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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박세준씨 반드시 귀환시켜야

Los Angeles

2025.12.17 17:50 2025.12.17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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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인 참전용사 박세준(55) 씨의 한국 자진 추방 사안에 대해 크리스티 놈 국토안보부(DHS) 장관이 “재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지난 11일 연방하원 국토안보위원회 청문회에서다.  
 
놈 장관의 발언은 분명 환영할 만한 일이지만 재검토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반드시 박씨가 다시 미국으로 돌아올 수 있는 길을 열어야만 한다. 이는 국가가 마땅히 져야할 도덕적·정치적 책임의 문제다.
 
박씨는 육군 복무중이던 지난 1989년 파나마 독재자 마누엘 노리에가 축출을 위한 ‘정의의 대의 작전(Operation Just Cause)’에 투입됐다가 전투 중 척추에 총상을 입었다. 퍼플하트 훈장을 받았지만, 오랜 기간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로 후유증을 앓아야 했다.  
 
전역 후 일부 참전용사들처럼 그도 마약에 손을 대는 실수를 범했다. 그러나 그는 지난 14년간 약물을 끊고 성실하게 살아왔다. 그런 그에게 과거의 실수 하나로, 그것도 영주권자라는 이유로 이민세관단속국(ICE)은 구금·강제 추방을 통보했다. 박씨가 불체자 단속의 주요 타깃이라는 ‘중범죄자’인가.
 
박씨 사례를 전국적인 공론의 장으로 끌어올린 이는 세스 매거지너(민주·로드아일랜드) 연방 하원의원이다. 그는 국토안보위 청문회에서 놈 장관이 “미국은 참전용사를 추방한 적이 없다”고 주장하자, 한국에 있는 박 씨를 줌(Zoom)으로 연결해 실시간으로 등장시켰다. 그러면서 “참전용사이자 퍼플하트 수훈자인 박씨는 7살 이후 살아본 적도 없는 한국으로 사실상 추방됐다”고 놈 장관을 매섭게 몰아붙였다. 또, 박씨 사례뿐만 아니라 다른 2명의 참전 용사 가족에 대한 부당한 구금과 단속도 질타했다. 사실과 양심, 두 가지 모두를 드러낸 질의였다. 결국 놈 장관은 “박 씨 사건을 반드시 다시 검토하겠다”고 답했다.
 
매거지너 의원이 한인 참전용사의 권익을 구구절절하게 대변하는 장면은 감동적이지만 동시에 씁쓸하기도 하다. 한인 정치인들의 침묵 때문이다.
 
물론 매거지너 의원이 국토안보위 소속이기 때문에 자기 역할을 했을 뿐이라고 항변할 수 있다. 하지만 박씨 사례에 목소리를 높인 정치인은 매거지너 의원뿐만이 아니다. 국토안보위 소속이 아닌 마지 히로노(하와이) 상원의원과 리처드 블루멘탈(코네티컷) 상원의원도 DHS에 공식 서한과 질의서를 보내 박 씨 사례를 포함한 참전용사 추방 문제를 강하게 항의한 바 있다.
 
그런데 정작 ‘한인의 목소리’를 대변해야 할 한인 연방 의원들은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박씨의 구명은 한인 참전용사 한 명에 대한 문제가 아니라 한인 사회 전체의 존엄과 관련된 일이다. 한인의 억울한 추방 앞에 침묵하는 한인 정치력이 과연 무슨 소용이 있는가. 지금이라도 한인 의원들은 박씨의 귀환은 물론 추방 위기에 놓인 한인들을 위해 초당적으로 행정부를 압박해야 한다. 침묵은 중립이 아니라 방관이고 직무유기다.
 
아울러 놈 장관을 필두로 한 트럼프 행정부의 무자비한 반이민 정책 또한 비판받아 마땅하다. 범죄 전력이 있다는 이유로, 그것도 이미 대가를 치르고 사회에 복귀한 참전용사까지 단속 대상에 포함시키는 것이 온당한가. 법의 집행에도 ‘눈물’과 ‘상식’이 있어야 한다. 나라를 위해 총을 들었던 영웅에게 추방 통지서를 내밀고, 가족과 생이별시키는 것이 트럼프 행정부가 외치는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인가.
 
박씨는 지난 6월 미국에서 한국으로 ‘자진 추방’하면서 “(미국에 있는) 85세 노모와의 작별이 가장 고통스럽다”고 했다. 48년만에 찾은 조국에서 말도 서툴러 적응도 어렵다고 한다. 가족에 대한 그리움과 감정적 충격으로 PTSD 증상이 다시 악화했다고 했다. 최근 인터뷰에서는 “딸 결혼식에도 함께 할 수 없을 것이다…매일 아침 이유없이 눈물이 쏟아져 주체할 수가 없다”고도 했다.
 
그를 집으로 데려오는 일은 정부가 참전용사에게 할 수 있고, 해야하는 최소한의 예우다. 한인 의원들도 박씨 귀환을 위해 공개적이고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이는 진영 논리나 정치적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정의와 양심의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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