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주한 시간이다. 쫓아오지 않는 시간인데 이맘때는 서두르게 되고, 아직 오지 않은 시간인데 새해를 맞을 준비로 마음도 몸도 바빠진다. 손가락 사이 모래처럼 빠져나가는 시간에 놀라면서도, 한 해를 정리하는 생각에 멈춰 서기도 한다. 그렇다. 마무리가 진행 중이다.
마무리는 달력의 마지막 장만 넘기는 것이 아니라 흩어진 시간의 조각들을 살피고 가장자리까지 다듬는 일이다. 익숙한 일상으로 닳아버린 마루에 새로운 나무를 대어 가다듬는다. 당연했던 하루에 묻히기 쉬운 소중함을 잊지 않기 위해서다. 땡볕과 비로 거칠어진 문틀도 정성스레 손을 본다. 그 역시 나와 우리의 소중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한 해의 가장자리를 정돈하다 보면 나도 미처 보지 못한 모서리의 거친 나무결에도 따뜻한 손길을 잊지 않으신 하나님의 숨결을 느낀다. 아직은 이루지 못한 일들이 거칠고 모질게 마음을 채근하지만, 그조차도 작품으로 만들고 계신 손길을 바라본다. 깊은 숨을 마시고 한 자 한 자 고백한다. “감사합니다.”
지나가는 한 해는 매번 기쁨과 보람은 데리고 가버리고, 후회와 아련한 아픔은 남겨놓는다. 내일을 바라보며 “잘해 보자”고 결단하는 것은 참 좋은 일이지만, 그 눈에 지난날이 그저 과거로만, 그것도 후회로만 남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우리의 갈무리는 지나온 시간을 후회와 아픔으로 보관하는 것이 아니다. 다음에는 잘하겠다는 결심으로 씨를 뿌리는 것이 다가 아니다. 싹을 틔우는 양분은 후회의 눈물, 그리고 고통 그대로가 아니라 이들을 선하게 만드시는 하나님의 손길이기 때문이다. 눈물을 닦으사 소망으로, 고통을 짊어지사 찬송으로 만드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다. 눈물로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그 열매를 거둘 것이다.
그래서 이 옅은 믿음으로도 갈무리한 한 해가 헛되지 않다는 것을 안다. 그 안에 하나님의 인자와 긍휼이 담겨 있고, 우리를 여전히 붙잡아 주신 성실하신 사랑을 알기 때문이다. 내 창고에 생각 없이 쌓아놓은 욕심과 미움을 어느새 햇볕 아래 끌어내 놓고, 섬김과 용서를 잊지 말라고 눈짓하시는 하나님을 보는 것이다.
이제 지나온 길에서 동행하며, 넘어지는 우리와 함께 넘어져 주시고 우리보다 먼저 일어나 우리를 일으키신 주님을 내일로 초대하는 시간이다. 우리의 창고를 은혜로 갈무리하고, 우리의 구석구석을 사랑으로 마무리하자. 그리고 내일을 주님과 함께 찬란한 빛무리로 만드는 새 날로 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