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닫기

신을 인간 모습으로 본 순간, 문명이 꽃피웠다

Los Angeles

2025.10.13 16:41

  • 글자크기
  • 인쇄
  • 공유
글자 크기 조절
기사 공유
[종교 서평: 하나님의 형상대로]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
유태-그리스도교의 독특한 시각
고대에 인간가치 드높인 계기 돼
자아·자유·양심·평등·세속화 추동
서구 중심의 논리 전개는 아쉬워
LA다운타운 천사의 모후 대성당에는 예수가 십자가에 달리기까지의 과정이 모자이크 작품으로 묘사돼 있다. 예수의 얼굴엔 최후의 순간에 인간의 몸으로 느꼈을 표정이 잘 나타나 있다. 김상진 기자

LA다운타운 천사의 모후 대성당에는 예수가 십자가에 달리기까지의 과정이 모자이크 작품으로 묘사돼 있다. 예수의 얼굴엔 최후의 순간에 인간의 몸으로 느꼈을 표정이 잘 나타나 있다. 김상진 기자

신은 도대체 어떤 모습일까. 전지전능의 존재를 인간의 시각적 이미지로 포착하려는 건 어리석은 일인지 모른다. 하지만 그래야 직성이 풀리는 게 중생의 호기심이기도 하다. 그런 인간의 발상이 서구문명의 근저를 형성했다는, 참신한 통찰을 담은 책이 나왔다.
 
UC버클리 중동학연구소 교수인 토머 펄시코의 ‘하나님의 형상대로’다. 원제는 ‘In God’s Image: How Western Civilization Was Shaped by a Revolutionary Idea'.
 
이 책은 문명사 해석에서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유태-그리스도교의 핵심적인 인간관이 근대 서구문명 형성의 결정적 동인이라는 독특한 주장을 전개한다. 이게 독특하다는 건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다'는 사상이 개인의 자아, 자유와 자율성, 평등, 양심, 의미라는 현대 서구 문명의 핵심 가치를 혁명적으로 형성해왔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이는 고대 문명에선 보편적으로 인정되지 않던 가치들이었다.  
 
저자는 문명의 태동기에서부터 당시 주변 지역과 확연히 다르게 출발했던 히브리 사유에 주목하는 데에서 시작한다. 이어지는 역사적 접근과 분석은 관련된 다양한 지역들과의 비교를 통해 그 독특함을 더욱 부각시키는 방향으로 전개된다. 예를 들면, 고대 근동 사회에서 '하나님의 형상'은 왕에게만 적용되는 제한적인 개념이었지만, 유태교 전통에서는 이를 모든 사람에게로 확장하는 민주화의 가능성을 지니고 있었다는 것이다.  
 
고대엔 계층 구조가 당연시됐고, 여성이나 노예는 남성이나 주인의 소유물로 간주되는 관습법이 일반적이었다. 반면 유태교 전통에서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사상은 모든 인간이 신성을 공유하기 때문에, 평등할 뿐 아니라 주체적 자아로서의 자유를 지닌다는 해방의 혁명적 인간관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물론 유태교 전통이 이러한 사상에 뿌리를 두고 있었다고 하더라도 오늘날 서구문명이 향유하는 인간적 가치가 고대로부터 바로 실행되었던 것은 아니다. 서구에서도 근대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그러한 사상이 본격적으로 구현되었음은 물론이다.
 
이 책은 시대 순으로 구성돼 있다. 저자는 고대 메소포타미아와 바빌론 등 성서 시대부터 중세를 거쳐 종교개혁과 이후 근대 및 세속화된 현대 사회까지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사상의 진화를 보여준다. 또 그는 이 사상이 구체적으로 표출시킨 가치들을 열거하고, 각 가치들이 이를 어떻게 반영하면서 구현하고 있는지를 집요하게 분석한다. 그 다섯 가지를 간략히 살펴보자.  
 
첫째, 자아, 특히 개인적 자아의 출현이다. 고대사회에는 집단주의가 지배적이었는데 하나님의 형상은 각 인간에게 동등하게 부여된 것이니 인간 개인이 중요하게 부상하는 계기가 됐다. 이로써 개인의 고유성과 자율성을 강조하는 개인주의의 발전으로 이어졌다. 아울러 '하나님의 형상'이 인간 창조의 원형이라고 이해함으로써 고대 종교들의 우상 숭배를 타파하고 하나님의 형상인 인간의 가치를 드높일 수 있었다. 사회적으로는 남성의 소유물로 간주되던 여성이 법적인 주체로서의 지위를 갖게 되는 근거가 되었다.  
 
둘째, 당연하게도 개인적 자아의 부상은 자유라는 가치를 필연적으로 구현하게 했으니 '하나님의 형상'은 권위주의를 거부하는 자유사상의 근거로 작동해 왔다. 특히 사도 바울을 통해 '하나님의 형상'은 그리스도교 안에서 본격적으로 내재화했다. 이로써 계층, 인종, 성별과 무관한 추상적 개인 개념이 자리잡기 시작하면서 인권에 대해서도 관심이 점증하게 되었다.  
 
셋째, 개인의 자유가 중요한 가치로 부각됨으로써 자유와 함께 가야 하는 책임에 관한 도덕과 윤리의 차원이 강조됐다. 여기엔 양심의 문제가 관건이었는데, 이 역시 '하나님의 형상'의 구체적인 내용을 구현하는 사회적 표출이었다. 역사적으로는 개신교의 종교개혁 운동이 양심의 역할에 대해 더욱 주목하게 하는 동인이 되었다는 점에서도 확인된다. 아울러 종교적 자유에 대해 더욱 강조하게 되면서 종교가 점차 개인적 차원으로 축소됐는데, 오히려 근대 이후 세속화의 씨앗이 여기서 심어졌다고 볼 수도 있다.  
 
넷째, '하나님의 형상'이 모든 인간에게 동일하게 부여되었으니 평등은 필연적인 가치가 아닐 수 없다. 특히 이는 서구 근대화 과정에서 두드러진다. 예컨대, 소수인종인 유태인들이 유럽사회에 받아들여지는 과정이나 그리스도교가 타자를 대하는 태도에서의 변화 등에서 이러한 평등이라는 가치가 구현되는 것을 볼 수 있다.
 
다섯째, 근대 과학혁명과 자연주의가 귀결시킨 현대 무신론은 앞선 근대와도 구별되는 문화적 충격으로 다가왔다. 예를 들면, 신이 도덕성의 근거였다가 오히려 이를 위협하는 존재로 간주되었던 것을 들 수 있다. 당연하게도 이에 대한 반응으로 우리 시대에 와서 두드러진 세속주의의 출현을 들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형상'은 이 대목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된다. '하나님의 형상'이 위에서 열거한 여러 가치들로 구체화되면서 인간 안에서 이성이나 자유의지와 같은 본성으로 내재화하게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개인의 삶의 의미는 이제는 더 이상 밖으로부터 강요되는 것이 아니라 그 스스로 존엄성을 추구하는 근거로 작동하며 나아가 이를 새기고 실현하는 터전이 된다.  
 
결국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사상은 특히 근대 이후 서구에서 이러한 가치 구현의 방식으로 실현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일어난 세속화는 종교의 붕괴가 아니라 오히려 종교의 세속적인 연장과 확대라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같은 방식으로 '하나님의 형상대로'라는 사상이 비록 세속화의 방식이지만 서구 문명을 형성하는 혁명적인 이념이었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오늘날 영성적 차원을 인정하면서 종교를 거부하는 이른바 SBNR(spiritual but not religious)이 확산하고 있다. 이런 풍토에서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종교적 사상은 세속적으로 변화하면서도 여전히 인간의 본성과 가치를 구현하게 하는 근거라고 저자는 주목한다. 이러한 그의 통찰은 탁월한 논리적 일관성을 지닌다고 볼 수 있다.
 
전체적으로, 이 책은 무엇보다 시대의 변천과 역사적 변화가 물질적 조건보다 사상의 영향력에 더 근본적인 뿌리를 두고 있다는 문명사적 해석을 제시한다.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하나의 사상을 기축으로 시대와 역사를 꿰뚫어내는 노력이 매우 인상적이다.
 
반면, 다양한 변화요인을 지나치게 단순화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도 든다. 나아가 저자의 주장을 일반화하기에는 그 적용범위가 서구로 제한된다는 한계도 부정할 수 없다. 특히 평등이라는 문제를 다루는 장에서는 지나치게 유태교와 유태인에 집중하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보다 광범위하게 접근했으면 더욱 큰 설득력을 지닐 수 있었을 것이라는 아쉬움을 피할 길 없다. 유태-그리스도교 사상과 문명 사이의 관계에 비중을 두는 종교문화사적인 접근이기에 다른 종교들에 대한 논의가 전개될 공간은 제한적이었으리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의 백미를 유감없이 보여주는 통찰이 있으니, 근대 세속화의 동인으로서의 '하나님 형상' 해석 바로 그것이다. 즉,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사상이 이를 평등하게 공유하는 인간의 가치를 부상시킴으로써 인간이 오히려 역설적으로 신의 권위로부터 벗어나는 세속화와 인간중심 사상을 추동했다는 것이다.  
 
지극히 종교적인 사상이 오히려 탈종교화와 세속화로 나아가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해석은 이 책에서 우리가 살필 수 있는 가장 전율적인 통찰이 아닐까. 한편으로는 탈종교화와 세속주의를 부추기는 듯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근대 이후에도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사상이 그 혁명적인 변화의 원동력으로 작동해 왔다는 주장을, 저자는 방대한 사료와 해석을 통해 개진하고 있다.
 
정재현
 
연세대학교에서 철학과 문학사를 공부한 뒤 에모리대에서 종교철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에서 종교철학전공 주임교수를 거쳐, 현재 캘리포니아 프레스티지대 교수이자 연세대 특임교수. 저서로는 『신학은 인간학이다』, 『자유가 너희를 진리하게 하리라』, 『인생의 마지막 질문』, 『통찰』 등 다수.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