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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내 인생 평가를 멈춰주세요”

Los Angeles

2026.01.04 17:00 2026.01.04 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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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훈식 경제부 기자

우훈식 경제부 기자

2025년은 구직자들에게 결코 따뜻한 한 해가 아니었다. 해고는 늘었고, 채용 공고는 줄었으며, 실업률은 4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구직자 수가 일자리 수를 앞지른 것도 4년 만의 일이었다. 지난해가 2020년 이후 가장 부진한 채용의 해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도 나온다. 불안정한 경제 전망 속에서 이력서를 고치고, 기한 없는 시간을 견뎌온 이들에게 연말은 위로가 필요한 시기였다.
 
그러나 많은 구직자는 예상치 못 한 알림을 받았다. 링크드인(LinkedIn)이 올해 처음 도입한 ‘연말 결산(Year in Review)’은 사용자가 플랫폼에 며칠이나 접속했는지, 새로 맺은 인맥은 몇 명인지, 연결된 사람 중 몇 명이 새 직장을 얻었는지 등을 정리해 보여줬다. 연말 정산처럼 한 해를 정리해 주겠다는 취지였겠지만, 현실과의 온도 차는 컸다.
 
소셜미디어에는 씁쓸한 반응이 쏟아졌다. 한 이용자는 자신의 링크드인 리뷰 화면을 공유하며 “올해 수많은 일자리에 지원했지만, 실제로 얻은 일자리는 0개였다”고 밝혔다. 또 다른 이용자는 “축하합니다. 당신은 실업 상태이고, 지금은 아무도 사람을 안 뽑고 있습니다”라는 문장으로 이 기능을 풍자했다. 숫자로 정리된 한 해는 노력의 크기보다 결과의 부재를 더 또렷하게 보여줬다.
 
이에 대해 링크드인 측은 “2025년이 많은 구직자에게 어려운 해였다는 점을 알고 있다”며, 연말 리뷰는 단순한 취업 성과가 아니라 학습, 네트워킹, 아이디어 공유 등 ‘직업인으로서의 전체 모습’을 돌아보게 하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플랫폼 안에서는 긍정적인 반응도 있었다. 새로 늘어난 인맥 수를 자랑하거나, 가장 많이 교류한 사람을 태그하며 관계의 가치를 강조하는 게시물도 눈에 띄었다. 그러나 이것이 비교의 기준이 되는 순간, 요약은 위로보다 평가에 가깝게 느껴진다.
 
사실 연말 결산은 링크드인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최근 여러 플랫폼은 앞다퉈 사용자의 한 해를 정리하고, 성취를 기념하려 한다. ‘스포티파이(Spotify)’는 매년 ‘랩드(Wrapped)’를 통해 사용자가 가장 많이 들은 노래와 아티스트를 화려하게 정리해 주고,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은 한 해의 추억 사진을 자동으로 묶어 보여준다.  
 
틱톡 역시 시청 시간과 관심 주제를 기반으로 한 연말 리포트를 내놨으며, 심지어는 챗GPT까지 올해 연말 결산 유행에 참여했다. 이 기능들은 대체로 재미와 공유를 전제로 하지만, 어떤 이들에게는 “내가 무엇을 얼마나 소비했고, 무엇을 이루지 못했는지”를 다시 확인시키는 장치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일부 이용자들은 “이제는 내 인생을 그만 리뷰해 달라”고 말한다. 어떤 한 해는 성취보다 버팀이 중요하고, 기록보다 망각이 필요한 시기일 수도 있다. 숫자와 그래프는 편리하지만, 그 안에 담긴 불안과 좌절, 그리고 아직 오지 않은 가능성까지 담아내지는 못한다.
 
모든 삶이 요약에 적합한 것은 아니다. 플랫폼의 연말 결산이 한 사람의 한 해를 정의할 수는 없다. 어려웠던 한 해는 견뎌낸 것만으로도 충분히 무게가 있다. 특히 고용 시장이 얼어붙은 지금, 구직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몇 번 시도했는지’의 집계가 아니라, 다시 시도할 수 있다는 여지와 존중이다. 화려한 연말 요약보다 더 절실한 것은, 조용히 다음 해로 건너갈 수 있는 작은 숨 쉴 틈일지도 모른다.

우훈식 / 경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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