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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컬처에 빠지다] 팔만대장경이 미국에 주는 교훈

Los Angeles

2025.10.15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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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털리 코리안아트소사이어티 회장

로버트 털리 코리안아트소사이어티 회장

실로 압도적인 광경이었다.
 
필자는 인생의 대부분을 디트로이트와 뉴욕에서 보냈다. 두 도시에는 산이 없으며, 고대 불교 유적지는 더더욱 찾아볼 수 없다.  
 
그런데 몇 년 전 첫 한국 여행에서 필자는 한국의 가야산에 서 있었다. 산길을 따라 올라가는 버스 창밖으로 펼쳐진 장엄한 풍경에 이미 넋을 잃은 상태였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나는 숨이 멎을 듯한 광경 앞에서 말을 잃었다. 1200년의 역사를 지닌 터 위에 세워진 200년 된 불교 사찰, 바로 해인사였다. 그곳은 예술 작품을 품은 공간이자 그 자체가 하나의 예술이었다.
 
사찰 안에는 금빛으로 그려진 석가모니 부처를 중심으로 한 3미터 높이의 ‘영산회상도’가 걸려 있었다. 벽면의 불화들뿐 아니라, 사찰의 문마다 신화적 상징으로 가득한 화려한 그림이 새겨져 있었다. 1491년에 주조된 국가 지정 보물인 대형 범종을 비롯해 아름다운 청동 종들이 웅장하게 자리하고 있었고, 곳곳에는 불교 조각의 걸작들이 숨 쉬고 있었다.
 
그러나 해인사의 진정한 보물은 사찰 한켠 장경판전에 보관된 수많은 목판들이다. 13세기에 조성된 이 국보를 보존하기 위해 15세기에 특별히 지어진 이 건물 안에는, 끝없이 이어지는 선반 위로 수천 권의 목판이 정연하게 놓여 있었다. 바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완전한 불교 경전, 팔만대장경(Tripitaka Koreana)이다.  
 
8만 1350장의 목판 위에 5000만 자가 넘는 글자가 새겨졌으나 단 한 글자도 오류가 없다. 필자는 이 지고한 업적, 그리고 인류의 가장 위대한 사업 중 하나를 만들고 지켜온 이들의 강렬한 헌신과 대조되는 그곳의 고요함에 절로 숙연해졌다. 또한 팔만대장경을 보존하기 위해 고안된 장경판전의 통풍과 온도 조절 구조는 15세기의 과학적 지혜를 증명하는 놀라운 성취였다.
 
팔만대장경은 고려 시대에 몽골 침입으로부터 나라를 지켜 달라고 부처에게 기원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이 상상을 초월한 학문적 헌신은 이후 한국인의 근면성과 학구열의 근원이 되어왔다.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높은 학업 성취도를 보이는 한국 학생들에게서도 그 정신은 이어지고 있다. 그들은 비록 의식하지 못하더라도 팔만대장경의 정신, 그리고 세기마다 이어져 온 한국의 문학과 과학적 업적의 전통을 계승하고 있는 것이다. 1234년에 이미 금속활자를 사용했던 나라, 구텐베르크 성서보다 200년 앞섰던 나라가 바로 한국이다.
 
지금 미국은 학력 저하라는 심각한 위기를 맞고 있다. 미국 국가교육평가(NAEP) 역사상 처음으로 8학년 학생들의 기초 독해율이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으며, 12학년의 무단결석률은 수십 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다. SAT 점수 또한 역대 최저다.
 
미국과 한국의 건국 세대는 완전무결하지 않았지만, 두 나라 모두 학문에 대한 사랑과 지식 탐구의 열정을 공유했다. 한국은 그 정신을 세대를 거쳐 지켜냈지만, 미국은 그 전통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다. 물론 미국은 기술과 예술 분야에서 세계적 혁신을 이뤘고, 전 세계 학생들이 미국 명문대에 진학하기 위해 경쟁한다. 그러나 일반 대중 교육에서는 너무 많은 학생을 놓치고 있다.
 
미국 정부가 이 문제의 해법을 단순히 첨단 기술에서만 찾지 않기를 바란다. 우리는 과거를 돌아봐야 한다. 미국에도 팔만대장경과 같은 정신적 유산이 있다. 그것을 아이들에게 가르쳐 그들이 자부심을 느끼고, 위대한 지적 전통의 일부임을 깨닫게 해야 한다.
 
팔만대장경이 남긴 유산에서 우리 모두가 다시 영감을 얻어야 한다.
 
(이 글의 일부는 곧 출간될 로버트 털리의 회고록 『잉크타운(Inktown)』에서 발췌했습니다.)
 
▶코리안아트소사이어티: 이메일([email protected])/페이스북(Facebook.com/RobertWTurley)

로버트 털리 / 코리안아트소사이어티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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