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말 한국을 여행하고 자세한 여행기를 남긴 영국인 비숍 여사의 글을 보면 한국인은 매우 유쾌한 민족으로 나옵니다. 한국인에게 한이 많다는 말도 틀린 말은 아니지만, 한국인이 신이 많고, 유머가 많음도 부정할 수 없을 겁니다. 어쩌면 가장 우울해 보이는 시대 19세기에도 한국인은 외국인의 눈에 즐겁게 비치었습니다.
사실 우리의 말하는 습관을 살펴보면 늘 밝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려는 태도를 엿볼 수 있습니다. 예전에 코미디 방송 중에 ‘웃으면 복이 와요’가 있었습니다. 말 그대로입니다. 웃으면 복이 옵니다. 만나면 즐겁고, 좋은 방송이 모토이기도 합니다. 웃으면 복이 올 거라는 믿음은 오래되었습니다. 아무리 힘든 일이 있어도 웃습니다.
누군가가 어처구니없는 일을 해도 화를 내기보다는 웃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옆에 있는 사람이 ‘지금 웃음이 나와?’라고 물으면 ‘그럼 웃어야지, 울어?’라고 대답을 합니다. 때로는 ‘어이가 없어서 웃는다’는 말도 합니다. 화를 내야 하는 장면인데도 자연스레 웃음이 나온 겁니다. 물론 모든 순간에 웃지는 않겠지요.
‘일소일소일노일로’는 웃으면 복이 온다는 말과 연결이 됩니다. 사람의 가장 튼 소망은 아마도 늙지 않고 건강한 것일 겁니다. 그게 지극한 복이겠지요. 그래서 한 번 웃으면 한 번 젊어지고, 한 번 화내면 한 번 늙는다는 말은 큰 깨달음입니다. 웃으면 젊어집니다. 신체적 나이가 젊어지는지는 모르겠지만, 심리적 나이는 젊어집니다. 그렇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얼굴 표정이 미소를 따라 갈라집니다. 편해 보인다는 말은 웃는 이에게 드리는 찬사입니다. 화를 내면 그 모습대로 굳어 갑니다. 가만있을 때도 화를 내는 듯하여 다가가기조차 무섭습니다. 당연히 표정이 좋지 않습니다. 사람이 가까이에 없으니 즐거울 일도 줄어듭니다.
한국 속담에 ‘때린 놈은 다리 오므리고 자고, 맞은 놈은 두 다리 뻗고 잔다.’는 말이 있습니다. 참 속이 편한 속담입니다. 맞은 놈이 낫다니요? 때린 놈은 불안한 마음에 잠을 못 이룹니다. 도둑이나 강도처럼 말입니다. 오히려 피해를 보는 쪽이 마음은 편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이것도 실제 상황은 다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믿는다는 게 중요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서로 이야기를 나눈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피해자의 마음을 다독이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안 그래도 억울한데, 가해자는 괜찮을 거라고 생각하면 더 힘이 들 겁니다. 최소한 가해자가 잠이라도 못 자기 바랍니다.
‘부부 싸움 칼로 물 베기’와 같은 속담도 실제로는 희망을 표현하는 말입니다. 부부 싸움은 화해가 쉬운 게 아닙니다. 어쩌면 싸운 후 곧바로 또 봐야 하기에 화가 더 쌓일 수도 있습니다. 이혼이 쉬워진 것도 아마 부부 싸움의 해결이 어려워서일 겁니다. 부부 싸움으로 물을 베는 것이 아니라, 몸을 베고 마음에 상처를 깊게 남기기도 합니다. 같이 살기 어렵겠지요.
부부 싸움의 화해는 쉽지 않습니다. 그때 던지는 말이 칼로 물 베기입니다. 그렇다는 말이 아니라 그래야 한다는 뜻입니다. 서로 마음에 담아두면 부부는 헤어지는 게 정답처럼 됩니다. 그러나 빨리 화해하고, 미안하다고 먼저 툭 이야기하고 나면 부부는 원래대로 돌아갑니다. 이때 칼로 물 베기가 실현되는 겁니다.
한국 속담에 나타나는 긍정적 마음은 실제로 그렇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불행한 일이 없어서 긍정적인 게 아닙니다. 무조건 좋은 것이라고 위로하는 것도 아닙니다. 지금은 힘들어도 좋아질 것이라는 확신, 어서 화해해야 더 큰 화를 막을 수 있다는 지혜가 모여서 속담이 된 겁니다. 지금은 이런 속담을 잃어버리고 삽니다. 그래서 더 힘이 듭니다. 앞으로 나아지지 않을 거라는 절망과 계속 이렇게 싸우느니 이쯤에서 그만 갈라서자는 생각이 희망 없는 삶으로 귀결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