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화 ‘부정 선거’ 근거 없지만 민주 무조건적 반대 옳지 않아 미국인 10명 중 8명 도입 찬성 비이성적 시대의 상식적 발상
━
원문은 2월 10일자 ‘Voter ID shouldn’t be this controversial‘ 기사입니다.
크리스티놈 국토안보부 장관이 지난 13일 애리조나 주 스캇스데일에서 세이브 법안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김상진 기자, 로이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공화당이 선거를 국가가 직접 관리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최소한 자신이 부정이 있었다고 주장하는 최대 15곳의 지역에서는 투표 관리를 장악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가 제시하는 부정 선거의 근거는 2020년 대선에서 자신이 해당 지역에서 패배했다는 사실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이 모든 곳에서 이겼다는 것이 자명하다고 전제하고 있기 때문에, 공식 개표 결과 자체가 곧 부정의 증거라는 논리다.
이는 망상적이고 자기중심적인 헛된 주장에 불과하다. 그러나 지금 이 시점에서조차 트럼프가 실제로 2020년 대선에서 패배했는지가 여전히 열린 문제라고 주장하는 이가 있다면, 그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거나 아직 자신이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는 점 또는 실제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에 대해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 문제는 이미 60곳이 넘는 법정에서 실제로 다뤄졌다는 점에서, 다시 논쟁할 의미를 찾기 어렵다.
그럼에도 공화당이 트럼프의 거짓말에 대해 단순히 사실을 말하지 못하는 현실은 선거와 선거의 공정성에 대해 논의하는 일을 극도로 어렵게 만든다. 한 가지 전술은 트럼프가 분명히 한 말을 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트럼프의 발언에 대한 질문을 받은 조시 홀리 상원의원(미주리·공화)은 “내가 보기에는 그가 말하고자 한 것은 의회가 세이브(SAVE) 법안을 통과시켜야 한다는 의미였을 것”이라며 자신이 해당 법안의 공동 발의자라고 덧붙였다.
가주 특별선거 당시 LA한인타운 YMCA에 설치된 투표소에서 주민들이 조기 투표를 하고 있다. [김상진 기자, 로이터]
존 케네디 상원의원(루이지애나·공화) 역시 이후 발언을 정정하기 전까지는 대통령이 선거를 '국유화’하겠다고 말한 적이 없다고 강변했다. 그는 기자들에게 “그건 당신의 말이지, 그(트럼프)의 말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모든 문제가 트럼프의 거짓말과 이를 거부하지 못하는 공화당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민주당의 시각 역시 옳지 않다.
지난 8일 ABC 방송에서 조너선 칼은 공화당이 선거와 선거의 공정성에 대한 신뢰를 훼손해 왔다는 점을 전제로, 애덤 시프 상원의원(캘리포니아·민주)에게 그렇다면 왜 투표 시 사진이 부착된 신분증 제도를 도입하지 않느냐고 질문했다.
이에 시프 의원은 공화당이 스스로 만들어낸 불신을 이유로 민주당이 유권자 억압 법안인 SAVE 법안에 굴복해야 한다는 발상 자체가 터무니없다며 일축했다.
SAVE 법안에 포함된 시민권 증명 요건에 대해 합리적인 반대 논거가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질문과 답변 모두 문제의 틀 자체가 잘못돼 있다.
미국인들은 수십 년 동안 유권자 신분증 제도를 지지해 왔으며, 민주당 지지자들 역시 예외가 아니다.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에 출마할 것이라는 상상조차 하지 못하던 시절부터 이 제도는 압도적인 지지를 받아왔다.
2006년에는 미국인의 80%가 투표 시 신분증 제시에 찬성했다. 퓨리서치센터에 따르면 지난 20여 년간 가장 낮은 찬성률조차 77%(2012년)였다. 당시 민주당 지지자 가운데 61%가 신분증 제시에 찬성했다. 지난해 8월 조사에서는 공화당원의 95%, 민주당원의 71%가 정부 발급 신분증 제시에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11월 4일 LA 한인타운 중앙루터교회에서 가주 특별선거 투표를 마친 한인 유권자들이 투표소를 빠져나가고 있다. [김상진 기자,로이터]
민주당의 유권자 신분증 반대가 필자를 괴롭혀 온 점은 두 가지다. 첫째는 수백만 명의 미국인이 적절한 신분증을 갖고 있지 않다는 주장이다.
SAVE 법안의 시민권 증명 요건이 새로운 문제를 낳는 것은 사실이다. 많은 사람들이 출생증명서를 보유하고 있지 않고, 상당수 신분증에는 시민권 여부가 명시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민주당은 시민권 문제가 부각되기 훨씬 이전부터 이 같은 주장을 해왔다.
분명히 하자면 비시민권자가 대규모로 투표하고 있다는 증거는 거의 없거나 전무하다. 그렇다 하더라도 ‘사회적 약자’로 분류되는 사람들이 투표할 신분증조차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이 문제라면 이는 곧 이들이 일상생활 전반에 필요한 신분증도 없다는 의미다. 사실 신분증이 없다는 것만큼 개인을 사회적으로 소외시키는 일도 드물다. 신분증 없이는 신용카드를 만들 수 없고, 집을 사고 빌릴 수 없으며, 복지 혜택을 신청할 수도 없고, 비행기를 타거나 은행 계좌를 개설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이는 심각한 수준의 소외다.
둘째로, 선거의 공정성과 '우리 민주주의’의 신성함을 강조하면서 민주적 다수가 지지하는 신분증 제시를 요구하는 것에 분노하는 태도는 이상한 선택이다. 이는 왜 이런 조치에 반대하는지에 대한 의심을 불러일으킨다. 주로 민주당의 주도로 지난 30년간 미국의 투표 절차는 훨씬 더 쉬워졌다. 우편투표와 조기투표가 확대된 상황에서, 새로운 안전장치를 도입하자는 것이 왜 그렇게 터무니없는 일인지 의문이다.
필자의 이론은 느슨한 투표 규칙이 민주당에 유리하다는 기능 장애적 초당적 합의가 밑바닥 어딘가에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공화당은 규칙 강화를 원하고, 민주당은 완화를 선호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양측 모두 항상 틀렸다고 생각한다. 정당 지지 기반의 인구 구성이 변화하면서 이러한 가정은 더욱 우스워졌다. 지난 10년간 공화당은 대학 교육을 받은 교외 지역의 투표 성향이 높은 유권자들을 잃는 대신, 비대학 출신의 투표 참여율이 낮은 유권자들을 얻었다.
그럼에도 양당 모두 각자의 망상을 강화해 왔다. 유권자 신분증 제도는 유권자 억압이 아니며, 이를 요구한다고 해서 공화당의 승리가 보장되는 것도 아니다. 이는 다만 비이성적인 시대에 제기된, 지극히 상식적인 발상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