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이 과거를 빗대어 달라진 현재를 비판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주변 상황은 달라질 수 있고, 사람과 규칙도 일부 변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독자들이 대부분 공감할 수 있다면 우리 기억을 조금은 되돌려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30년 전 미국에 오자마자 느꼈던 생각은 바로 ‘책에서만 배우지 않고 와봐야만 알 수 있는 것들이 있다’였다. 미국은 ‘나와 다른 것들에 대한 포용력’이 뛰어났고, ‘여유와 긍휼함’이 있었다. 실용적이면서도 합리적이었다. 이런 새로운 환경은 딱딱한 봉건적 잔재가 남은 사회에서 체면을 중시하던 한국 출신인 필자를 서서히 무장 해제시켰다. 존댓말을 쓰거나 가식적이지 않고도 상대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법을 배웠음은 물론이다.
시민들은 피부색과 언어를 떠나 상대를 인정하고 존중했으며, 곤경에 처한 타인을 위해 팔을 걷어붙이곤 했다. 다른 선진국들과 굳이 비교하지 않더라도 강대국인 미국의 존재 이유가 거기에 있었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미국은 모두가 오고 싶고, 살고 싶고, 누리고 싶은 나라였다. 그래서 이민도 자연스럽게 늘어났다. 특히 캘리포니아주는 기회의 땅이자 축복의 공간으로 여겨져 수많은 이민자가 큰 가방을 들고 LA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문호를 열어 놨기 때문에 감수해야 하는 것들도 충분히 이해한다.
불체이민자들의 각종 범죄가 늘었으며 이는 자연스럽게 사회적 문제로 부각됐다. 이 과정에서 소위 ‘바구니 안에 썩은 사과를 골라내기 위해’ 과도한 힘을 쓴 나머지 바구니 전체가 흔들리고 튼실한 사과들도 상처를 입거나 그럴 위험에 놓이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모든 미국인의 삶에 위협이 될 정도로 무리하게 해야만 하는 일인지 되묻게 된다.
안타깝게도 이 무리한 과정에서 미국이 가장 자랑스러워하던 인도적, 도덕적, 인명 중시의 헌법적 가치가 무너졌다. 아이와 노약자, 여성은 보호받지 못했으며, 법을 집행하는 공무원들은 기본적인 직무 교육을 받지 못해 마치 성난 버팔로처럼 날뛰었다.
이제는 글로벌 시대다. 사람들은 여러 국가에서 필요에 따라 국적을 취득하고 나름 주어진 국적의 의무에 최선을 다하며 살아간다. 열심히 일해 세금을 납부하고, 규정을 준수하며, 이웃들과 함께 살아가기 위해 노력한다. 불만이 있다고 태어난 조국을 떠나 다른 곳으로 이주하는 미국인도 있다. 나와 가족의 삶이 안전하고 풍요로워진다면 누구에게나 선택권이 있다.
미국서 살아가는 우리는 모두 안전한 삶을 누릴 자격과 권리가 있다. 의무를 다해왔기 때문이다.
아내가 아침에 문득 말했다.
“미네소타를 보며 세상이 험악해진 것을 실감해. 매일 아침 출근하는 아빠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오늘도 안전하게 돌아오길 바라고 기도하는 것이 나뿐만은 아닐 거야.”
공무원의 이름과 명분으로 더는 무고한 시민을 죽이지 말라. 법 집행기관들은 이제라도 시민 대응 수칙을 다시 살펴보고 주민들의 피해가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다.
미국은 생명을 존중하고 이웃과 커뮤니티를 중시하기 때문에 스스로 위대하다고 하지 않았나. 200년 넘게 공들여 만든 법규와 집행 방식은 어디로 가버린 것인가?
아니면 이런 가치를 이제 모두 포기한다고 선언할 것인지 위정자들은 답해야 할 것이다.
그저 선거가 오면 표를 바라며 상투적인 구호를 남발하지 말고 이제라도 모든 것을 내려놓고 시민들을 보호하는데 나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