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한 해, 나는 많은 일을 겪었다. 57세 막내 여동생을 잃었고, 친구 시인도 떠나보냈다. 한국에서 4개월 머무는 동안 얻은 것도, 놓친 것도 많았다. 돌아보니 지금까지 살면서 수많은 역할을 감당했고, 그때마다 인생의 마지막처럼 열정을 냈다.
우리는 사회 구성원으로 태어난다. 자라나면서 다른 사람들처럼 행동해야 한다는 학습을 통해, 자의 반 타의 반 사회가 요구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스위스의 분석심리학 창시자 칼 융은 이 역할을 페르소나라고 불렀다. 페르소나는 배우가 무대에서 쓰는 가면이라는 뜻의 라틴어에서 왔다.
신화학자 조셉 캠벨은 말한다. 사회 적응을 위한 역할인 페르소나와 자신의 정체성을 동일시하지 말라고. 페르소나는 단지 인생 게임에 필요한 가면일 뿐이니 어떤 역할이든 집착하지 말라고.
그의 말은 자칫 인생을 가볍게 살아도 된다는 뜻으로 오해할 수 있다.
배우는 배역을 마치면 다른 역할로 옮겨간다.
인생의 배역은 다르다. 성공도 실패도 실제다. 페르소나의 경험을 통해 인격이 형성되고 성품이 갖춰진다. 인생이라는 무대에서는 장기간에 걸쳐 여러 역할을 동시에 이행해야 한다. 한번 어머니는 평생 어머니이고 가족 관계는 대대손손 얽힌다.
목구멍이 포도청인지라 직장생활은 은퇴 전까지 지속된다. 연습 한번 없이 인생 무대에 올라, 사는 날까지 수많은 역할을 동시다발적으로 행하면서 좌충우돌한다.
생의 페르소나는 그 역할만큼 다양한 인격을 드러낸다. 어떤 역할을 하든 여전히 나다. 선행도 악행도 내 진정한 단면이다. 인생은 연극이라고, 그러니까 배역을 마치고 무대에서 내려오면 그만이라고, 강 건너 불구경하듯 자기 삶에 무책임할 수 없다. 존재론적인 관점에서 볼 때, 그 페르소나의 삶이 내세에 미치는 영향을 생각해보라.
아무려나, 오늘 살아있는 모든 존재는 승리자다. 배역에 충실했든 허술했든, 이 시간 살아있다면 됐다. 과거 한때 생사를 가르는 막장에 갇혀있었다 해도, 지금 존재하다면, 잘한 거다.
누가 내게 이 배역을 맡겼는가. 사랑하는 사람들이다. 내가 포용한 삶이니 궁극적인 책임은 내 몫이다. 내 인생의 배역은 내가 가장 잘 안다. 내가 만들어가야 한다.
내일도 모레도 살아있는 한, 우리는 각자에게 주어진 배역을 준행해야 한다. 잘하려 애쓰지 말고 할 수 있는 만큼 하면 된다. 그 기준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나이어야 한다. 페르소나 뒤에 가려진 나는 대체할 수 없는 나 자신이다. 극장 배우와 다른 점이다.
진정, 본연의 나로 살 일이다. 길들여진다 해도 길들여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멈추어야 할 때 멈출 수 있는 용기를 내면 된다.
지난 한 해, 우리 각자가 맡은 배역이 다양했다. 그만큼 숨찬 시간을 보냈다. 이 순간까지, 우리는 잘 견뎌왔다. 우리 모든 페르소나에게 갈채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