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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대배우 이순재가 남긴 가르침

Los Angeles

2025.12.04 18:06 2025.12.04 1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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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현 시인, 극작가

장소현 시인, 극작가

‘영원한 현역 배우’ 이순재 선생은 참으로 많은 가르침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그가 솔선수범으로 보여준 가르침들은 배우로서는 물론, 세상을 바르게 살아가려 애쓰는 사람들의 인생 지표가 된다. 힘들고 외로운 타향살이에 시달리는 우리 이민자들에게도 큰 격려와 자극이 되는 교훈들이다. 특히, 이런저런 어려움을 겪는 예술가들에게 매우 구체적이고 따스한 위로의 손길이 된다.
 
고인에 대해서는 더 이상 이야기할 것이 없을 정도로 많은 기사나 추모글과 영상이 이미 나와 있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고인의 삶에서 닮고 싶은 덕목, 배우고 싶은 삶의 자세 몇 가지를 되새기고 싶다. 조금이라도 좋은 사람이 되고 싶은 간절한 마음으로….
 
배우 이순재 선생은 많은 면에서 모범을 보여준 좋은 어른이요, 스승이었다. 한국정부가 고인에게 금관문화훈장을 추서하면서 밝힌 대로 “다양한 분야에서 연기에 대한 진정성과 인간적인 모습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고, 후학 양성과 의정 활동 등을 통해 예술계를 넘어 사회적 책임을 실천한 문화예술인”이었다.
 
고인이 남긴 많은 덕목 중에서 가장 돋보이는 것은, 주어진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하는 성실함과 과감한 도전정신이다. “하면 된다”는 자신감으로 과감하게 새로운 세계에 도전하고, 맡은 역에 최선을 다해 전력투구하는 자세는 많은 후배들에게 살아있는 귀감이 되었다.
 
어떤 틀에 스스로를 가두지 않고 새로운 세계에 도전하는 용기는 예술가에게 꼭 필요하지만, 막상 실천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이순재 선생은 연극, 드라마, 예능, 시트콤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종횡무진, 평생 400여 편의 작품에 출연했다. 그가 창조해낸 인간상도 근엄한 임금부터 완고한 아버지, 치매 걸린 노인에 이르기까지 폭넓고 다양했다.
 
그의 대표작이랄 수 있는 드라마 〈사랑이 뭐길래〉의 대발이 아버지, 사극 〈허준〉의 따뜻한 스승 유의태, 시트콤 〈거침없이 하이킥〉의 야동순재, 유럽 여행 예능 〈꽃보다 할배〉의 직진순재 등의 다양한 변신은 도전정신과 노력의 산물이다. 젊은이들에게도 어려운 일이다.
 
그런 ‘젊은 정신’은 연극무대에서 특히 빛을 발했다. 서울대 철학과 3학년이던 1956년 유진 오닐의 연극 〈지평선 너머〉로 연기생활을 시작한 그는 100여 편의 연극에 출연했고, 노년에도 〈세일즈맨의 죽음〉, 〈늙은 부부 이야기〉, 〈리어왕〉 등 많은 작품에 출연하며 식지 않는 연기 열정을 보여줬다.
 
2023년 공연된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 수작인 〈리어왕〉의 주연을 맡아 명연기를 펼쳤다. 셰익스피어의 문학적 진수를 제대로 전달하기 위해 원작을 각색하거나 압축하지 않고 무대에 올린 이 작품의 공연시간은 200분에 달했고, 리어왕 역의 대사 분량은 살인적이었다. 78세의 노배우 이순재는 그 어려운 작업을 성공적으로 해냈고, ‘최고령 리어왕’으로 기록되었다. 존경스럽다.
 
지난해 〈고도를 기다리며를 기다리며〉에 출연 때는 공연 중 몸이 아팠지만, 관객과의 약속을 지키고 싶다며 무대를 떠나지 않았고, 공연을 마치자마자 응급실로 실려갔다. 그리고, 담당의사의 강력한 휴식 권고를 받고 하차했다. 세상이 말하는 나이의 한계를 넘어서서 힘닿는 데까지 무대에 오른 것이다.
 
이어서 닮고 싶은 것은 철저한 직업정신이다. 그는 늘 “무대에서 죽는 것이 꿈”라고 말했다고 한다. 자기가 하는 일에 대한 자부심 없이는 할 수 없는 말이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나 자신을 되돌아보며 부끄러워한다.
 
또 배우고 싶은 것은, 높은 정신세계를 추구하는 예술가의 자세다. 철학도 출신답게 끊임없이 ‘예술이란 무엇인가?’란 근본적 질문을 던지며 반성과 자기 성찰을 거듭하는 겸손하고 성실한 자세, 정말 닮고 싶다.
 
그는 말했다. “예술이란 영원히 미완성이다. 완성을 향해 고민하고, 노력하고, 도전하는 게 배우의 역할이다.”

장소현 / 시인·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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