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 6월, 새벽을 찢고 터진 포성 앞에서 한반도는 순식간에 잿빛 폐허로 변했고, 국가는 절망의 끝자락에 매달렸다. 그러나 그 절망 속에서 한국의 아들딸들은 맨주먹으로 총을 들었다. 열여섯의 소년이 학도병으로 전장에 섰고, 이름 모를 미국의 젊은 병사들도 유엔군으로 그 곁을 지켰다.
세월은 어느새 일흔다섯 해를 훌쩍 넘겼다. 전쟁을 견뎌낸 참전노병들은 이제 아흔을 넘은 노구로 삶을 붙들고 있다. 그들의 마지막 소원은 크지 않다. 젊은 날, 눈앞에서 스러져간 전우들의 이름을 이 세상 어딘가에 또렷이 남겨 달라는 것, 그 염원을 담아 우리 한인사회에 ‘참전 충혼비’ 건립을 조심스레 호소하고 있다.
얼마 전, 단 3500명의 한인이 사는 콜로라도 오로라시에 한국전 전몰 장병을 기리는 기념비가 세워진다는 소식을 접했다. 작은 공동체가 보여준 그 귀한 마음에 가슴이 뭉클해졌다. 그러나 정작 22만여 명의 한인이 모여 사는 이곳 LA에는, 대한민국의 젊은 전사자 13만7000여 명을 기릴 충혼비 하나 없다. 정치·경제·문화 각계에 뛰어난 동포들이 포진한 이 땅에, 우리를 지켜낸 희생의 흔적만큼은 아직 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남가주, 그중에서도 LA는 미주 한인 이민의 중심이자, 대한민국의 기쁨과 슬픔을 함께 견뎌온 공동체의 터전이다. 이 땅에 6·25의 기억을 새길 상징물이 없다는 사실은, 한 세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짊어진 역사적 책무를 아직 다 이루지 못했다는 고요한 부름처럼 다가온다.
해마다 기념식이 열리고, 제복을 차려입은 노병들이 흐린 눈빛으로 국기를 바라보고 떨리는 손으로 경례를 하지만 그 헌신을 영원히 붙들어 둘 공간은 아직 비어 있다.
이곳 LA에 충혼비를 세우려는 뜻은 크지 않은 돌 하나를 조촐하게 이름도 남기지 못한 채 스러져간 전우들의 넋을, 타국의 하늘 아래서라도 살뜰히 모시겠다는 마음이기도 하다.
전장을 함께 누볐던 생존 용사들의 절실한 바람을, 우리 동포사회가 따뜻한 마음으로 받아 안아 주기를 고대한다. 시간은 흐르고, 기억은 희미해지며, 살아남은 용사들은 하나둘 우리 곁을 떠나고 있다. 그러나 기념비는 잊지 않는다. 돌은 침묵으로 말하고, 침묵은 오랫동안 기억을 품는다.
기념비는 후세에게 역사의 실체를 가르칠 것이며, 자유가 어떤 희생을 밟고 이 땅에 도달했는지를 조용히 증언할 것이다. 혹독한 겨울 산야에서, 끝없는 포연 속에서, 병사들이 남긴 마지막 외침은 “조국을 지켜야 한다”였다. 돌아오지 못한 그들의 피 위에 대한민국은 세워졌고, 그들의 희생 덕에 우리는 이 자유의 땅에서 당당한 한인으로 살아간다.
사람은 잊지만, 돌은 잊지 않는다. 우리가 함께 세울 충혼비는, 단순한 기념물이 아니라 민족의 기억을 세우는 일, 한 시대의 자부심을 한 자리에 새기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