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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광장] 동토에 새겨진 노병의 기억

Los Angeles

2026.01.05 18:39 2026.01.05 1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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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학 6.25참전유공자회 회장

이재학 6.25참전유공자회 회장

6·25전쟁 당시 미군들이 공통으로 회고한 가장 무서운 기억 중 하나는 적의 공격보다 혹독한 전장의 추위였다. 미군 참전용사들의 기억 속 한국전쟁은 총성과 포성만이 아니라, 뼛속까지 파고드는 한국의 겨울과의 싸움으로 남아 있다.
 
흰 눈이 대지를 덮고, 사람들은 따뜻한 온돌방 속에서 크리스마스 캐럴을 들으며 성탄과 새해의 기쁨을 기다리던 망향의 동산, 강원도 양구 북방, 눈보라가 몰아치고 매서운 바람이 옷깃 속을 저미는 외딴 고지 위에서는 눈송이 대신 피가 내렸다.
 
특히 1950년 겨울, 함경남도 장진호 전투를 비롯한 북부 전선의 기온은 영하 30~40도까지 떨어졌다. 이 추위는 생존을 위협하는 적이었다. 총이 얼어 발사되지 않고, 윤활유가 굳어 무기를 분해해 녹여야 했으며, 수통의 물과 식량은 돌처럼 얼어붙었다.  
 
병사들의 발과 손은 순식간에 감각을 잃었고, 동상 환자가 전투 부상자보다 더 많을 정도였다. 눈 속에서 잠깐만 멈춰도 저체온증으로 생명을 잃을 수 있었기에, 미군들은 “보이지 않는 적은 공산군이 아니라 추위였다”고 회상했다.
 
겨울, 크리스마스 캐럴이 울려 퍼지는 계절이 되면 우리는 자연스레 따뜻한 불빛과 가족의 미소를 떠올린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한 세대는 이 시기를 맞을 때마다 가슴 깊은 곳에서 지울 수 없는 또 다른 기억을 또 무겁게 꺼내든다.
 
1952년 12월25일, 중공군의 인해전술에 맞선 공방전을 일컫는 ‘크리스마스고지 전투’를 상기한다. 겨울 혹한 속에서 벌어졌던 중공군과의 치열한 고지 쟁탈전은 하루에도 몇 번이나 고지의 주인이 바뀔 만큼 끈질기고 처절했던 전투다.  
 
전투의 무대는 강원도 양구 북방 1090고지. 이곳에서 방어하던 우리 군은 적의 공격을 백병전 등 거의 모든 수단을 동원해 피에 엉켜 싸웠다. 한 치의 땅이라도 더 확보하기 위한 피아간의 치열한 고지 쟁탈전은 낮과 밤이 뒤섞인 채 헐벗은 산허리는 억수 같은 포화에 잘려나갔다. 몇 번이나 뺏고 빼앗기던 고지, 그 땅 위에서 피 흘린 이름 없는 병사들은 조국 위해 싸우다 젊음에 죽었어도 말이 없다.
 
전선의 병사들은 철모를 눌러 쓴 채 따뜻한 물 한 모금 없이 차디찬 주먹밥을 손에 취고 나라를 위해 눈보라 속을 헤치며 고지를 사수했다. 서로의 차가운 어깨에 등을 기댄 채 열이 아직 식지 않은 총열을 움켜쥐고 조국의 새벽을 기다려야 했다. 어떤 이는 고향의 부모님을 끝내 보지 못했고, 또 다른 이는 연인과의 약속을 가슴에 품은 채 돌아오지 못했다.
 
우리의 행복한 일상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그것은 누군가의 희생 위에 차곡차곡 쌓여 올려진 귀한 평화다.
 
우리는 이 계절이 올 때마다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우리는 그들을 기억하고 있는가. 그들의 이름을 제대로 불러본 적 있는가. 총성이 멎은 뒤에도 역사는 결코 스스로 보전되지 않는다. 누군가의 희생을 잊지 않을 때 비로소 평화는 다음 세대에게 온전한 형태로 전달될 수 있다.
 
오늘도 노병은 차가운 밤하늘 아래 조국을 품고 전우의 손을 붙잡았던 젊은 병사들의 숨결을 어루만진다. 자신의 마지막을 내어주며 우리가 누릴 따뜻한 오늘을 건네준 그들을 잊지 않겠노라고….

이재학 / 6.25참전유공자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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