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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컬처에 빠지다] 이건희 컬렉션이 보여준 품격

Los Angeles

2026.01.12 18:18 2026.01.12 1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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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털리 코리안아트소사이어티 회장

로버트 털리 코리안아트소사이어티 회장

미국은 지금 책을 읽지 않고, 박물관을 찾지 않으며, 음악회를 가지 않고, 예술 전반에 대한 존중이나 애정을 드러내지 않는 대통령 아래에 살고 있다. 그는 재임 기간 내내 예술 예산을 삭감했고, 예술과 예술가들에 대한 전반적인 경멸을 공공연히 표현해왔다.
 
학교에서 예술 교육 프로그램이 해체되면서 우리는 예술가의 수가 줄어드는 세대뿐 아니라, 예술에 대한 지식이나 관심 자체가 부족한 대중을 양산하게 될 것이다. 이는 곧 예술 후원의 감소로 이어진다.  
 
학교에 재즈 밴드나 오케스트라가 사라질 때, 우리는 단지 음악 교육의 축소만을 목격하는 것이 아니다. 학생 시절 재즈나 관현악 연주를 직접 듣지 못한 세대가 자라나면서, 보다 정교한 음악 예술에 대한 감상 능력 자체가 형성되지 않는다.  
 
오늘날 젊은 세대 가운데 좋아하는 클래식 작곡가나 재즈 음악가를 말할 수 있는 이는 극히 드물다. 시각예술 분야에 대한 예산 삭감이 이어진다면, 좋아하는 화가나 조각가를 말할 수 있는 젊은이를 찾는 일은 더 어려워질 것이다. 기성세대는 오보에와 바순을 구별하지 못하는 대중을 한탄했지만, 다가올 세대는 오보에와 땅돼지를 구분하지 못하는 수준에 이를지도 모른다.
 
이 때문에 예술 분야에서의 민간 자선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 그러나 이러한 필요성에도 불구하고, 2024년 미국 내 개인의 예술 기부는 30% 이상 감소했고, 기업 후원은 42%나 줄어들었다. 이는 SMU 데이터아츠의 조사 결과다.
 
반면 한국은 공공과 민간을 아우르는 예술 재정 지원이 꾸준히 증가해 왔다. 그리고 올해 상당 기간 동안 미국인들은 한국의 예술 후원이 어떤 모습인지를 직접 확인할 기회를 갖고 있다. 삼성의 후원으로 열린 ‘한국 국보전: 2000년의 예술’ 전시는 최근 한국 정부에 기증된 고 이건희 회장 가문의 개인 소장품을 공개하고 있다.
 
2만1000점이 넘는 소장품 가운데 국보급 유물을 포함한 주요 작품들이 워싱턴 DC 국립아시아미술관에서 2월 1일까지 전시되며, 3월 7일부터 7월 5일까지는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에서 이어진다. 이후 이 전시는 영국 런던의 대영박물관으로 이동한다.
 
이 컬렉션은 1940년대 초 삼성 창업주 이병철 회장이 수집을 시작했고, 이후 가족들이 이를 이어왔다. 그의 아들 이건희 회장이 2020년 별세한 직후, 가족은 이 소장품을 국립중앙박물관을 비롯한 한국의 여러 국공립 미술관에 기증했다.
 
이 정도 규모와 수준의 컬렉션을 다시 보려면 한국을 직접 찾아가야 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전시는 놓쳐서는 안 될 기회다. 한국 전통 회화와 조각, 도자기뿐 아니라 서구에서는 좀처럼 접하기 힘든 근현대 미술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삼성 가문은 국립현대미술관에만 1488점의 작품을 기증했다.
 
개인적으로 나는 유화 작품들을 특히 좋아한다. 이 유화 컬렉션은 전통에서 근대로 이어지는 미술사의 흐름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공백을 메워준다. 폭넓은 대중적 이해를 목표로 한 것이 바로 이병철의 수집 철학이었고, 이를 국민에게 돌려주려 한 것이 가족의 기증 취지였다. 이는 예술 예산을 꾸준히 확대해 온 한국 정부의 방향성과도 맞닿아 있다. 이러한 인식은 우리가 미국에서 선출하는 정치인들에게도 반드시 심어줘야 할 가치다.
 
최근 레너드 로더와 애그니스 건드의 별세로, 카네기·록펠러·애스터·구겐하임·프릭 가문으로 이어져 온 미국의 거대 예술 후원 전통이 저물고 있음을 실감하게 된다. 데이비드 게펀과 마이클 블룸버그 등 일부 후원자들이 여전히 활동 중이지만, 이들 역시 대부분 80대다.  
 
새로운 부유층과 그들이 이끄는 기업들은 점점 더 큰 소득을 올리면서도 예술에 기부하는 비율은 갈수록 줄이고 있다. 여기에 예술 예산을 유지하기보다 자신의 이름을 건 건물에 집착하는 대통령까지 더해지면서, 우리는 오늘날의 정치·산업 지도자들처럼 무지하고 문화적 소양이 결여된 대중이 주류가 되는 미래를 마주하고 있다.
 
올해 연방의회 선거에서는 책을 금지하는 지도자 대신 읽는 지도자, 예술가를 박탈하는 지도자 대신 지지하는 지도자를 선택해야 한다.
 
(이 글의 일부는 곧 출간될 로버트 털리의 회고록 『잉크타운(Inktown)』에서 발췌했습니다.)
 
▶코리안아트소사이어티: 이메일([email protected])/페이스북(Facebook.com/RobertWTurley)

로버트 털리 / 코리안아트소사이어티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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