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컴 최태영 대표] 코리아 콘퍼런스 새 판 짠다 G20·APEC 일궈낸 ‘디테일의 힘’ K-스타트업 미국 진출 길 지원 "결과로 실력을 증명하는 것 뿐"
인터컴의 최태영(사진) 대표는 ‘컨벤션’이라는 말조차 낯설던 1985년 사업을 시작해 매출 500억원이 넘는 대표적인 컨벤션 기업으로 키워낸 인물이다.
정보사에서 군 복무를 하던 최 대표는 해외 자료를 분석하는 업무를 맡았고, 그 과정에서 처음 접한 개념이 바로 ‘컨벤션 산업’이었다. 당시 한국은 1986년 아시안게임과 1988년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있었고, 그는 “앞으로 반드시 커질 산업”이라고 직감했다.
군 복무 중 휴가를 나올 때마다 한국관광공사부터 일본대사관까지 여러 기관을 찾아다니며 관련 자료를 모았고, 전역 직후 곧바로 사업에 뛰어들었다. 그렇게 시작한 회사가 지금의 인터컴이다.
이후 40년 동안 단 한 번도 적자를 기록하지 않았다.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G20, 핵안보 정상회의 등 굵직한 국가 정상급 행사를 모두 책임지는 위치에 올랐다.
최 대표는 “국가 행사는 실수하면 곧바로 국가 이미지에 타격을 주는 분야”라며 “결국 경험에서 나오는 노하우가 전부”라고 말했다. 그는 인맥이나 홍보보다 ‘결과’로 평가받는 길을 택했고, 오랜 시간 현장에서 실력으로만 버텨왔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전 세계적인 극찬을 받은 APEC 행사 준비 과정에서도 쉽지 않은 고비가 있었다. 개최지인 경주가 지나치게 작은 도시 아니냐는 비판이 쏟아졌지만, 그는 역사적 의미와 인근 지역을 포함한 숙박 인프라를 종합적으로 판단했다. 가장 큰 문제는 인력이었다. 지역 내 전문 인력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그는 적극적인 현장 교육으로 이를 해결했다.
최 대표는 “국가 행사가 성공하려면 세 가지가 필요하다. 안정적인 국가 시스템, 국민의 참여, 그리고 문화의 깊이”라며 “이 세 가지가 모두 갖춰졌을 때 비로소 세계가 감동한다”고 말했다.
특히 어려웠던 부분은 미디어센터 운영이었다. 예상보다 훨씬 많은 약 4000명의 해외 기자단이 몰렸지만, 공식 미디어센터 수용 규모는 1000명 이하에 불과했다. 그는 모든 기자회견을 스트리밍으로 전환하고, 야외 취재·네트워킹 공간을 별도로 마련해 문제를 해결했다. 해당 공간에는 푸드트럭도 설치됐으며, ‘흑백요리사’로 알려진 옥동식 셰프가 참여하면서 기자들 간 자연스러운 교류가 이뤄졌다.
승승장구만 해온 것처럼 보이는 그에게도 위기는 있었다. 코로나19 팬데믹 시기 각종 이벤트가 취소되면서 회사가 휘청였다. 그러나 정부의 고용유지지원금 없이도 흑자를 유지했다. 비결은 명확했다.
그는 “항상 주력 사업과 비주력 사업을 5대 5로 가져간다”며 “비주력이던 온라인 컨벤션을 미리 준비해 둔 것이 코로나 시절 빛을 발했다”고 설명했다.
행사가 전면 중단된 시기에도 직원들은 매일 출근해 학습과 브레인스토밍을 이어갔다. 기획력을 갈고닦은 결과, 현재는 오프라인과 온라인을 결합한 하이브리드 행사가 늘어나며 오히려 매출 구조가 더 좋아졌다. 그는 이를 두고 “위기가 기회라는 말의 가장 현실적인 사례”라고 표현했다.
최 대표가 이번에 LA를 찾은 이유는 코리아 콘퍼런스 때문이다. 그는 한국 스타트업의 미국 진출을 돕는 이 행사에 40년간 쌓아온 노하우를 접목해 더 완성도 높은 콘퍼런스로 만들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그는 미국 내 컨벤션도 꾸준히 직접 찾아다니며 연구해 왔다. 최 대표는 “솔직히 디테일이 부족하다는 인상을 많이 받았다”며 “특히 아시아 문화에서 중요한 ‘의전’ 부분은 상당히 아쉬웠다”고 말했다. 이어 코리아 콘퍼런스를 통해 인터컴의 역량을 보여주고, 향후 미국 내 사업 확장도 진지하게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그의 목표는 단순한 이벤트 회사를 넘어서는 것이다.
최 대표는 “코리아 콘퍼런스가 지식과 노하우를 전 세계와 공유하는 플랫폼이 되길 바란다”며 “사회적 역할을 하는 행사, 그런 무대를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40년을 한 분야에 바친 그의 말에는 과장이 없었다. 오직 현장에서 쌓아온 경험과 ‘실력으로 증명한다’는 단순한 원칙만이 남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