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92년 말 전국적인 파문을 일으켰던 풀러턴 지역 명문 공립인 서니힐스 고등학교 ‘우등생 살인 사건(Honor Roll Murder)’에 연루된 한인 용의자 3명 가운데 한 명이 당시 주범의 살인 계획을 알지 못했다며 최근 유죄 판결 번복을 법원에 요청했다. 서니힐스 고등학교 재학생 5명이 또 다른 고등학교 학생을 살해한 뒤 암매장한 이 사건은 가해자 모두 모범생이었다는 점에서 큰 충격을 줬다.
지난달 26일 OC 레지스터에 따르면, 한인 용의자 컨 영 김(Kirn Young Kim·49·사진)씨는 가주 형법 개정을 근거로 법원에 자신의 살인 유죄 판결을 무효화해 달라는 청원을 제출했다.
사건 당시 가주 형법은 방조한 범죄에 대해 ‘자연적·예견 가능한 결과’ 이론에 따라 범행에 연루된 인물이라면 직접 살인을 저지르지 않았더라도 동일한 살인 책임을 물을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었다. 이에 따라 김씨는 다른 공범들과 함께 살인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고 실형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이후 살인 혐의가 적용되려면 살인 의도를 인지했거나 범행에 직접 관여했다는 명확한 증거가 필요하도록 법이 개정됐다. 김씨는 이를 근거로 자신은 주범의 살인 의도를 알지 못했고 범행 실행에도 직접 가담하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사건은 1992년 12월 31일 부에나파크의 한 주택에서 발생했다. 하버드대와 프린스턴대 입학 허가를 받았던 서니힐스 고등학교 우등생 로버트 챈(당시 18세)은 같은 학교 학생들과 함께 희생자 스튜어트 테이(당시 17세)를 해당 주택 차고로 유인해 집단 폭행을 가해 살해했다.
오렌지카운티 검찰의 기소장에 따르면, 테이와 챈은 컴퓨터를 통해 알게 된 친구 사이였다. 테이는 학교에서는 모범생이었으나, 외부에서는 무기 밀매를 일삼던 아시안 갱단 보스 ‘마틴 고어’로 활동한 인물로 조사됐다.
이들은 테이가 거래하던 컴퓨터 부품 딜러의 집을 털 계획을 세웠고, 챈은 이를 실행하기 위해 서니힐스 고교 학생 4명을 추가로 모집했다. 여기에 에이브러햄 아코스타(16)와 한인 컨 영 김(당시 16세), 강문봉(17), 찰스 최(17)군 등이 가담했다. 이들은 우연히 테이가 떨어뜨린 지갑에서 그의 이름과 주소, 학교 정보가 모두 가짜라는 사실을 발견하고, 그가 자신들을 경찰에 밀고하려 한다고 생각해 살인을 결심했다는 것이다.
검찰에 따르면 챈은 사건 당일 오후 5시쯤 테이를 아코스타의 집 차고로 유인해 야구 방망이로 머리를 가격하고 쇠망치로 머리와 복부를 수차례 내려쳤다. 테이가 숨지지 않자 챈과 아코스타는 그의 입에 알코올을 붓고 덕트테이프로 입을 봉한 뒤, 약 20분 후 집 안에 미리 파놓은 웅덩이로 끌고 가 시신을 암매장했다.
이 과정에서 김씨를 포함한 한인 고교생들은 인근에서 망을 본 것으로 조사됐다. 범행 직후 이들 한인은 테이의 닛산 300ZX 스포츠카를 몰고 캄튼으로 이동해 차량을 버린 뒤 돌아와 새해전야 파티를 벌인 것으로 드러났다.
김씨는 지난달 26일 열린 법원 심문에서 “주범이었던 챈의 발언과 행동을 허풍이나 과장으로 받아들였을 뿐, 실제 살인이 벌어질 것이라고는 믿지 않았다”고 증언했다. 그는 살인 전 챈이 진행한 예행연습의 일부를 보고 들었지만, 시신을 묻기 위해 파놓은 구덩이가 너무 작아 처음에는 죽은 개를 묻기 위한 것이라 생각했다고 밝혔다.
김씨 변호인 측은 그가 당시 미성숙하고 쉽게 영향을 받는 16세 청소년이었으며, 수감 기간 교육 프로그램에 성실히 참여하는 등 모범적인 교정 과정을 거쳤다는 점을 강조했다. 김씨는 2012년 모범수로 인정돼 가석방됐다.
반면 검찰은 김씨가 범행 계획을 사전에 인지했으며, 망을 보고 차량 처리까지 담당하는 등 살인을 적극적으로 방조·조력했다고 반박하고 있다. 심리는 2일(오늘) 재개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