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카고 미술관은 뭐니뭐니 해도 인상파 작가들의 작품으로 유명하다. 고흐, 고갱, 르느와르, 마네, 모네, 슈라, 캘리봇 등 내노라하는 인상파 작가들이 작품이 시카고 미술관에는 가득하다.
시카고 미술관이 인상파 작가들의 대작들을 대거 수집할 수 있었던 이유는 이들이 활동하던 당시 이들의 가치를 알아보고 수집한 시카고 지역 컬렉터들이 작품을 미리 확보한 뒤 나중에 이를 시카고 미술관에 기증했기 때문이다. 인상파 작가들의 작품이 전세계적으로 인정받은 뒤 작품 가격이 천정부지로 뛴 뒤 사들였다면 이 같은 대작들을 소장하기는 사실상 힘들었을 것이다. 이런 이유로 고대와 중세 대작들에 비해 인상파 작품이 시카고 미술관에 많다는 것이 업계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시카고 미술관에는 유럽 작가들의 인상주의 작품 말고도 미국 작품도 여럿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작품은 그랜트 우드의 ‘아메리칸 고딕’일 것이다. 1930년에 만들어진 이 작품은 현재 시카고 미술관 아메리칸 갤러리에서 전시되고 있다. 아메리칸 미술에 대해 전문적인 지식을 가지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중년 남성과 여성이 전형적인 미국의 단독 주택 앞에서 무표정한 모습으로 농기구를 들고 서있는 모습은 여러 광고나 코미디 프로에서 패러디되면서 전세계적으로 유명세를 탔다. 이 그림의 모델이 작가의 여동생과 그녀의 치과 의사라는 점은 부부일 것이라는 일반적인 짐작을 깨트리기에 충분하다.
‘아메리칸 고딕’이 전시된 건너편 벽에 새로운 작품 하나가 10일 걸렸다. 미국 작가 노만 락웰의 ‘더 덕아웃’(The Dugout)이라는 작품이다. 1948년에 만들어진 이 그림은 그리 크지 않다. 작품 제목과 같이 야구장 덕아웃과 관중석 일부를 묘사하고 있다.
하지만 선수들의 표정이 예사롭지 않다. 가슴에 시카고가 새겨진 컵스 선수들이 덕아웃에 앉아 있거나 덕아웃 앞쪽에 서 있는데 고개를 괴고 눈을 감고 있거나 팔짱을 끼고 방관하는 자세를 보이고 있다. 가장 앞에 서 있는 선수는 두 팔을 힘없이 내린 채 처진 눈으로 그라운드 쪽을 바라보고 있다. 그 뒤 선수 역시 생기없이 두 팔을 앞으로 모은 채 그라운드를 응시하고 있다. 반면 덕아웃 윗쪽의 관중들은 활기가 넘친다. 두 손을 입 옆으로 모은 채 크게 소리지르고 있는 모습도 보이는 등 자신이 응원하는 팀이 큰 점수차로 이기고 있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아마도 시카고 컵스를 응원하는 홈 관중들은 아닌 모양이다. 실제 이 그림을 위해서 작가는 컵스 선수와 감독의 사진을 찍고 나중에 그림으로 그렸다고 알려졌다. 덕아웃 뒤 홈 관중은 상대팀 보스턴 브레이스팀의 선수 와이프도 포함돼 있다. 그리고 컵스 유니폼을 입고 덕아웃 오른쪽 앞에 서 있는 선수는 실제로는 브레이브스팀 볼보이였다고 한다. 이런 디테일까지 알고 그림을 감상하다 보면 그림에 대한 이해도를 더욱 높일 수 있을 것이다.
락웰은 1916년부터 1965년까지 모두 323개의 잡지 표지를 그렸다. Saturday Evening Post라는 잡지였는데 이 잡지는 한 때 주간 구독자가 300만명을 기록하는 등 당대 최고의 매체였다. 이 잡지 표지로 그린 뒤 나중에 별도 작품으로 남긴 것이 ‘더 덕아웃’이다.
이 작품을 시카고 미술관에 기증한 사람은 브루스 라우너, 다이앤 라우너 부부다. 전 일리노이 주지사였던 바로 그 브루스 라우너다. 라우너 부부는 이 그림을 2009년에 크리스티에서 경매를 통해서 구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구입가는 66만2500달러. 라우너 부부가 이 그림을 소장하게 된 것은 열렬한 컵스 팬인 동시에 유명 미국 작가인 락웰을 좋아했기 때문이었고 작품이 창작된 이후 공공에 전시된 적이 없이 개인적으로만 소장됐던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아울러 작품이 개인이 아니라 커뮤니티에 포커스가 맞춰져 개인이 소장하기보다는 공중에 널리 알리는게 좋다고 생각해 기증했다고 한다.
라우너 주지사는 근래 당선된 일리노이 주지사 중에서는 유일한 공화당 소속 정치인이었지만 재선에서는 JB 프리츠커 현 주지사에 패한 바 있다. 재임 중에도 민주당이 장악한 주의회와의 대립으로 인해 오랫동안 예산안이 통과되지 못해 제대로 된 성과를 보이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기도 하지만 퇴임 후 시카고를 상징하는 유명 그림을 미술관에 기증하는 선행을 하게 됐다.
이 작품이 시카고 미술관에 기증된 사실이 알려지자 컵스 구단도 공식 성명서를 냈다. 작품과 시카고 미술관이 잘 어울린다는 것이었다. 아울러 올해가 시카고 컵스가 내셔널리그에 가입한지 150주년이 되었다는 점도 잘 맞는다. 컵스팬들은 이 기운 빠진 선수들이 등장하는 그림을 보고 염소의 저주를 떠올리며 비관적으로만 보지는 않을 듯하다. 컵스는 이미 2016년 월드시리즈 우승으로 사랑스러운 패자라는 이미지를 떨쳐 버렸기 때문이다. 작년에도 플레이오프에 진출하며 오랜 부진을 어느 정도 털어버렸기 때문에 ‘더 덕아웃’ 하나로 패자의 저주를 다시 우려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다만 이 덕아웃 그림이 만들어진 1948년 컵스가 최하위 팀이었다는 사실은 맞다. 다만 한가지 확실히 할 점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컵스가 전체 리그를 통틀어서 최하위 팀은 아니었다. 당시 최악의 팀은 다름 아닌 시카고 화이트삭스였다. 이래저래 덕아웃 그림 하나로 시카고 야구팬들의 이야기 거리가 늘어날 것은 확실할 것으로 보인다.
이제 시카고 박물관을 찾을 때에는 본관 2층의 인상파 작품을 본 뒤 콜롬버스 드라이브쪽에 마련된 갤러리로 이동해 ‘아메리칸 고딕’과 ‘더 덕아웃’을 관람하면 되겠다. 근처에는 역시 미국 작가인 에드워드 호퍼의 ‘나이트호크’도 자리잡고 있다. 바로 옆에는 시카고 출신 화가 아키발드 모틀리 주니어의 시카고 남부의 생동감을 표현한 ‘나잇라이프’도 관람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