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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 기고-맥주 천국(4)] 수치와 감성이 만나야 완성되는 예술주

Los Angeles

2026.02.12 22:42 2026.02.12 2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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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미국 움직이는 유쾌한 산업
2. 7천 년 역사, 끊임없는 진화
3. 눈으로 먼저 즐기는 맥주
4. 맛을 읽는 법…숫자 속 풍미
5. 새로운 음주문화를 위하여
도수, 쓴맛, 색을 숫자로 표시
술잔, 거품, 분위기도 맛 바꿔
'분석하지 않는 느낌' 더 중요
맥주의 색을 표시하는 SRM은 맛의 짙음을 표시하면서도 마시는 이의 감성도 자극하는 기능을 한다. 짙은 색은 깊고 묵직한 느낌을 즐기는 애호가들에게 환영받는다.

맥주의 색을 표시하는 SRM은 맛의 짙음을 표시하면서도 마시는 이의 감성도 자극하는 기능을 한다. 짙은 색은 깊고 묵직한 느낌을 즐기는 애호가들에게 환영받는다.

맥주는 읽는 술이다.
 
한 병의 라벨에 적힌 세 개의 숫자, ABV·IBU·SRM이 맥주의 성격을 결정한다. 이 세 가지를 알면 맥주의 세계가 훨씬 깊어진다.
 
먼저 ABV(Alcohol by Volume)는 도수다. 높을수록 알코올의 존재감이 강하고, 낮을수록 부드럽고 가볍다. 일반 라거는 4~6%, IPA는 6~8%, 임페리얼 스타우트는 10%를 넘는다. 그러나 좋은 맥주는 도수보다 균형이다. 알코올의 열기와 홉의 쌉쌀함, 몰트의 단맛이 조화를 이룰 때 완성된다.
 
IBU(International Bitterness Units)는 쓴맛의 강도를 뜻한다. 홉의 알파산을 수치화한 것으로, 10~30은 부드러운 라거, 50 이상은 쌉쌀한 IPA, 100을 넘으면 ‘홉 폭탄’이라 불리는 더블 IPA다. 하지만 IBU가 높다고 꼭 더 쓰지는 않다. 몰트의 단맛이 쓴맛을 얼마나 감싸주느냐에 따라 체감이 달라진다. 결국 쓴맛은 균형의 언어다.
 
SRM(Standard Reference Method)은 색의 척도다. 3~5는 밝은 필스너, 10~15는 붉은 앰버, 40 이상은 스타우트 계열이다. 색은 단순히 시각이 아니라 맛의 예고다. 밝은 맥주는 상쾌하고, 어두운 맥주는 깊고 묵직하다.
 
이 세 수치만으로도 맥주의 기본 윤곽을 읽을 수 있다.
 
맥주 라벨은 이제 언어다. 각 브랜드는 색과 수치, 그래프, 문장으로 자신들의 철학을 표현한다. 예전엔 단순히 ‘라거’나 ‘에일’로 나뉘었지만, 이제는 수백 가지 세부 스타일로 구분된다. IPA만 해도 아메리칸, 뉴잉글랜드, 더블, 헤이즈드 등 향과 쓴맛의 비율로 세분화된다. 소비자는 숫자와 단어의 조합으로 자신에게 맞는 맥주를 찾아간다.
 
시음에도 순서가 있다. 가벼운 맥주에서 진한 맥주로, 밝은색에서 어두운색으로 마셔야 혀의 감각이 피로하지 않는다. 거품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산화를 막고 향을 보호하는 뚜껑이다. ‘거품 2 : 맥주 8’의 비율이 이상적이며, 잔의 모양과 온도도 맛을 좌우한다. 좁은 입구는 향을 모으고, 넓은 잔은 거품을 부드럽게 유지한다.
 
최근에는 ‘데이터 테이스팅(Data Tasting)’이라는 개념이 등장했다. AI가 수천 개의 레시피 데이터를 분석해 개인의 취향을 예측하고, IBU·SRM·ABV 조합을 자동 추천한다. 스마트폰 앱으로 자신의 ‘맛 DNA’를 측정해 맞춤형 맥주 리스트를 제공받는 시대다. 그러나 마지막 선택은 여전히 사람의 감각이다. 같은 수치라도 장소와 분위기에 따라 전혀 다른 인상을 남긴다. 맥주는 데이터와 감성 사이에서 완성되는 예술이다.
 
맥주는 음식과의 궁합에서도 빛난다. IPA는 매운 음식과 어울리고, 스타우트는 초콜릿이나 구운 고기와 잘 맞는다. 라거 계열은 해산물이나 샐러드와 궁합이 좋다. 와인처럼 복잡한 설명이 필요 없다. “시원하다”, “향이 좋다”, “쓴맛이 마음에 든다.” 이 단순한 감상 속에 맥주의 본질이 있다.
 
결국 맥주를 읽는다는 것은 숫자를 이해하는 일만이 아니다. 수치는 길잡이일 뿐, 진짜 언어는 감각이다. ABV·IBU·SRM이 논리라면, 향과 질감, 그리고 사람의 기억은 감성이다.
 
맥주는 두 세계가 만나는 접점에 있다. 그래서 맥주는 과학이자 예술이며, 데이터이자 이야기다. 한 모금의 맥주 안에는 수치로는 표현할 수 없는 온기가 있다. 그 온기를 알아차릴 때, 맥주는 더 이상 술이 아니라 ‘읽히는 예술’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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