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전쟁 당시 미군들이 공통으로 회고한 가장 무서운 기억 중 하나는 적의 공격보다 혹독한 전장의 추위였다. 미군 참전용사들의 기억 속 한국전쟁은 총성과 포성만이 아니라, 뼛속까지 파고드는 한국의 겨울과의 싸움으로 남아 있다. 흰 눈이 대지를 덮고, 사람들은 따뜻한 온돌방 속에서 크리스마스 캐럴을 들으며 성탄과 새해의 기쁨을 기다리던 망향의 동산, 강원도 양구 북방, 눈보라가 몰아치고 매서운 바람이 옷깃 속을 저미는 외딴 고지 위에서는 눈송이 대신 피가 내렸다. 특히 1950년 겨울, 함경남도 장진호 전투를 비롯한 북부 전선의 기온은 영하 30~40도까지 떨어졌다. 이 추위는 생존을 위협하는 적이었다. 총이 얼어 발사되지 않고, 윤활유가 굳어 무기를 분해해 녹여야 했으며, 수통의 물과 식량은 돌처럼 얼어붙었다. 병사들의 발과 손은 순식간에 감각을 잃었고, 동상 환자가 전투 부상자보다 더 많을 정도였다. 눈 속에서 잠깐만 멈춰도 저체온증으로 생명을 잃을 수 있었기에, 미군들은 “보이지 않는 적은 공산군이 아니라 추위였다”고 회상했다. 겨울, 크리스마스 캐럴이 울려 퍼지는 계절이 되면 우리는 자연스레 따뜻한 불빛과 가족의 미소를 떠올린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한 세대는 이 시기를 맞을 때마다 가슴 깊은 곳에서 지울 수 없는 또 다른 기억을 또 무겁게 꺼내든다. 1952년 12월25일, 중공군의 인해전술에 맞선 공방전을 일컫는 ‘크리스마스고지 전투’를 상기한다. 겨울 혹한 속에서 벌어졌던 중공군과의 치열한 고지 쟁탈전은 하루에도 몇 번이나 고지의 주인이 바뀔 만큼 끈질기고 처절했던 전투다. 전투의 무대는 강원도 양구 북방 1090고지. 이곳에서 방어하던 우리 군은 적의 공격을 백병전 등 거의 모든 수단을 동원해 피에 엉켜 싸웠다. 한 치의 땅이라도 더 확보하기 위한 피아간의 치열한 고지 쟁탈전은 낮과 밤이 뒤섞인 채 헐벗은 산허리는 억수 같은 포화에 잘려나갔다. 몇 번이나 뺏고 빼앗기던 고지, 그 땅 위에서 피 흘린 이름 없는 병사들은 조국 위해 싸우다 젊음에 죽었어도 말이 없다. 전선의 병사들은 철모를 눌러 쓴 채 따뜻한 물 한 모금 없이 차디찬 주먹밥을 손에 취고 나라를 위해 눈보라 속을 헤치며 고지를 사수했다. 서로의 차가운 어깨에 등을 기댄 채 열이 아직 식지 않은 총열을 움켜쥐고 조국의 새벽을 기다려야 했다. 어떤 이는 고향의 부모님을 끝내 보지 못했고, 또 다른 이는 연인과의 약속을 가슴에 품은 채 돌아오지 못했다. 우리의 행복한 일상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그것은 누군가의 희생 위에 차곡차곡 쌓여 올려진 귀한 평화다. 우리는 이 계절이 올 때마다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우리는 그들을 기억하고 있는가. 그들의 이름을 제대로 불러본 적 있는가. 총성이 멎은 뒤에도 역사는 결코 스스로 보전되지 않는다. 누군가의 희생을 잊지 않을 때 비로소 평화는 다음 세대에게 온전한 형태로 전달될 수 있다. 오늘도 노병은 차가운 밤하늘 아래 조국을 품고 전우의 손을 붙잡았던 젊은 병사들의 숨결을 어루만진다. 자신의 마지막을 내어주며 우리가 누릴 따뜻한 오늘을 건네준 그들을 잊지 않겠노라고…. 이재학 / 6.25참전유공자회 회장열린광장 동토 노병 크리스마스고지 전투 겨울 크리스마스 크리스마스 캐럴
2026.01.05. 19:39
5만3000명. 주한미군전우회(KDVA) 회원 수다. ‘한국 복무’라는 공통점으로 모인 이들은 단순한 전우회를 넘어 한미동맹의 가치를 확산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KDVA는 지난 24~25일 샌디에이고에서 연례 총회 및 한미동맹 콘퍼런스를 개최했다. 참석자들의 ‘한국 사랑’은 여전했다. KDVA 회장이자 제25대 주한미군사령관을 지낸 로버트 에이브럼스 전 사령관은 자신의 군 경력 중 유일한 아쉬움으로 “좀 더 일찍 한국에서 근무하지 못한 점”을 꼽았다. 그는 현재 미주리주의 한 시골 마을에 거주하고 있다. 에이브럼스 전 사령관은 “한국에서 3년간 근무했다고 하면 ‘아직도 한국에 미군이 있느냐’고 묻는 이들이 있다”며 “그럴 때마다 한미동맹의 중요성을 새삼 깨닫는다”고 말했다. KDVA는 단순한 전우 모임을 넘어 미국 내 최대 ‘친한’ 싱크탱크로 발전할 잠재력을 지닌 조직으로 평가받고 있다. 단체 측에 따르면 전직 주한미군이 모두 가입할 경우 회원 수는 최대 330만 명에 달할 수 있다. 특히 에이브럼스 회장을 비롯해 커티스 스캐퍼로티, 빈센트 브룩스, 월터 샤프 등 전직 4성 장군들도 대거 포함돼 있다. 이들의 풍부한 전략 경험과 전문성은 한미 군사동맹 강화의 중요한 자산으로 꼽힌다. 정책적·외교적·군사적 측면에서 이들의 조언은 한국 정부의 그 어떤 로비 활동보다 값진 자원이라는 평가다. 하지만 KDVA의 현실은 녹록지 않다. 자체적인 펀드레이징이 어려워 사실상 한국 보훈단체인 한미동맹재단의 재정 지원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한미동맹재단은 KDVA의 운영을 우회적으로 지원하기 위해 설립된 단체다. KDVA가 미국 내 비영리법인이라는 한계 때문에 한국 정부로부터 직접적인 보훈단체 지원을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KDVA는 한미동맹의 최전선에서 여론을 형성하고 한국의 이미지를 긍정적으로 확산시키는 사실상 ‘비공식 외교 사절단’ 역할을 하고 있다. 이런 조직을 한국 정부와 한인사회가 외면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 미국 내에서, 그것도 비(非)한인들이 중심이 되어 한국과의 동맹 강화를 위해 헌신하는 단체가 얼마나 될까. KDVA 회원들이 내는 목소리는 한미 양국의 신뢰를 다지는 일이며, 그 속에는 한국의 위상을 높이려는 진심이 담겨 있다. 그들이 한미동맹의 가치를 미국 사회 전반에 확산시킬 수 있도록 돕는 일,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동맹 강화의 출발점일지도 모른다. 김경준 기자취재 수첩 한국 노병 한국 사랑 노병들 한국 한국 정부
2025.10.29. 22:05
한인 밀집 거주 지역인 풀러턴의 한 공원에서 한국전쟁 75주년 기념행사가 열렸다. 이번 행사는 LA총영사관 주최로 진행되었으며, 참전 미군 용사 수 명과 해외 거주 한국군 참전 노병 10여 명이 참석하여 의미를 더했다. 행사가 열린 공원에는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미군 용사 3만 6000여 명의 이름이 새겨진 거대한 추모비가 세워져 있다. 이 비석은 참혹했던 전쟁의 기억 속에서 고귀한 희생과 자유를 위한 연대를 상기시키는 영원한 표상이자 증거가 되고 있다. 특히 이 기념비는 미주 한인 사회가 정성을 모아 건립한 자랑스러운 한국전쟁 기념물로, 많은 이들이 찾아 애국심을 고취하고 있다. 이 기념비를 볼때마다 우리 참전 노병들에게는 지울 수 없는 한 가지 아쉬움이 남아있다. 조국의 위기에 목숨을 바친 13만 8000여 명의 한국군 전사자들의 넋, 그들의 헌신과 희생은 그 어디에도 새겨져 있다. 그들의 영혼을 기리는 작은 비석 하나조차 아직 세워지지 못했다는 아쉬움과 송구스러움이 노병들의 가슴에 응어리져 있다. 90대에 이른 참전 노병들은 살아남은 자로서 간절히 호소하고 있다. 죽은 전우들의 이름이 땅에 남은 마지막 참전용사들의 눈빛 속에, 감사와 평화를 비추는 그날이 오기를 기대하며 이름이 아닌 숫자로만 기억되는 이들의 희생을, 이제는 이름과 사연이 있는 영혼들로 되돌려야 한다는 바람이다. 그 처절했던 전투에서 용케도 살아남은 이들은 전사한 전우들에게 아직도 미안한 마음을 품고 있다. 김일성 고지, 스탈린 고지, 백마고지, 수도고지, 피의 능선, 철의 삼각지 등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전투에서 아침에 고지에 올라간 신임 소대장이 저녁에 시체로 내려오는 광경을 목격하거나 상상만 해도 가슴이 찢어진다고 토로한다. “이 몸이 죽어서 나라가 산다면 아아, 이슬같이 죽겠노라”는 노래처럼 죽음으로 나라를 지켰다는 자부심은 점차 시들어가고 있는 현실이다. 현재 잘사는 대한민국의 과거에는 절대 공짜가 아닌 피와 땀이 스며있음을 우리는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국가를 위해 희생한 이름들을 지역사회가 세대를 이어가며 그들의 이야기를 잊지 않겠다는 다짐의 표식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영혼이 담긴 ‘충혼비’, 이 작은 비석은 단지 돌덩이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의 기억이고, 정체성이며, 우리 후손에게 물려줄 역사다. 미주 한인 사회가 다시 한번 뜻을 모은다면, 이 소망은 현실이될 수 있다. 우리는 미국의 희생에 감사하며, 자유를 위해 싸운 우방을 진심으로 존경하고 있다. 미군 용사들의 헌신을 잊지 않고 매년 추모식을 거행하는 것은 당연하고 고귀한 일이다. 그러나 조국을 위해 목숨 바친 우리 형제와 전우의 희생에 대한 기억마저 희미해져 가는 현실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다. 뜻을 함께하여 동참하는 손길은 결코 크고 작음을 따지지 않는다. 이 땅에 남은 마지막 참전용사들의 가슴속에, 감사와 평화를 심는 그날까지 우리 동포 여러분의 따뜻한 관심과 성원을 부탁하고 싶다. 이제 기약 없는 여생을 보내는 참전 노병들은 간절히 말한다. “전우들의 이름 앞에서 경례 드리고 싶다”고. 젊음의 꽃은 지고 부흥의 꽃을 피운 나라를 위해 싸우다 죽은 전쟁 영웅들의 얼을 품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이 작고 소박한 소망, 한국군 전사자 충혼비 하나를 세울 수 있다면 그것은 단지 돌비석이 아닌 우리 민족의 기억과 존엄, 정체성을 다시 세우는 일이 될 것이다. 이재학 / 6.25참전유공자회 회장발언대 충혼비 노병 참전 노병들 미군 용사들 마지막 참전용사들
2025.07.06. 19:00
제20대 대한민국 대통령에 윤석열 국민의 힘 후보가 당선하며 보수야당이 5년만에 정권을 탈환했다. 전통적으로 보수성향이 강한 워싱턴 동포사회는 윤석열 대통령 당선으로 축제 분위기다. 본보에는 80대 노병부터 20대 대학생까지 새로운 윤 대통령에게 축하를 건내는 다양한 메시지가 몰렸다. 윤 당선자에게 바라는 이들의 공통적인 주문은 "한미동맹의 강화"와 "국민 대통합"이었다. 대한민국 재향군인회 미동부지회 김인철 회장은 "지금까지 소흘했던 한미동맹을 더욱 굳건히 해달라"고 말했다. 김 회장은 "외교와 국방에 있어서 미국과 엇박자 없이 함께 나가는 기조가 되살아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특히 "분단국가로서 통일 노력에 중점을 두고, 무엇보다 국민 통합을 이루는 대통령이 되시길 바란다"고 주문했다. 워싱턴 한인연합회 스티브 리 회장은 "0.8%의 표차로 좌우된 대통령 선거전에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는 점에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성숙했다 느끼며 자랑스러웠다"는 소감을 밝혔다. "미국이었다면 재검표와 소송, 반발이 이뤄졌을 것"이라고 지적한 리 회장은 "당선인이 검찰총장 출신이지만 삼권분립 정신에 기초해 나라를 통합시키고, '사람에 충성하지 않겠다'던 과거의 발언처럼 헌법에 따른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해달라"고 말했다. 헬렌 원 메릴랜드 한인회장 역시 "대한민국의 정치와 외교를 이끌며 한국의 위상과 국민의 기대를 부응하는 대통령으로 기록되시길 바란다"면서 "전세계에 선한 영향력을 미치는 국가로 한국을 이끌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송재성 한미자유연맹 총재는 윤 당선인에게 "대한민국의 화합과 단결은 물론 250만 해외동포들의 권익신장을 위한 정책을 수립해 주시고 자유민주주의 수호와 인권및 한미동맹강화에 각별히 신경 써달라"고 말했다. "종북세력을 척결해 자유민주국가의 위상을 올려 주시길 바란다"고도 덧붙였다. 한국보수주의연합(KCPAC) 이현승 워싱턴지국장은 "새로운 정부가 비굴한 한반도 평화와 대중국 굴종으로 임기 5년의 이익과 지지율에만 초점을 맞추었던 현정부의 잘못을 근본적으로 바로 잡아야 한다"면서 "한국의 좌파정권에서 탄압받던 북한인권과 북한의 자유를 위한 노력도 해주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 지국장은 윤 당선자가 "자유 민주주의 체재의 통일대통령이 되길 바란다"는 덕담도 덧붙였다. 우리민족교류협회 워싱턴지회장으로 워싱턴 민주평통 간사를 역임중인 김유숙씨는 "남남 갈등으로 갈라진 대한민국을 화합시키고 평화통일의 발판을 이루어 나가시는 대통령 되길 빈다"고 말했다. 이번 선거로 확인된 젊은 보수층들의 목소리는 워싱턴에서도 터져 나왔다. 이 중 조지메이슨 대학원 김준성 군(국제안보학과)은 "한국의 외교 노선은 중국과 북한을 중요시하는 이상주의적 수정주의자들로 통해 전통적 자유민주동맹체제가 많이 회손 됐다"면서 "한미동맹을 다시 재건하고 더나아가 인도태평양 동맹체제에서 군사적 경제적 동맹국으로 대한민국이 핵심 역할을 할수 있도록 기여해 주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박세용 기자 [email protected]대학생 노병 우리민족교류협회 워싱턴지회장 대한민국 대통령 이현승 워싱턴지국장
2022.03.10. 14: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