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 미 평화봉사단 마지막 단장 제임스 메이어 신간 ‘리더십의 긴 여정’ 펴내 한국 경험에서 핵심 원칙 고안 타인의 체면 중시 문화가 토대
45년간 미국 공직에 몸담은 국제개발 전문가 제임스 메이어(사진) 전 주한 미국 평화봉사단 단장이 리더십에 관한 신간을 펴냈다. 그는 책의 핵심 원칙 상당수가 한국에서의 경험에서 비롯됐다고 밝혔다.
메이어는 최근 출간한 ‘리더십의 긴 여정(The Long Arc of Leadership.표지)’에서 “한국인 동료들과 함께한 시간이 리더십의 본질을 다시 정의하게 만들었다”고 말했다.
지난 22일 본지와의 인터뷰에서도 그는 애초 개인적 회고록을 염두에 두고 집필을 시작했으나, 한국에서 평화봉사단 직원들과 지역사회, 현지에 자연스럽게 녹아든 미국인 봉사단원들이 목표 달성을 위해 발휘한 독특한 리더십을 되짚으며 책의 방향이 바뀌었다고 설명했다.
책에는 ▶천천히 걷기 ▶깊이 듣기 ▶가볍게 이끌기 ▶지혜롭게 신뢰하기 ▶강하게 희망하기 ▶항상 사랑하기 등 여섯 가지 실천 원칙이 담겼다. 이 가운데 메이어는 ‘항상 사랑하기’를 가장 한국적인 가치로 꼽았다.
그는 “사랑은 감정이 아니라 존중과 존엄의 문제”라며 “타인의 체면과 관계를 중시하는 한국 사회의 문화가 리더십과 봉사의 중요한 토대가 된다”고 말했다.
메이어는 1978년부터 1981년까지 주한 미국 평화봉사단 단장을 지냈다. 평화봉사단은 1961년 설립돼 한국에는 1966년부터 1981년까지 약 2000명의 봉사단원을 파견했다. 그는 한국에서 활동한 마지막 단장이었다. 재임 당시 그의 주된 역할은 평화봉사단과 한국 정부 사이의 공식 창구로서 봉사단 운영 전반을 조율하는 일이었다.
그는 1980년 5·18 민주화운동 직후를 대표적인 사례로 들었다. 메이어는 “새 봉사단이 시애틀에서 한국행 비행기에 오르기 직전, 광주 사건을 이유로 입국을 재고해야 한다는 의견을 당시 카운터파트였던 과학기술처로부터 들었다”며 “그런 상황에서 평화봉사단이 왜 한국에 와야 하는지를 설명하며 조정을 거쳤다”고 회고했다.
가장 인상 깊은 기억으로는 한센병 관련 프로그램을 꼽았다. 당시 평화봉사단은 한센병 환자를 대상으로 의료 지원과 인식 개선 활동을 진행했다.
메이어는 NBC 방송팀과 함께 서울 인근 한센병 마을을 방문했던 일을 떠올리며 “한 어머니가 ‘고통은 병이 아니라 아이들’이라며 눈물을 흘리던 장면이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고 말했다.
아이들이 학교에 가기 위해 매일 산을 넘지만 사회적 차별로 말을 건네는 이가 없다는 이야기는 그에게 봉사와 리더십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했다는 것이다.
이 취재는 NBC ‘투데이 쇼’ 방영을 앞두고 있었으나, 방영 전날 로널드 레이건 당시 대통령이 피격 사건으로 전파를 타지 못했다.
메이어는 한국의 성장 가능성에 대해서도 일찌감치 확신을 가졌다고 밝혔다. 그는 “한국을 떠날 무렵 큰 도약이 이뤄질 것이라 확신했다”며 “박정희 전 대통령은 인권 탄압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지만, 국가의 생존과 발전을 최우선으로 고민하며 한국에 맞는 경제 성장 모델을 구축한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다만 고속 성장의 그늘에 대한 우려도 덧붙였다. 그는 “놀라운 성취 뒤에는 역사와 정체성을 잃을 위험이 있다”며 “젊은 세대가 경쟁과 속도에만 매몰돼 자신의 뿌리를 잊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고령화와 세대 간 단절을 언급하며 “성장의 속도를 잠시 늦추고 사회 전체를 돌아볼 여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