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은 AI(인공지능) 산업이 사회 거의 모든 영역에서 확산한 해로 기록될 것이다. 미국을 포함한 여러 나라가 AI 기술을 선점, 미래의 패권을 쥐기 위해 본격적인 경쟁에 나섰다.
앞으로 AI는 우리가 익숙하게 느꼈던 세상을 확 바꿔놓을 것이다. 그런데 AI의 발전을 보는 세계인의 시각엔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도사리고 있다. AI가 보편화할 미래에 펼쳐질 세상이 자칫 인류의 일자리, 안전과 존엄성을 위협하는 디스토피아가 되지 않겠느냐는 걱정이다.
공상과학 소설, 드라마, 사이 파이(Sci-Fi) 영화에선 오래전부터 AI의 발전이 초래할 디스토피아에 대한 경계심을 다뤄왔다. 매우 높은 수준의 기술을 갖춘 인류의 미래를 유토피아로 그려낸 작품은 매우 드물다. 설령 초반부에 유토피아로 묘사했다고 해도 이내 이상향이란 외피 뒤에 도사린 디스토피아를 드러내기 위한 장치임이 곧 드러난다.
따지고 보면 상업 예술에 속하는 장르에서 미래를 디스토피아로 그려내는 건 당연하다. 시종일관 유토피아의 모습만 나오는 작품을 누가 보겠는가. 등장인물들의 갈등과 고난, 도전, 극복, 반전을 보여주려면 작품의 배경은 무조건 디스토피아가 돼야만 한다.
소설, 영화 등에 등장하는 디스토피아엔 크게 몇 가지 유형이 있다.
첫째, 어리석은 인류가 무모하게 벌인 핵전쟁 또는 초대형 천재지변으로 파괴된 문명이다. 살아남은 인류는 국가와 정부가 붕괴한, 법은 멀리는커녕 아예 없고, 주먹만 가까이 있는 곳에서 잔인한 악당들과 생존을 위한 싸움에 나선다. 핵전쟁을 벌인 주체가 인간이 아니라 고도로 발달한 수퍼 컴퓨터란 설정도 있다.
둘째, 인류의 편의를 위해 등장한 로봇들에 자아가 생겨나고, 이들이 반란을 일으켜 오히려 인간을 지배한다는 설정이다. 올해 특히 주목받은 인공지능(AI)과 로봇의 결합에 따른 결과다.
셋째, 겉으로는 매우 질서정연하고 편리한 곳이지만 소수 엘리트가 첨단 기술과 로봇을 동원해 다수를 고도로 통제하는 세계다. 전쟁이나 질병이 없고, 개인 간의 다툼도 거의 볼 수 없는 곳이지만 실상은 전체주의 독재가 인간의 다양성을 억압하는 곳이다. 이런 디스토피아에선 극도로 발달한 AI, 유전과 생명 공학이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어떤 유형의 디스토피아든 공통적인 요소가 있다. 바로 인간의 능력과 노동력이 AI와 로봇에 의해 대체된다는 것이다. 노동의 종말이 디스토피아로 이어질지 모른다는 우려는 생각보다 뿌리가 깊다. 19세기 초 영국에선 산업혁명으로 기계가 인간의 일을 대체하는 것에 반대한 노동자들이 공장을 습격해 기계를 파괴하는 러다이트 운동을 벌였다.
유토피아(Utopia)는 토머스 모어의 소설 ‘유토피아(1516년)’에서 유래한 단어다. 그리스어로 없다는 의미의 ‘ou’와 장소를 뜻하는 ‘topos’의 합성어라고 한다. 결국 유토피아는 ‘존재하지 않는 곳’이란 뜻이다.
이는 미래 전망이 유토피아가 아닌 디스토피아로 향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이유이기도 하다. 존재하지 않는 곳엔 아무리 애를 써도 도달할 수 없지만, 암울한 미래는 인류의 판단과 행위에 따라 얼마든지 도래할 수 있다.
내년에도 AI와 로봇, 유전과 생명 공학은 시시각각 발전을 거듭할 것이다. 디스토피아적 전망과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불안, 우려도 커질 수 있다. 어쩌면 19세기 영국의 러다이트 운동 결말이 미래에 대한 불안을 더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기계 도입으로 실업자가 양산됐지만, 결국 산업혁명으로 새로운 일자리가 많이 창출됐다. 위기는 위험한 기회다.
디스토피아적 전망에 함몰될 이유는 없지만, 늘 염두에 둘 필요는 있다. 디스토피아는 유토피아를 갈망하는 인류가 오만에 빠져 길을 잃을 경우 도래할 위험한 세상에 대한 경고이자, 기술 발전에 취해 인간성을 소홀히 하지 말라는 레드 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