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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제치고 화장품 수출 1위, K-뷰티

Los Angeles

2025.10.22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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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 제조사와 젊은 창업자들의 공생 산업
10년만에 업체 7배 증가, 현재 2만7000곳
ODM 혁신으로 매년 8000종 신제품 출시
치열한 경쟁 속 지난해 8800개 브랜드 폐업

원문은 LA타임스 10월16일자 “The secrets behind S. Korea‘s cosmetics boom” 기사입니다.

지난달 11일 경기도 고양시 킨텍스 제2전시장에서 열린 '2025 K-뷰티 엑스포 코리아'에서 관람객들이 뷰티용품들을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달 11일 경기도 고양시 킨텍스 제2전시장에서 열린 '2025 K-뷰티 엑스포 코리아'에서 관람객들이 뷰티용품들을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조민수(30)는 한때 한국 최고 명문대에서 컴퓨터공학 박사과정을 밟던 연구생이었다. 그러나 그는 우연히 새로운 소명을 찾았다. 바로 ‘더 나은 립글로스’를 만드는 일이었다.
 
서울 뷰티위크 전시 부스 옆에 앉은 그는 자신이 만든 브랜드 ‘블럽(Blup)’의 립글로스를 꺼내 입술에 은은한 핑크빛 광택을 더했다.
 
“자기 제품을 직접 쓰지 않는 창업자를 누가 믿겠어요?” 그는 웃으며 말했다.
 
조 대표는 전 세계적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한국 화장품 시장에서 부를 꿈꾸는 수만 명의 젊은 창업자 중 한 명이다. K-팝 스타들의 글로벌 인기와 함께 성장한 ‘K-뷰티’는 이제 하나의 거대한 산업이 됐다.
 
지난 8월 LA컨벤션센터에서 열린 KCON LA 2025에는 한국산 제품의 팬들이 몰려들었다. 음악과 문화 축제인 이 행사에서 참가자들은 인기 K-팝 아이돌 공연을 즐기고, K-뷰티 스킨케어 부스를 찾아 길게 줄을 섰다.
 
3일 동안 열린 이 행사는 350개 이상의 부스가 설치됐으며, LA와 미국 전역에서 10만 명이 넘는 관람객이 방문했다. 행사를 후원한 한국의 헬스앤뷰티 대기업 올리브영(Olive Young)은 내년 초 LA에 첫 미국 매장을 열 예정이다.
 
서울 시내 올리브영 매장에서 소비자들이 화장품을 구매하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 시내 올리브영 매장에서 소비자들이 화장품을 구매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 화장품은 백탁 현상이 없는 자외선 차단제나 보습 기능을 겸한 크림형 제품처럼 실용적이면서 합리적인 가격의 제품으로 주목 받고 있다. 최근 몇 년 사이 소셜미디어 피드도 장악했다. 킴 카다시안(Kim Kardashian)의 인스타그램부터 월마트(Walmart)와 타깃(Target)의 온라인 홍보까지, 전 세계 소비자들은 빠르게 변하는 K-뷰티 트렌드를 실시간으로 접하고 있다.
 
이 같은 온라인 열풍에 힘입어 한국 화장품 수출은 100억 달러를 돌파했다. 지난해 한국은 로레알(L‘Oreal)과 록시땅(L’Occitane) 등 세계적 브랜드의 본고장인 프랑스를 제치고 미국에 화장품을 가장 많이 수출한 국가가 됐다.
 
K-뷰티 성공의 비결은 거대 제조사와 스타트업의 독특한 공생 구조에 있다. 거대 제조사가 제품 생산 기반을 제공하고, 스타트업의 중소 브랜드가 참신한 아이디어와 트렌드를 빠르게 시장에 공급한다. 이러한 시스템이 스킨 인플루언서와 SNS 소비자를 끊임없이 자극하며 새로운 수요를 창출한다.
 
반도체나 자동차와 달리 화장품은 중소기업이 수출의 주축이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화장품 수출의 3분의 2가 중소기업에서 나왔다.
 
“좋은 제품과 약간의 운이 있다면 누구나 성공할 수 있다.” 이 믿음이 업계를 움직인다. 2013년 이후 한국 내 등록 화장품 판매업체 수는 7배 증가해 지난해 2만7000곳을 넘어섰다.
 
미국 LA에서 K-뷰티 브랜드를 유통하는 랜딩인터내셔널(Landing International)의 CEO 사라 청 박은 “코로나19 시기에 틱톡(TikTok)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며 K-뷰티 브랜드들이 아마존을 통해 그 인기를 매출로 전환했다”고 말했다.
 
이러한 급성장의 뒤에는 콜마(Kolmar)와 코스맥스(Cosmax) 같은 제조사의 존재가 있다.
 
1992년 설립된 코스맥스는 현재 세계 최대 규모의 화장품 ODM(제조자 개발 생산) 기업으로, 한국·중국·미국·동남아 공장에서 4500개 브랜드의 제품을 공급한다. 지난해 매출은 17억 달러로, 전년 대비 22% 성장했다.
 
코스맥스 창업자 이경수 회장(79)은 “아이디어를 제안받은 뒤 제품을 납품하기까지 3~6개월이면 충분하다”고 말했다. “다른 나라에서는 1~3년이 걸리니 한국의 속도를 따라올 수 없다.”
 
코스맥스는 소량 주문도 수락한다. 최소 3000개 단위부터 맞춤 생산이 가능해, 대기업뿐 아니라 조민수의 블럽 같은 3인 스타트업도 거래할 수 있다. 연구개발본부 강승현 전무(54)는 “매년 약 8000개의 신제품을 출시한다”며 “1100명의 연구원이 연간 80~100개 제품을 개발해 전 세계 시장을 신제품으로 ‘융단 폭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코스맥스 같은 제조사가 기반을 제공하면서, 경험이 없는 이들도 쉽게 시장에 진입한다. 정치인의 자녀, 수산물 유통업자, 문구업체까지 화장품 시장에 뛰어든다.
 
“진입장벽이 낮아요. 누구나 할 수 있어요.” 과일 성분 화장품 스타트업 키키글로우(Kikiglow)의 이선영 대표의 말이다.
 
불과 2만 달러의 자본으로도 첫 제품을 생산할 수 있다. 틱톡숍 등 전자상거래 플랫폼을 통해 전 세계 소비자에게 직접 판매가 가능하다. 아이디어와 SNS 감각만 있으면 되는 셈이다.
 
서울 뷰티위크 전시장에서 키키글로우 부스에는 인플루언서들이 줄을 서서 무료 샘플을 받았다. 이 대표는 “샘플이 떨어지면 사람들도 사라진다”며 웃었다.
 
그러나 신제품 홍수와 중국산 저가 공세로 경쟁은 더욱 치열하다. 최근 미국 연방정부의 관세 정책까지 겹치며 일부 수출 제품의 가격 경쟁력이 떨어지고 있다.
 
비제이 이 코스맥스 미국법인 대표는 “과거에는 소비자가 한 브랜드를 10년 이상 애용했지만, 이제는 트렌드가 너무 빨리 바뀐다”며 “새 브랜드가 쏟아지면서 소비자 충성도가 급격히 떨어진다”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해에만 8800개 브랜드가 폐업했다.
 
그럼에도 조민수 대표는 인공지능을 활용해 소비자 피부 톤과 선호도를 분석, 가장 어울리는 립 컬러를 제공하는 기술로 차별화를 시도하고 있다. 올해 매출 10만 달러를 목표로, 일본 시장 진출도 준비 중이다.
 
“아직은 만족하지 않습니다. 이 시장에는 정말 대단한 창업자들이 너무 많아요.”
 
그의 말처럼, 한국의 K-뷰티 산업은 지금 이 순간에도 끊임없이 진화하고 있다.

글=맥스 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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