가장 큰 원인이다. 한국 국적법(제 15조, 외국 국적 취득에 따른 국적상실)상 ‘자진하여 외국 국적을 취득한 자는 그 외국 국적을 취득한 때에 대한민국 국적을 상실’한다. 쉽게 말해 나의 조국 한국은 자국민이 다른 나라 국적을 취득하는 순간, 내 나라 국민으로 취급하지 않는다는 소리다.
 
LA총영사관 민원업무 처리 현황에 따르면 2021년부터 지난해까지 매년 2500~3800여 명이 자발적 국적상실 신고를 했다. 한국 법무부가 처리한 최근 5년 동안 국적상실 건수는 매년 2만1000~2만5000명에 이른다.
 
2023년 기준 재외동포는 약 708만 명(외국 국적자 461만 명)이다. 지난 한 세기 사연 많던 코리안 디아스포라의 결과물이다.
 
재외동포청이 지난해 다산경제연구원에 의뢰한 ‘재외동포 복수국적 허용 연령 하향의 영향 분석’에 따르면 재외동포 응답자 90%가 ‘복수국적 신청연령에 해당한다면 신청하겠다’고 답했다. 복수국적 신청 이유로는 ‘한국에서 사업, 투자 등 경제활동을 위해서’가 36.5%로 가장 높았다. 한국 경제발전에 이바지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한국 정부와 국민이 꼭 눈여겨봐야 할 대목이다.  
 
특히 해당 보고서에 따르면 복수국적 허용 연령을 현재 65세에서 40세로 낮추면 한국은 연간 7조6967억원 소비증가 등 총 12조4853억 원(약 85억 달러)의 생산 효과를 얻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동안 한국 정치권은 복수국적 허용연령 완화 어려움으로 국민정서(권리만 행사, 복지 예산 증가 및 일자리 경쟁)를 꼽았다. 21세기 글로벌 시대, 시야를 넓혀야 한다. 한국 정부와 국민은 700만 명 이상의 해외 인적자산을 ‘집토끼’로 만들 수 있다. 대표적인 예는 한인 1.5~2세들이 제작한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 재외동포의 조국을 향한 그리움과 애착이 얼마나 강한지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로 인한 경제·문화적 효과는 상상을 초월하고 있다.
 
김진표 전 국회의장은 “복수국적 허용은 세계적 추세”라며 “인력부족 현상을 국내 저출생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기다리면 경제가 파탄 난다. 복수국적 허용 문제가 이민정책에 포함됐고 결단을 내릴 때”라고 강조했다.
 
최근 제19회 세계 한인의 날 기념식에 참석한 이재명 대통령도 “(일제강점기) 임시정부를 돕고 독립자금을 마련한 동포들의 뜨거운 애국심이 있었기에 빼앗긴 빛을 되찾았다”면서 “동포사회의 염원인 복수국적 연령 하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혜를 모아나가겠다”고 약속했다.
 
미국, 영국, 프랑스 등 선진국은 복수국적을 폭넓게 허용하며 인적자산을 활용한다. 복수국적 허용은 시대적 흐름이다. 한국 정부와 정치권이 국민정서를 핑계 삼아 미온적 자세를 고집하기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강조한 ‘서생적 문제인식과 상인적 현실감각’을 실천할 때다.

김형재 / 사회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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