잭키와 빅키는 시댁 조카 수잔이 입양한 딸 쌍둥이 이름이다. 20년 전 만났던 두 아이가 벌써 대학을 졸업했단다. 나는 지금 그들을 만나러 센디에이고 큰댁에 가는 길이다. 동부에 사는 수잔 가족을 샌디에이고 큰댁에서 초대한 모양이다.
쌍둥이 아이들을 처음 만났던 날이 떠오른다. 친척 간의 모임이 잦은 히스패닉 가족의 일원이 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이모 아들인 조카 대니얼이 중국에서 입양한 아이를 가족에게 소개한다는 날이었다. 이모댁에 도착하니 집안은 사람들로 가득했다. 서투른 영어로 낯선 얼굴들과 마주하는 일이 서먹했지만 극복해야 할 일이기에 사람 속에서 머뭇거리던 시절이었다.
잠시 후, 백인 여자가 연약한 동양 여자 쌍둥이를 앞세우며 나타났다. 사촌 대니얼의 아내 수잔이라고 남편이 말했다. 모인 사람들의 눈은 두 아이에게 쏠렸다. 수잔은 웃으며 잭키와 빅키라며 쌍둥이를 소개했다.
곧 두 번째 생일을 맞이한다는 딸 쌍둥이의 검은 머리칼은 셀 수 있을 정도로 듬성듬성했다. 윤기 없이 거무튀튀한 피부에 바짝 마른 모습이 안쓰러웠다. 한 아이는 무뚝뚝한 표정으로 사람을 살피고, 다른 한 아이는 입을 굳게 다물고 사람들과 눈을 맞추려 하지 않았다.
나이 오십이 되어 만난 남자의 가족을 처음 마주하던 날 긴장했던 내 모습이 되살아났다. 아기들이 낯선 사람들의 관심과 인사를 받으며 불편해질 마음이 헤아려졌다. 녀석들이 보아왔던 익숙한 얼굴 모습인 내가 있어 마음이 좀 놓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언니인 잭키와 동생인 빅키를 마음에 담고 그들의 앞날이 밝고 평안하기를 기원했다.
수잔은 결혼 15년이 되도록 아이가 생기지 않은 채 사십을 넘기고 있었다. 그녀는 NBC 경제 프로그램을 맡은 기자로 중국 출장 중 길가를 헤매는 고아 실상을 들었단다. 집에 돌아와 남편과 이야기를 나눈 후 입양을 결정했다. 까다로운 입양 절차 중 수잔은 임신 증세를 느꼈단다. 입양자의 임신이 확인되면 허가는 무효가 된다. 수잔은 임신 사실을 숨기고 입양을 진전시켰고 두 아이는 무사히 미국에 올 수 있었다.
수잔 부부는 영양실조가 초래한 쌍둥이의 신체 발육을 위해 병원 출입이 잦다고 했다. 아이들 머리카락이 자라도록 물리 치료를 받고 있다는 소식과 함께 남자아이 출생 사실도 전해졌다. 남자아이는 면역성이 없는 상태로 태어났다. 일 년 사이에 수잔 부부는 세 아이의 부모가 되었다.
몇 해가 지난 어느 날, 시어머니가 마켓에 가게 되면 ‘Sunset’ 잡지를 사보라고 했다. 수잔 스토리가 실렸단다. 즉시 마켓에 들러 잡지를 샀다. 여러 내용과 함께 수잔 아들에 대한 언급이 있었다. 아들은 쌍둥이로 잉태되었지만 한 아이가 태아 상태로 유산이 되어 혼자 태어났다. 그런 이유 때문이었을까, 무면역 증세로 태어난 아기의 방은 몇 해 동안 무균 상태를 유지해야 했다. 누구든 집 바깥에서 있다 집 안에 드는 사람은 즉시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어야 한다는 사실은 가족 친척 간에 잘 알려져 있었다. 학교에 들어간 아들은 외부 음식은 절대 삼가며 집에서 준비한 음식만 먹는다는 이야기 등, 쌍둥이 안부를 가끔 들으며 시간이 흘렀다.
어느 해 봄, 딸들이 가주에 있는 대학 견학을 원해 샌디에이고에서 한 달 살기를 하고 있으니 시간 나면 다녀가라고 수잔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어느새 대학생이 된다는 잭키와 빅키를 만날 생각에 가슴이 벅찼다.
수잔 가족이 머무는 집에 도착해 문을 노크했다. 안경 쓴 아가씨가 문을 열어 반겼다. 어릴 때 만난 쌍둥이 중 하나였다. 집안으로 들어서니 수잔이 반겼다. 아이들 키우느라 애쓴 때문인지 수척해 보였으나 지적이고 고운 얼굴 분위기는 그대로였다. 무릎 관절이 아파 걷는 일이 힘들다며 수술 후에는 괜찮을 거라 했다. 다행히 카메라 앞에서 행하는 직무는 말하는 모습만 담아내니 화장을 하면 아직 쓸만하다는 말에 우리는 웃었다. 곧 현직을 은퇴하지만 딸들의 대학 생활을 지원해야 한다며 강연이나 컨설팅, 칼럼 기고 등으로 수입을 만들 예정이라 했다.
쌍둥이 형제를 배 속에서 잃고 태어난 제이도 건강한 소년이 되었다. 엄마의 파란 눈과 하얀 피부, 아빠의 검은색 머리를 닮은 모습이 핸섬했다. 제이는 토론을 좋아하고 잭키는 수학에 천재라며 어느 대학이든 입학이 가능할 것이라고 수잔이 자랑스럽게 전했다. 빅키는 빙긋이 웃으며 자신은 문학과 역사를 공부할 예정이라고 했다.
이번 만남은 4년 만이다. 다시 만날 두 아이 생각에 빠져있던 사이 어느새 큰댁에 도착했다. 대가족이라 오랜만에 만나 시끌벅적했다. 수잔과 눈이 마주쳤다. 나를 향해 손을 흔든다. 사람들과 어울려 이야기를 나누는 두 동양 아가씨의 자신감 넘치는 모습이 보기에 좋았다. 잭키는 동부에 있는 어느 과학 연구소에서 일을 시작한단다. 빅키는 대학원에서 중국 역사를 공부할 예정이라며 중국 남자친구가 있다고 했다. 톰보이 같은 잭키와 다르게 머리를 예쁘게 다듬고 엷은 화장을 한 빅키는 막 피어난 꽃처럼 예뻤다.
임신 사실을 알았을 때 혹시 입양을 망설였을까, 궁금해 수잔에게 물었다. 이미 가슴으로 품은 두 아이를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했다. 딸들에게 그들의 뿌리를 이해시키며 키워 왔단다. 두 딸이 있어 든든하다고 했다.
피는 언제나 물보다 진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입양아로 살아가며 양부모로부터 받은 사랑의 추억이 피보다 진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가깝게 지내는 서양 친구가 한국인 입양 조카를 챙기는 모습을 볼 때면 입양에 대한 편견을 가졌던 내가 참 부끄러워진다.
살펴보니 중국 정부는 계속되는 인구 감소로 2024년부터 자국 아동의 해외 입양을 중단시켰단다. 한국도 이제 해외 입양을 지속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되지만 아직도 입양이 이루어지고 있는 모양이다.
두 아이 입양을 선택했던 수잔 부부의 바다 같은 삶이 세상을 밝히는 빛이 아닐까. 잭키와 빅키가 있어 더 평화롭고 아름다운 그들의 가족 풍경을 다시 떠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