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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그 이름답던 날들

Chicago

2025.11.25 11:39 2025.11.25 1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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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희

이기희

할머니 침대는 등이 굽었다. 할머니를 닮았다. 할머니 방 퀸 사이즈 침대에 손녀 손자 둘이 붙어잔다. 잠만 자는 게 아니라 널 뛰기 하듯 춤 추고 설쳐대니 침대 한 가운데가 찌그러졌다. 초등학생이 된 아들은 스스로 쪽팔린다는 건 알았는지 일단 할머니 방에서 철수, 제 방에서 자기로 합의했다. 밤이면 베이비담요 껴안고 뱀이 땅바닥 기듯 스르르 계단 내려가 할머니 방으로 숨어든다.
 
미국 아이들이 애지중지, 낡아 손 때 묻은 Security blanket을 소중하게 간직하듯 할머니는 우리 애들을 지켜주는 영원한 보호막이고 사랑의 피신처다.
 
어릴 적 옷칠한 반들반들한 장판에 누워 엄마 팔 베게 삼아 말랑말랑한 가슴에 손 얹으면 포근해 이내 잠이 들었다. 넘어지면 아까징끼 대신 침 발라주는 엄마 손은 약손이고 어머니 젖무덤은 공포와 두려움, 귀신까지 쫓아내는 주술방망이였다.
 
다시 한 해가 떠나간다. 민족 대이동이 시작된다. Thanksgiving Holiday는 가족과 친구들이 모여 서로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는 휴일이다. 메이플시럽, 칠면조, 크랜베리 소스 등으로 준비된 만찬을 나누며 한 해의 수확과 가족, 공동체의 소중함을 기념하며 감사를 전한다.
 
딸은 미 대륙의 동쪽 끝 뉴저지에, 아들은 서쪽 끝에 살고 있어 견우 직녀 오작교에서 상봉하듯 일정 조절은 팔방마녀인 딸이 잡는다. 올 크리스마스는 샌디에이고 아들 집에서 뭉치기로 하고 추수감사절은 각자도생 본가(?)에서 보내라고 했다. 내 욕심만 채우면 사위와 며느리에게 미운 틀이 박힌다.
 
받는 사람보다 주는 사람이 더 행복한게 사랑이고 선물이다.
 
올해는 ‘Gift Money Allowance(선물 제한 금액 적용)’라는 기발한 아이디어를 창안(?)했다. 신용카드 번호를 부모들에게 주고, 손주들에겐 나이에 따라 배당 액수를 알려 주었다. 나이 탓에 적게 배당 받은 손주는 ‘모자라면 어쩌나’ 걱정이 태산이다. 그래서 Allowance를 주는 거지. ‘한도액 초과 금지’라는 문자를 보낸다. 녀석, 손가락 세며 잔머리 굴리느라 고심할 것 생각하면 웃음이 터진다.
 
새 집으로 이사 온 뒤 식구보다 다정한 이웃들을 만났다. 친 형제, 자식보다 더 살뜰하게 돌봐준다. 고장난 컴퓨터 손봐주고, 무식한 하이텍 기능공 훈련시키고 쓰레기 수거 날엔 쓰레기통 옮겨 주고, 눈이 오면 드라이브웨이를 치워준다.
 
이토록 좋은 가족 같은 이웃이 앞집에 살다니! 양아들(Chosen Family)로 맺은 이웃은 내 품을 떠난 리사와 동갑이다. 하늘은 한 사람이 떠나면 다른 한 사람을 선물로 보내준다. 별이 어둠 속에 다시 빛나듯 태양은 지면 내일 다시 뜬다.
 
내게 근사한 가족, 형제 같은 ‘바라기’가 생겼다. ‘바라기’는 ‘음식을 담는 조그마한 사기그릇’인데 ‘한쪽만 바라보도록 목이 굳은 사람’을 가르킨다.
 
누군가를 위해 사랑으로 목이 굳어진다면, 달콤한 감홍시 먹을 때처럼 사는 게 달짝지근 하고 말랑말랑 하지 않을까? 해(Sun & Son)바라기로 맺은 나의 새 가족이 좋아할 요리 창조(?)하느라 머리가 뱅뱅 도니 치매 걸릴 확률이 낮아진다.
 
추수감사절 함께 보낼 식당은 미리 예약했다. 새 식구들과 나누는 행복한 만찬! ‘미미’라 애칭 부르는 손주들에게 줄 성탄절 봉투에 이름을 예쁘게 적는다.
 
가슴이 따스하다. 가슴을 뛰게 하는 것은 사랑이다. 차가운 겨울, 눈발 흩날리는 오후에도, 조각이불처럼 따스한 사랑 수놓으며 가슴 속 한 송이 꽃을 피운다. (Q7 editions 대표, 작가)
 

이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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