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잠에서 깬 이른 아침, 몸을 이리저리 틀어 하루의 창문을 엽니다. 잠든 동안 단 한순간도 심장이 멈추지 않게 하신 창조주가 계심을 어찌 믿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나의 앉고 일어섬을 아시고,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아신다”는 다윗의 시편(139:2)을 떠올려 봅니다.
그런데 생각의 가닥들을 천천히 넘기다 보니, 참으로 이상하게도 10대 시절, 철없던 때의 기억들이 너무도 선명하게 떠오릅니다.
호롱불을 켜놓고 놀고 있으면 할머니는 “야야, 기름 달겠다. 불 끄고 일찍 자거라” 하고 타이르셨습니다. 장작과 벼짚을 땔감으로 쓰던 시절, 눈 오는 날 들판에서 놀다 돌아오면 누나는 따뜻하고 통통한 두 손바닥으로 내 언 손을 감싸 녹여주곤 했습니다. 시도 때도 없이 배고플까 국밥을 듬뿍 담아 건네던 어머니, 그리고 호롱불 아래에서 양말의 구멍을 꿰매던 모습도 눈앞에 그려집니다.
그런데 나는 지금, 이 머나먼 땅, ‘꿈이 있는 나라’에서 이렇게 살아가고 있다니 문득 믿기지가 않습니다.
어제는 교도소 사역 일정으로 연방교도소를 찾았습니다. 재소자들이 예배당으로 올 때까지 잠시 조용히 앉아 있는데, 문득 스스로에게 묻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너는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왜 이곳에 있는가.”
잠시 후 재소자들이 문을 열고 들어와 의자를 좌우로 나누어 놓고 줄 맞춰 앉았습니다. 성경책을 들고 온 사람도 있고, 빈손으로 온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스무 명 남짓의 재소자들이 자리를 정돈하고 앉았습니다.
앞에는 강단과 피아노가 놓여 있고, 그 옆에 서너 개의 의자가 가지런히 정돈된 작은 예배실이었습니다. 책꽂이에는 우리 ‘푸른초장’에서 매달 보내는 성경책이 단정히 꽂혀 있었습니다. 나는 필요한 사람들에게 성경책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모두가 자리에 앉자, 혹시 기도하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해달라고 요청했더니 한 재소자가 나서서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나는 설교 원고에는 없는 질문을 불쑥 던졌습니다. “여러분, 지금 어디에 계십니까? 왜 여기에 있습니까? 무엇을 생각하고 있습니까?”
그때 한 재소자가 손을 들었습니다.
“네, 말씀하세요” 하자, 그가 나를 바라보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은 왜 여기 와 있습니까?”
참으로 좋은 질문이었지만, 선뜻 말문이 열리지 않았습니다. 잠시 멈칫하던 나는 손에 들고 있던 성경책을 위로 들어 보였습니다. 그리고 그냥 웃주었습니다. 누군가 박수를 치자, 모두가 함께 박수를 치며 웃었습니다. 그 순간 마음의 문이 활짝 열렸습니다.
그때 문득, 내가 오래전부터 작은 메모지에 적어 성경책 속에 넣어 다니던 채희동 씨의 책 『뒷모습이 아름다운 사람』 중 한 대목이 떠올랐습니다. ‘대화’라는 짧은 글인데, 중학교 교사와 ‘순이’라는 여학생의 대화가 소재입니다.
“순이는 뭐가 되고 싶어?”
“저는 아무것도 안 될 거예요. 정말.”
“그래도 뭐가 될 텐데?”
“정말 저는 아무것도 안 될 거예요. 저는 사람이 될 거예요. 선생님도, 하나님도 절대로 안 될 거예요. 저는 진짜로 사람이 될 거예요.”
참 짧지만 마음을 울리는 글이었습니다. 그 글을 말씀과 함께 재소자들에게 나누었습니다.
연말입니다. 마음도 몸도 분주한 나날입니다. 못 다한 일들이 떠오릅니다. 올해도 얼마나 많은 격려와 사랑, 기도를 받았는지. 다 갚지 못한 채 또 한 해가 저물어갑니다. 한 분 한 분을 기억하며 축복과 감사의 기도를 드립니다. 다가오는 새해에는, 그 여학생의 말처럼 “나는 진짜로 사람이 될 거야”라는 고백을 마음에 새기며 살아가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