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닫기

유분자 소망소사이어티 이사장 "도전과 개척, 앞으로도 계속 될 여정입니다"

Los Angeles

2025.12.31 19:04 2025.12.31 20:04

  • 글자크기
  • 인쇄
  • 공유
글자 크기 조절
기사 공유
'한인 가정의 파수꾼' 유분자 소망 소사이어티 이사장
1968년 300불 들고 미국행 비행기
한인 간호사 1만명 자격 시험 도와

'삶의 아름다운 마무리 운동 선구자
한·미 양국에서 최고 영예 훈장·메달
한인 간호사의 대모인 유분자 이사장은 일흔이 넘은 나이에 소망소사이어티를 창립? 삶을 아름답게 마무리하자는 운동을 이끌고 있다. 김상진 기자

한인 간호사의 대모인 유분자 이사장은 일흔이 넘은 나이에 소망소사이어티를 창립? 삶을 아름답게 마무리하자는 운동을 이끌고 있다. 김상진 기자

유분자 소망 소사이어티 이사장은 오렌지카운티를 대표하는 한인 개척자다.
 
올해 91세가 되는 유 이사장의 인생은 그 자체로 한인 사회 역사의 일부라고 표현해도 과언이 아니다.
 
1968년 미국에 와 간호사로 근무한 그는 남가주 한인간호사협회를 설립했으며, 2대 회장을 지냈다. 재미간호협회 초대 회장, LA•오렌지카운티 가정법률상담소 이사장을 역임했고 재미간호신보, 해외한인간호원총람을 발행했다.
 
1983년 패스트푸드 체인 비지비(Busy Bee)를 창립, 사업가로서도 수완을 보인 그는 2007년 소망 소사이어티를 창립, 현재까지 이사장을 맡으면서 '아름다운 삶과 마무리'를 돕는 활동을 펴고 있다.
 
구순을 맞은 지난해 5월 유 이사장은 미국 시민이 받을 수 있는 최고 권위 상 중 하나인 엘리스 아일랜드 명예 메달을 받았다. 10월엔 대한민국 국민훈장 중 최고 등급인 무궁화장을 수훈했다. 오렌지카운티 한인 중 엘리스 아일랜드 명예 메달과 무궁화장을 모두 받은 이는 유 이사장뿐이다.
 
지난 2021년 소망소사이어티 '시니어 생활건강 가이드' 출판 기념식 및 창립 14주년 기념식에서 유분자(오른쪽에서 두 번째)소망 소사이어티 이사장이 케이크 앞에서 참석자들과 함께 박수를 치고 있다. 김상진 기자

지난 2021년 소망소사이어티 '시니어 생활건강 가이드' 출판 기념식 및 창립 14주년 기념식에서 유분자(오른쪽에서 두 번째)소망 소사이어티 이사장이 케이크 앞에서 참석자들과 함께 박수를 치고 있다. 김상진 기자

◆개척의 땅으로 향하다
 
1935년 충북 옥천군 옥천읍 죽향리에서 3남 4녀 중 막내딸로 태어난 유 이사장은 광복의 감격과 한국 전쟁의 참상을 겪으며 성장했다.
 
그는 1952년 대전간호학교에 입학했다. 부실한 학교 식단에 대한 항의를 주도한 그는 퇴학 처분을 받았지만, 전교생이 들고일어나 교장에게 복학을 요구한 덕분에 사흘 만에 복학할 수 있었다.
 
간호학교를 졸업한 뒤 세브란스 병원을 거쳐 미 8군 노무자병원(KSC) 간호사가 된 유 이사장은 덕성여대 국문과에 편입, 낮엔 학교에 다니고 밤엔 근무하며 학사모를 썼다.
 
KSC에서 11년간 일한 유 이사장은 대한적십자사 간호사업국장이 됐지만, 1968년 텍사스 파크랜드 병원 취업 허가가 떨어지자 사표를 내고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그가 든 작은 가방엔 간호영어 사전과 옷 몇 벌, 고추장과 멸치볶음이 전부였고 주머니엔 달랑 300달러만 있었다.
 
◆한인 간호사의 대모가 되다
 
세 살 딸과 첫돌을 갓 넘긴 아들을 한국에 남겨두고 미국에 온 유 이사장은 1969년 새해 첫날부터 텍사스 파크랜드 메모리얼 병원에서 일을 시작했다.
 
텍산(Texan)들의 억양과 낯선 곳에서의 도전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은 유 이사장은 이를 악물고 적응 노력을 기울인 끝에 3개월 만에 인근 병원에서 투잡을 뛰는 경지에 도달했다.
 
1970년 LA로 온 유 이사장은 벨플라워의 카이저 병원에 취직했다. 한국의 딸과 아들, 남편도 잇따라 미국에 왔다.
 
생활이 안정되자 유 이사장은 한국에서 온 간호사들을 돌아보게 됐다. 1970년 간호사 필기시험이 의무화되면서 면접만으로  RN(Registered Nurse) 자격증을 취득한 간호사들의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것이다. 3수, 4수 끝에 간호사를 포기하는 이도 속출했다.
 
나성한인간호원협회의 회장에 추대된 유 이사장은 조직을 남가주한인간호사협회로 바꾸고 동료 간호사들의 RN 시험 합격 지원에 나섰다. 1973년 사상 첫 한국어 강의인 제1기 RN 클래스를 개강한 유 이사장은 필리핀계 간호사들이 공유하는 RN 시험 예상문제집을 우연히 입수, 한인 수험생에게 전파했다. 문제집 덕분에 합격률은 80%를 넘었고, 이후 30여년간 RN 리뷰 클래스를 통해 RN 시험에 합격한 간호사는 LA에만 3000명, 전국에선 1만 명이 넘었다. 유 이사장은 "RN 클래스로 한인 간호사들의 미국 정착을 도운 건 내 생에 가장 보람 있는 일"이라고 술회했다.
 
◆한인 가정의 파수꾼이 되다
 
유 이사장은 1983년 한국 최초의 여성 변호사이자 여성 인권 운동가 이태영(1914~1998) 박사에게서 LA에 한국 가정상담소 지부를 세우자는 제의를 받았다.
 
이 박사의 상담소 설립 제안은 이민 인구가 폭증한 한인사회의 시대적 필요와 맞아떨어졌다. '이젠 가정을 간호해야 할 때'라고 생각한 유 이사장은 그해 LA지부의 창립 발기인으로 참여했다.  
 
자원봉사자들의 열의와 희생으로 세워진 상담소(현 한인가정상담소)는 지금까지 번민하는 한인 가정의 곁을 변함없이 지키고 있다.
 
유 이사장은 사업 수완도 발휘했다. 유 이사장을 따라 미국에 온 가족들과 1973년 요식업에 뛰어든 것이다.
 
1973년 애너하임에서 햄버거, 핫도그, 감자튀김을 파는 스낵바로 출발, 2년 뒤인 1975년엔 한식을 주로 파는 '비지비'를 선보였다. 부지런한 일벌이란 뜻이다. 1986년 2호점을 연 비지비는 2005년 8월 14호점까지 확장하며 수백만 달러 매출을 기록했다. 1997년엔 한국 에버랜드 측의 제의로 비지비 에버랜드 지점도 열었다. 비지비는 에버랜드 측과의 계약 기간인 5년 동안 영업했다.
 
◆새로운 도전에 나서다
 
2007년, 유 이사장은 32년간 운영해온 비지비를 다른 이에게 넘겼다. 이듬해 글로벌 금융위기가 찾아왔으니 적시에 사업을 정리한 것이다.
 
당시 일흔이 넘어 은퇴해 편안한 삶을 누릴 법도 한데 유 이사장은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소망 소사이어티를 창립한 것이다. 소망 소사이어티의 모토는 '아름다운 삶, 아름다운 마무리'이다.
 
한인 사회에서 죽음을 미리 준비하자고 하면 다들 싫어한다는 반대도 많았지만, 유 이사장은 언제나처럼 직진했다. 그 옛날 붉은 석양을 바라보며 서부로 향하던 개척자들처럼 말이다.
 
유 이사장의 뚝심 덕분에 연명 치료에 관한 지침을 미리 작성하는 사전의료지시서를 만든 한인은 1만8000명을 훌쩍 넘었다. 시신 기증 서약을 한 이도 2600명이 넘었다.
 
소망 소사이어티는 호스피스, 치매, 올바른 장례문화 교육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소망 소사이어티는 아프리카의 최빈국 차드에서 지난 14년 동안 우물 파기, 학교 설립, 쌀 보내기 운동을 벌였다. 유 이사장은 우물 620개를 파고 9개의 학교를 설립한 이 사업을 지난해 6월 '소망 아프리카 미션(대표 이중열)'으로 이관했다. 죽음 준비 교육에 집중하기 위해서다.
 
지난해 10월 갑작스레 입원까지 했지만 다시 건강을 회복한 유 이사장은 "눈 감는 날까지 소망 소사이어티를 위해 일하고 싶다"고 말했다. 유 이사장의 도전과 개척 여정은 앞으로도 계속된다.
 

☞유분자 이사장은

 
1935년 충북 옥천군 출생에서 태어났다. 대전여중, 대전 간호학교를 나와 간호사로 일하며 1959년 덕성여대 국문과를 졸업했다. 1968년 텍사스 파크랜드 병원에 취업해 미국에 왔다. 1970년 LA 인근 벨플라워 카이저 병원으로 옮겼다. 남가주한인간호사협회 2대 회장, 재미간호협회 초대회장, LA•OC 가정법률상담소 이사장, 재미간호신보, 해외한인간호원총람 발행인을 역임했다. 패스트푸드 체인 비지비(Busy Bee)를 운영했으며, 200 7년 소망소사이어티를 창립했다. 저서로는 '내일은 다른 해가 뜬다(2006)' '그래서 삶은 아름답다(2016)'가 있다.

임상환 기자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