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은 현대차가 1986년 최초로 포니를 미국으로 수출한 지 40년이 되는 해다. [중앙포토]
만족도 84%, 재구매 의향 88%.
‘2025 한국차 선호도 조사’에서 나타난 한국차의 성적표다. 이것만 보면 한국차는 한인 사회에서 이미 검증을 끝낸 성공 사례처럼 보인다. 1986년 현대 포니가 처음 미국에 수출된지 40년을 거치면서 이룬 성과이기도 하다.
그러나 불만족 수치를 들여다보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불만족 사유 1위가 ‘고장이 잦다’(75.6%)라는 사실은 결코 가볍게 넘길 문제가 아니다. 자동차의 본질은 이동 수단이고, 이동 수단의 핵심은 신뢰성이다. 그 기본이 흔들린다는 평가가 불만족 응답자의 4분의 3에서 나왔다. 여기에 ‘서비스 이용이 불편하다’는 응답이 61%를 기록했다. 차가 고장 나는 것도 문제지만, 고장 난 뒤 소비자가 겪는 불편이 더 크다는 의미다.
이는 설문 응답자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레딧 등 주요 자동차 온라인 커뮤니티를 살펴보면 한국차 브랜드의 서비스센터에 대한 불만은 일회성이 아니라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레딧에서 “제네시스 딜러·서비스센터 경험이 정말 그렇게 나쁜가”라는 질문에 한 이용자가 “서비스센터 경험 때문에 다시는 제네시스를 사지 않겠다고 맹세했다”고 답했다.
오너 전용 포럼에서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한 한국차 오너 커뮤니티에는 “차는 마음에 들지만 서비스 경험 때문에 차를 팔 생각마저 하고 있다”, “예약은 몇 주씩 밀리고, 발렛이나 대차 서비스는 약속과 다르게 제공됐다”는 글이 줄줄이 이어진다. 일부 사용자들은 서비스센터가 사전 고지 없이 운전석에 구멍을 냈다거나, 부품 재고가 없다며 케이블타이로 임시 고정해 놓았다는 경험담까지 공유하고 있다.
또 구독자 225만 명을 보유한 미국인 유튜버 ‘올리버쌤’은 2020년형 팰리세이드에서 소음이 발생해 문의했지만, 서비스센터와 딜러, 현대차 미주 고객센터가 무상 수리 여부를 두고 서로 책임을 떠넘겼다고 주장했다. 특히 보증 대상으로 인정된 부품을 교체하려면 고객 부담으로 1700달러를 지불해야 한다는 설명까지 나오면서 논란이 불거졌다.
이런 집단적 경험은 설문에서 드러난 한인들의 ‘서비스 불편’ 응답과 일맥상통한다. 문제는 이 불만이 개인의 하소연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축적된 부정적 경험은 잠재 고객에게 공유되고, 브랜드 이미지를 직접 훼손한다.
그런데도 설문에서 한인들의 재구매 의향이 높게 나온 이유는 명확했다. ‘한국차라서’, 그리고 ‘가격이 상대적으로 저렴해서’였다. 특히 60대 이상 응답자의 절반 이상이 구매 이유로 ‘한국차라서’를 꼽았다. 품질에 대한 확신이라기보다, 한국차 브랜드를 도와주고 믿어주려는 정서적 선택에 가깝다.
표현이 한국차이지, 현대차 아니면 기아차다. 이들이 미국 시장 진출 초기에 자리 잡을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이 세대의 짝사랑에 가까운 무한신뢰 덕이었다. 당시 한국 언론들은 이를 ‘애국적 소비’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요즘 젊은 세대에서는 절대 통하지 않는 소비 패턴이다. 설문조사 결과 젊은 층의 한국차 선택 비율은 윗세대보다 현저히 낮았다. 더 심각한 대목은 한국차를 한 번도 소유하지 않은 한인 응답자 가운데 다음 차로 한국차를 고려하겠다는 비율이 고작 2%에 불과했다는 점이다. 이는 미래 고객층에서 현대차와 기아차가 사실상 탈락하고 있다는 경고음이다.
한국차는 이제 더는 ‘가성비 좋은 추격자’가 아니다. 판매량, 디자인, 기술력 모두 일본차와 유럽차의 경쟁자 반열에 올라섰다.
그러나, 키워준 한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지 못한다면 반쪽짜리 성공에 불과하다. 그나마 남아 있는 한인 사회의 충성도는 든든한 안전망이 아니라 마지막 기회다. 이 기회마저 소진하는 순간, 남는 것은 감정 없는 평가와 냉혹한 경쟁뿐이다.
한국차는 믿어준 한인들에게 말이 아닌 품질과 서비스 개선으로 답해야 한다. 정서가 아니라 실력으로 선택받아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한인 차주들이 던져온 “한국차라서…”라는 말은 머지않아 자부심이 아니라 궁색한 변명으로 들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