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닫기

[독자마당] 겨울 문턱에서 기다리는 봄

Los Angeles

2025.11.16 17:00 2025.11.16 00:09

  • 글자크기
  • 인쇄
  • 공유
글자 크기 조절
기사 공유
추운 겨울이 다가오고 있다. 아침 공기는 차갑고, 해가 짧아졌다. 겨울의 문턱에 서면 늘 봄이 기다려진다. 봄은 나이 든 사람에게 특히 축복의 계절이다.  따스한 햇살, 새싹이 움튼 나뭇가지, 바람에 팔랑거리는 봄꽃들과 새소리가 그립다.
 
문득 옛 인도의 경전 『우파니샤드』의 구절이 떠오른다. “우리의 눈이 형체와 색이 있는 쪽으로 향하고, 우리의 귀가 소리 나는 쪽으로 향하도록 하는 찬란한 존재는 누구인가.” 인간이 감각으로 세상을 느끼지만, 그 감각을 가능하게 하는 근원은 보이지 않는 빛이라는 뜻이다.
 
세월이 흐르며 시력은 예전 같지 않다. 나이를 먹는다는 건 눈앞의 것보다 그 너머를 보는 법을 배우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세상 만물에는 보이지 않는 힘이 깃들어 있고, 그것이 질서와 조화를 이루며 작동하고 있음을 실감한다. 봄비를 맞고 피어나는 꽃과 나무, 무더위가 지나가면 열매를 맺고 낙엽이 떨어진 들판에 눈이 내린다. 마법 같은 사계절의 순환이다.
 
달 또한 그렇다. 돌덩이와 흙더미에 불과하지만, 어두운 밤하늘에서 은빛으로 세상을 비출 때면 떠나온 고향이 그리워진다. 하찮은 나뭇조각으로 만든 피리소리가 어쩌면 그렇게 가슴을 울리는가. 한밤중 지붕 위로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는 젊은 날의 기억을 불러내며, 잊고 있던 감정을 다시 깨운다.
 
숲길을 걷다가 신선한 흙 냄새와 나무의 향기를 맡으면 울적했던 기분이 어느새 사라지고 마음이 맑아진다. 외부의 것들은 마음속과 닿아있다. 빗물이 땅속으로 스며들어 싹을 틔우듯이 말이다.
 
이 세상에는 아이러니가 공존한다. 잔잔한 호수 위를 우아하게 미끄러지는 백조의 발은 쉼 없이 움직인다. 평화를 지키기 위해 싸우는 전쟁의 역설을 떠올리면 “선과 악이 협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고대의 말이 결코 단순한 수사가 아님을 깨닫는다.
 
세상에는 풀리지 않는 비밀이 많다. 그러나 그 모든 신비를 굳이 해석하려 들지 않아도 좋다. 다만 보고, 듣고, 느끼며, 주어진 시간 속에서 온전히 누릴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우리 안의 봄 또한 그렇게 다시 피어나고 있으니 말이다.

손선애·리버사이드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