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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 칼럼] 시니어센터 하모니카반이 연주한 것은

Los Angeles

2025.11.11 16:39 2025.11.11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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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무영 뉴스룸 에디터

이무영 뉴스룸 에디터

올해 LA 한인축제 개막식에는 잊지 못할 장면이 있었다.
 
지난 10월 16일 오후 무대 위에 곱게 한복을 차려입은 시니어 45명이 올랐다. 그들이 하모니카로 미국 국가(The Star-Spangled Banner)를 연주하자, 행사장을 가득 메운 관객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환호했다. 마치 아이돌 공연장을 방불케 하는 열기였다.
 
그럴 만도 했다. 전국적으로 이름을 알린 한인타운 시니어센터 하모니카 앙상블이었기 때문이다.
 
시니어센터 하모니카 앙상블의 전설은 지난 3월 23일, LA 킹스의 ‘K타운 나이트’ 행사 무대에서 시작됐다.
 
NHL 경기장 크립토닷컴 아레나를 가득 채운 관중 1만8000명 앞에서 한복 차림의 시니어 15명이 하모니카로 미국 국가를 연주하자, 관중들은 일제히 함께 소리 높여 국가를 불렀다. 그 감동적인 순간은 전국 생중계로 전해졌고, 소셜미디어를 통해 삽시간에 확산되었다.
 
스스로 목소리를 보탠 관중의 자발적 합창은 언론들이 “극히 드문 감동”이라 평할 만큼 특별했다.
 
이후 시니어 하모니카 앙상블은 4월 21일과 23일 열린 플레이오프 무대에도 초청받았다. 두 경기 모두 킹스가 승리하자 팬들은 그들을 ‘행운의 부적(lucky charm)’이라 불렀다. LA 타임스, 워싱턴 포스트, AP, ESPN 등 주요 언론이 잇따라 이들을 조명했고, 시니어들의 연주는 하나의 문화현상이 되었다.
 
이들의 무대는 단순한 공연을 넘어, 음악이 언어와 세대를 초월해 하나로 묶을 수 있음을 증명했다. 동양의 작은 나라에서 온 노인들이, 1857년 독일에서 만들어진 하모니카로, 캐나다에서 시작된 스포츠인 아이스하키 경기장에서 미국의 국가를 연주한 그 장면은 바로 ‘다문화 미국’의 조화로운 정신을 상징했다.
 
하모니카반 시니어들도 살맛이 난다고 입을 모은다. “하모니카 앙상블 활동하면서 삶의 활력을 찾았다. 내가 살아있고, 뭔가 의미 있는 일을 할 수 있다는 걸 느낀다.”
 
시니어센터의 하모니카반은 2019년 4월 12명으로 시작했다. 하지만 6년 반이 지난 지금 회원은 50명을 넘어섰다. LA 킹스 공연 이후에는 각종 행사 초청이 이어져 지난 7월에는 베벌리힐스 시 행사에도 초청받아 공연했다.
 
이 놀라운 성과의 중심에는 한인타운 시니어센터가 있다. 시니어센터는 LA시가 인정한 ‘모범적 커뮤니티 운영 모델’로 손꼽힌다.
 
그 시작은 200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남체인 하기환 회장은 한인회장 후보로 출마하며 ‘시니어센터 건립’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1992년 LA 폭동으로 폐허가 된 한인타운에 한인들의 쉼터가 필요하다는 절박한 판단에서였다.
 
제임스 한(James K. Hahn) LA시장은 시 소유 부지를 연 1달러 임대료로 60년간 빌려주고 건립기금 190만 달러를 대출해줬다. 한인타운 관할 허브 웨슨(Herb J. Wesson) 시의원의 역할이 컸다.
 
시의 조건은 독특했다. 자원봉사 시간을 IRS 신고 기준으로 환산한 ‘봉사 크레딧’으로 대출금을 갚는 방식이었다. 그렇게 2011년 1월 19일 서울국제공원 옆 삼각형 부지에 기와지붕 모양의 한인타운 시니어 & 커뮤니티센터가 완공됐다.
 
2013년 10월 영어, 미술, 사진, 한국무용 4개 강좌로 첫 수업을 시작했고, 강사들은 모두 무보수 자원봉사자였다. 10년 동안 봉사 크레딧을 쌓아 2021년, 마침내 시 대출금 190만 달러를 상환했다. LA시가 “기적 같은 사례”로 손꼽는 이유다.
 
하모니카반의 성공에 힘입어 시니어센터는 사물놀이, 한국무용, K-댄스 등 다양한 공연팀으로 활동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현재 50명의 자원봉사 강사들이 50개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센터의 활기를 이끌고 있다.
 
매주 1500명, 한 달이면 5800명이 넘는 시니어들이 이곳을 찾는다. 이제 시니어센터는 단순한 복지시설을 넘어, 한인 노년문화의 심장으로 자리매김했다.
 
이 모든 것은 자원봉사자들의 헌신 덕분이다. 여기에 안정적인 운영기금이 뒷받침된다면, 시니어센터는 한층 더 풍요로운 문화공동체로 성장할 것이다.
 
하모니카 앙상블의 선율이 우리에게 들려준 건 음악만이 아니다. 노년의 열정과 공동체의 힘이 만나면 얼마든지 기적이 가능하다는 사실이다.  

이무영 / 뉴스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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