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가 시작됐다, 해를 보내고 맞이하면서 사람들은 계획을 세우고 다짐도 한다. 일 년짜리 계획도 있고 여러 해에 걸친 플렌도 있다. 생각의 끝을 따라가다 보면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가 같은 근원적인 물음에 직면하기도 한다.
내 사무실 벽에는 ‘햇살을 온 누리에’라는 작은 나무판 위에 쓴 글이 걸려있다. 그 글이 걸리게 된 사연은 옛날 옛날로 거슬러 오른다. 반백 년 전쯤의 얘기다. 중학 졸업 후 형편이 어려워 진학을 못하고 농사를 지었다. 현실은 막막했지만 열여섯 푸르디푸른 계절. 나는 평생 좌우명 삼아 살아갈 등대를 찾고 있었다.
호롱불 밝히며 살던 그 시절, 해가 지면 세상은 깜깜했다. 칠흑 같은 방에 등잔을 켜면 어둠이 저만치 물러났다. 등잔 하나가 밝혀주는 세상이 좁지 않았다. 이 작고 외진 시골 마을을 밝히는 등불로 살아가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촛불은 더 밝고, 호야등은 바람에도 끄덕 않고 훨씬 환하고 멀리 불빛을 비추었다. 새벽이 오면 한 줌 햇살이 구석구석 숨어있던 어둠까지 걷어내면서 아침이 밝아왔다. 밤새 얼었던 땅도 스르르 녹아버렸다.
동트면 들에 나가 풀 베고 해 지면 지게 지고 돌아오는 농사꾼으로 사는 동안 나는 자연의 일부가 되었다. 어둠을 물리치는 등잔불 하나. 누리를 밝히고 얼어붙은 대지를 녹이며 곡식을 여무는 햇살 한 줌. 지극히 사소하고 평범해 보이지만 귀하디 귀한 것들이 내 속에 들어와 내 몸을 이루었다. 햇살처럼 고마운 존재가 어디 있겠는가. 그런 사람이 되자. 그렇게 ‘햇살을 온 누리에’라는 말이 내 평생의 좌표가 되었다.
그 몇 년 뒤, 해남 대흥사 입구에서 불에 달군 인두로 나무판에 그림이나 글씨를 새겨주는 분을 만났다. 그분께 부탁하여 저 나무판을 만들었다. 작은 글씨로 당시 날짜 -단기 사천 삼백 십년 ‘정월 초하루’-가 표기되어 있다. 서기로 치면 1967년. 솔담배 한 값에 500원 하던 시절, 그 정도 값을 치렀던 성싶다.
이사할 때마다 나무판을 모셔가 책상 앞에 걸어놓았다. 미국까지 가져왔다. 마음속 깊이 넣어둔 저 말을 따라 살려고 노력했다. 삶의 고비에서 어떤 결정이 필요할 때 기준이 되었다. 내가 생각하고 행동하고 결단해야 할 때 그 일이 가져올 손익보다는, 내 주변을 밝게 하고 따뜻하게 하는 일인가를 판단의 근거로 삼았다.
저 글은 이를테면 내생의 돛단배를 조정하는 키다. 2014년, 아내는 물론 많은 분이 만류했지만 결국 혼자 3주간 북한을 방문했던 이유도 저 말 속에 담겨있다.
벽에 걸린 빛바랜 나무판은 내 인생의 나침반이다. 매일 저 글을 보면서 묻는다. 오늘도 저 말씀에 합당한 하루를 살았는가. 온 누리는커녕 내 발밑이나 제대로 밝히며 살아가고 있는가. 한 주일, 한 달, 일 년을 지나면서도 같은 질문을 한다.
개가 달려가면 매화꽃 떨어지고(拘走梅花落), 닭이 걸어가니 댓잎 돋아난다(鷄行竹葉生)고 했다. 나는 어떤 발자국을 남겼을까. 그리고 어떤 무늬를 남길 수 있을까, 늘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