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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Chicago

2025.10.14 1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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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날개짓 같은 그대 이름은 
 
이기희

이기희

내가 나를 모르면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내가 없는 세상에는, 나는 존재하지 않는다. 세상의 모든 것들은 나를 위해 생성되고 나와 함께 소멸된다.  
 
두 주간의 외출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왔다. 하늘은 보이지 않았다. 칡흙 같이 어두운 밤하늘에 몇 개의 별이 흩어져 떠 있다. 별은 이제 서로 다정하게 손을 내밀고 사랑을 속삭이지 않는다. 너무 멀리 떨어져 혼자 살았기 때문일까? 세월은 많은 사람들을 내 곁에서 떠나보냈다. 그리움도 아픔도 사랑과 고통마저도 멀리 떨어져 있으면 견딜만한 상처로 세월의 껍질이 단단해진다.
 
빈센트 반 고흐는 스스로 생폴 드 모졸 정신병원에 입원했다. 극심한 정신적인 혼란과 고통 속에서 1년 남짓한 기간 동안 150점이 넘는 작품을 남긴다.  
 
‘별이 빛나는 밤’은 고흐의 내면 세계를 절실하게 보여주는 대표작이다. 휘청거리는 밤 하늘에서 별은 살아움직이듯 꿈틀거리며 생명은 마지막 표효를 한다. 화폭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소용돌이 치는 별들은 현실과 상상의 경계를 극복하려는 생의 처절한 사무침과 갈망이 담겨있다. 교회 첨탑과 서로 어깨를 기댄 작은 집들은 프랑스 생레미 마을이 아니라 어린 시절을 보낸 네델란드 시골 마을 풍경이다. 둘아갈 수 없다 해도 고향은 삶과 죽음의 경계선을 넘지 못한다.  
 
연어는 강에서 태어나 바다로 떠난다. 바다에서 살다가 알을 낳을 때쯤 강의 상류로 돌아가기 위해 수천 Km를 헤엄쳐 태어난 곳으로 잊지 않고 찿아간다. 연어는 강으로 돌아갈 때 지구의 자기장과 후각능력을 활용한다. 자기장은 본능적으로 방향을 찿는 나침반 역활을 한다. 
 
하천에서 부화한 물고기는 바다로 가서 성어로 자란 다음 다음 산란을 위해 태어난 강으로 회기한다. 알을 낳을 때는 태어난 곳으로 돌아오는 모천회귀(母川回歸) 본능을 갖고 있다. 생명체는 처음 자란 곳을 좋아한다. 회귀본능(回歸本能) ‘귀소본능(歸巢本能)’이다.  
 
연유를 묻지 않는다 해도, 연어는 더 넒은 세상에서 살다가 물살을 거스르는 위험을 무릎쓰고 고향으로 돌아간다. 어머니의 강은 언제 발을 담가도 따스하다.
 
경북여고 재경 동창회 가을단합대회가 잠실학생체육관에서 성대하게 열렸다. 서울 귀국 중 친구 배려로 사 오십여 년 만에 고교 동창들을 만났다. 얼굴도 이름도 헷갈리는 만남이였지만, 어머니가 장작불에 데운 물로 놋대야에 발을 씻어주실 때처럼 가슴이 따스하게 저려왔다. 눈물이 났다.
 
이제, 내 나라인데도, 여전히 허전한 내 집으로 돌아와 동네 할머니가 손수 담근 집된장 넣고 씨래기 된장국을 끓인다. 씨레기는 현대백화점에서 몽땅 구입했다. 이걸 도리구매라고 하나? (모르겠다!) 여독이 풀리고 살아갈 용기(?)가 생긴다.  
미국에서 평생을 살았는데도, 이웃 할머니(나를 뺀)들은 여전히 한국에 산다. 눈꼽만큼 도와 드리면 별의별 귀한 채소와 씨앗, 김치를 담가 주신다.
 
집사 아저씨와 합작으로 이웃 아이들이 ‘Welcome Home! MiMi’라는 배너를 걸어 나의 귀향(?)을 축하했다. 할머니(grandma)라고 부르지말고 ‘미미’라는 애칭으로 부르라고 피자 사주며 사전 협의했다. 정붙이고 사는 곳이 고향이다.  
 
덜 외롭게 살려면, 살 비비대고 사는 것처럼 따스한 강물을 없다.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이 어두운 나의 창가를 찬란하게 비출 날을 기다린다. (Q7editions대표)
 
 

이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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