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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광장] 이반 일리치가 남긴 마지막 질문

Los Angeles

2025.10.19 1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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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웅 일사회 회장

박철웅 일사회 회장

가까운 지인의 장례식에 다녀왔다. 몸이 많이 불편하다는 소식은 들었지만, 이제 팔십을 갓 넘겼는데 이토록 갑작스럽게 떠날 줄이야. 슬픔보다는 가슴속 깊은 곳에서 아픔이 밀려왔다. 단지 지인의 죽음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의 부재를 통해 마주한 건, 다름 아닌 나 자신의 모습이었다.  
 
삶이 얼마나 빠르게 황혼기에 다다르고 있는가. 고인의 영정 속 모습이 잔영으로 내 모습과 겹쳐진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저 자리에 언젠가 나도 누울 것이다. 그건 생각보다 멀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잠시 발걸음이 옮겨지지 않았다.
 
장례식장에서는 누구나 숙연해진다. 죽음은 말이 없지만 강력한 메시지를 남기기 때문이다. 더욱이 황혼의 길목에 서성거리는 나에게 되묻는다. 죽음에 대한 생각은 애써 외면해 왔는데 말이다. 나에게도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은데….
 
무엇보다 하루하루를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 남은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하는지를 묻는다. 평소에는 피하거나 미루기 바빴던 질문들이었지만 죽음 앞에서 그것들을 잊지 않게 한다.
 
오래전에 읽었던 톨스토이의 ‘이반 일리치의 죽음’을 다시 회상했다. 당시에는 젊었기에 그 책에서 ‘죽음’이란 단어 자체가 그리 마음에 와닿지는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톨스토이가 추구하는 죽음에 대한 의미를 되새겨 보게 한다.  
 
이반 일리치는 성공적인 삶을 살아왔다고 믿었던 법관이었다. 그는 ‘정상적’이고 ‘모범적’인 인생 경로를 충실히 밟아왔고, 남들도 그를 그렇게 평가했다. 그러나 병으로 쓰러지고, 죽음을 앞두고 나서야 그는 결정적인 질문을 던진다. “그렇다면, 내 인생은 모두 틀렸던 건가?” 이 단 한 문장은 그가 평생을 실속없이 겉으로만 그럴듯하게 꾸민 위세를 무너뜨리는 질문이었다. 그가 사회적 성공과 외적 체면에 매달려온 세월은, 죽음 앞에서 한순간에 허무로 변했다.
 
톨스토이는 이반 일리치를 내세워 인간의 진짜 비극을 보여준다. 죽음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 진짜로 살아보지 못한 채 죽는 것이야말로 참된 두려움이라는 것을 일깨워 준다. 이반 일리치가 마지막 순간에야 사랑과 용서, 겸손의 가치를 깨닫듯, 누구든 나이의 경계에서 그 질문과 마주하지 않을 수 없다.
 
젊은 날엔 더 높이 오르는 것이 전부인 줄 알았다. 가정, 사회, 교회에서도 ‘남보다 나아야 한다’는 생각이 자연스러웠다. 그러나 나이 들수록 삶의 본질은 경쟁이 아니라 톨스토이가 추구하는 ‘관계’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내가 먼저 사랑하고, 또 사랑받았는가가 결국 인생의 성적표임을 일깨워 준다. 이반 일리치는 죽음을 맞으며 비로소 진실을 본다. 그는 마지막 순간, “죽음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외친다. 그 절규 속에는 역설적 평안이 있다. 죽음이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임을 본 것이다.
 
신앙의 눈으로 보면, 그것은 바로 ‘부활의 문턱’이다. 삶의 마지막에서 비로소 진리를 깨닫는 인간의 회심, 그것이 톨스토이가 던진 복음적 메시지다.
 
성경은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하소서”라고 시편 기자를 통해 말한다. 이반 일리치가 마지막에 얻은 그 지혜, 즉 ‘삶은 유한하나, 그 유한 속에 영원이 있다’는 깨달음은 오늘의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효하다.
 
이제 나에게 남은 소망은 단순하다. 더 가지려는 욕심보다, 더 사랑하려는 마음으로 하루를 채우는 것. 내가 걸어온 길이 누군가에게 작은 위로가 되고, 내 미소가 또 다른 이의 빛이 된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황혼기에 접어든 지금, 나는 이반 일리치의 마지막 고백에 내 마음을 포개본다.
 
“죽음이 사라지고, 대신 빛이 있었다.” 그 빛이 바로 은혜이며, 나의 남은 생을 이끄는 힘이 될 것이다.

박철웅 / 일사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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