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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칼럼] 우리 모두가 소중한 주인공

Los Angeles

2026.02.15 17:20 2026.02.15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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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재 사회부 부장

김형재 사회부 부장

읍내 중학교에 다니면서 신문의 재미를 처음 느꼈다. 1990년대 중후반까지도 아날로그 문화가 대세였다. 신문, 잡지 등 주간지, 월간 만화책, 라디오와 TV, 비디오테이프가 바깥 세상을 알려주는 유일한 창이었다. 읍내 중학교에서 새벽 신문 배달을 하던 친구는 남은 신문을 학교에 가져왔고, 그 신문을 통해 알게 된 세상 이야기가 호기심을 자극했다.  
 
활자로 읽는 세상과 TV로 보고 듣는 세상은 비슷하면서도 분명 다른 맛이 있었다. 신문은 사건의 전후 관계와 행간의 의미를 설명해 줬고, 그만큼 생각할 거리도 던져줬다.  
 
중학교 2학년 때 사회 선생님이 내주신 신라시대 신문 만들기 숙제가 생애 첫 기사 쓰기였다. 친구와 큰 도화지에 지면을 짜고 일간지 신문을 최대한 흉내 냈다. 신라시대 역사 내용을 일간지 방식으로 기사화하면서 상상의 나래를 펼친 즐거움이 컸다.
 
시내 고등학교로 옮기면서 독서실이 있는 상가 건물에 배달된 신문을 도둑처럼 읽었다. 등교 전 상가 교회 현관에서 읽던 일간지는 서울과 수도권 관련 소식 창구였다. 가끔 미국등 해외소식을 읽을 때면 이런 나라는 어떤 나라일까 혼자 상상만 했다.  
 
당시 대학 입시를 앞두고 논술시험이 유행해 고등학생에게 일간지 사설의 정독과 베껴쓰기도 유행처럼 번졌다. 글쓴이의 이름이 없는 사설은 읽어도 당최 무슨 소리인지 모를 때가 많았고, 사설 속 현학적 단어가 뭔가 있어 보이기도 했다. 사설처럼 논리정연하게 논술을 쓰라는 선생님의 닦달을 들을 때면 ‘말이 되는 말씀을 하시라’며 속으로 눈높이 교육의 중요성을 외치기도 했다.  
 
신문 속에서만 접했던 서울은 촌놈을 주눅 들게 했다. TV 속에서만 보던 한강대교를 건너면서 속속들이 더 알고 싶다는 충동도 컸다. 교내 신문사 학생기자, 학교 홍보실 홍보도우미 기자, 대학내일 학생리포터, 세종문화회관 홍보기자, 현대모비스 학생리포터 경험은 1000만 명이 살아가는 도시를 직접 체험할 수 있게 해 준 좋은 기회였다.  
 
특히 끙끙거리며 쓴 기사가 신문과 잡지에 실렸을 때 느꼈던 희열은 지금도 잊지 못한다. 무엇보다 좋아서 기사를 썼을 뿐인데 원고료와 장학금까지 받게 된 사실은 적지 않은 놀라움이었다. 좋아하는 일을 하는데 돈까지 벌 수 있다. 업으로 삼고 싶었다.
 
인생을 함부로 예단하지 말자고 다짐한 건 인천공항 상공에서였다. 일간지 기자로 미국까지 오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  
 
미국 한인 사회라는 존재가 삶의 중심축이 됐고, 일하는 터전이 됐다. 1903년 1월 13일 시작됐다는 미국 한인 사회 역사와 발전, 그 세월에 담긴 수많은 이야기에 매료될 때도 많았다.  
 
LA, 샌프란시스코, 뉴욕·뉴저지, 시카고, 애틀랜타는 물론 알래스카, 인디애나, 노스캐롤라이나, 애리조나 등의 작은 소도시에도 한인 사회가 뿌리내린 모습을 직접 보고 전할 때면 그 소중한 경험을 얻을 수 있음에 ‘기자 하길 잘했다’는 기쁨도 누렸다.  
 
이민 선조의 치열함과 서러움, 이민 1세대의 수줍음과 자부심, 2~3세대의 쿨함과 애증을 글로 담으려 노력했지만 제대로 된 역할을 했는지 되물을 수밖에 없다. 분명한 것은 저마다의 이야기 속에 눈물과 기쁨, 행복과 후회가 있지만 우리 모두가 소중한 ‘주인공’이라는 점이다.  
 
디지털 시대, 인공지능(AI) 시대라고 한다. 전통 미디어인 신문과 방송은 격변하는 세상을 어떻게 담아야 할지 고민도 많다. 그럼에도 기자의 역할은 여전히 중요하고, 사회 구성원들이 관심을 보여줄 것이라고 믿는다.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다. 기자로 쓰는 마지막 칼럼을 통해 지난 25년 동안 소중한 이야기를 공유해 준 모든 분께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린다.

김형재 / 사회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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