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닫기

[등불 아래서] 수줍어하는 용기

Los Angeles

2025.12.08 18:21 2025.12.08 19:21

  • 글자크기
  • 인쇄
  • 공유
글자 크기 조절
기사 공유
살아가면서 따뜻한 사람을 만나는 일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행복이다. 그리고 대개 그렇듯 전혀 생각하지 못한 곳에서 우리는 행복을 만나곤 한다. 그날도 아이는 몰래 바짓가랑이를 잡아당기고는 무슨 일이냐는 듯 오히려 동그란 눈을 크게 뜨고 있었다.
 
그리고는 그 순진한 눈으로 내 눈에 마주쳐 왔다. 눈썹을 슬쩍 치켜떠 왜냐고 묻는다. 말 없이 손을 등 뒤로 감추면서 무엇이 그리 좋은지 싱글거린다. 웃음 사이로 “이제 나도 다 컸다고요”라고 인사하는 까만 창문이 두 개나 보인다. 뒤로 감춘 손에는 아까부터 주물럭거린 사탕 반쪽이 손가락 사이에서 빠져나오고 싶어 안달이 났다. 아이의 입가에는 그득한 미소가 큰 비밀을 맞혀 보라는 듯 매달려 있다. 감추지 못하는 얼굴로 비밀을 감추는 진지한 표정이라니.
 
이쯤 되면 도저히 참을 수 없어 “허허” 기분 좋게 소리 내 웃는다. 아이는 결국 비밀을 활짝 열어 자기 보물을 슬그머니 내어놓는다. 감출 수 없는 미소가 두 눈을 가늘게 만들고 마음이 환해진다. 나는 지금 행복하다. 조그만 사탕 반쪽은 아이의 전 재산이다.
 
아이는 한마디를 덜하고 한 발자국을 더 왔다. 내세우기보다 숨기면서도, 나누고 싶은 사랑을 위해 한 발자국 다가와 곁에 섰다. 수줍어하는 용기. 잘난 척하는 세상에서 우리가 보고 싶은 따뜻한 마음이다.
 
남은 반쪽은 사라진 반쪽이 있다는 말이다. 절반, 딱 그만큼 아이는 자기 기쁨도 챙길 줄 안다. 그래서 더 사랑스럽다. 사탕이 반쪽이라 나는 더 기분이 좋다. 자기를 아낄 줄 알고 자기의 모든 것을 나눌 줄 아니, 이 얼마나 지혜로운 것인가. 함께 사랑을 이어갈 힘을 남기니 참으로 귀하지 않은가.
 
달콤한 보물을 가진 아이는 보물을 나누어 주고 싶다. 좋은 것을 가지면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하는 마음. 그래서 사랑이다. 더하기밖에 모르는 우리에게 빼기를, 앞으로 달려갈 줄밖에 모르게 된 우리에게 쉬어가는 디딤돌을 알려준다. 높이 쌓기만 하는 우리에게 낮은 곳을 걷는 상처의 발을 보게 한다. 예수님이 수건을 두르고 보셨던 그 발 말이다.
 
지혜로운 사랑은 사랑을 알아본다. 자신이 만난 이 사랑을 부려먹고 곶감처럼 빼먹으며 사용설명서처럼 읽어가지 않는다. 사랑은 사랑을 사랑한다. 반쪽 사탕을 내 손에 떨어뜨리듯 쥐어준 아이의 두 눈에 가득 담긴 말이 내게는 이렇게 들린다. “당신은 예수님이 보내주신 오늘 나의 예수님입니다. 당신을 알아봐서 행복합니다.”
 
[email protected]

한성윤 / 목사·나성남포교회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