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금융위기 이후 기업금융 업계에는 조용한 변화가 시작되었다. ‘바젤 III’와 같은 새로운 규제의 등장으로 전통적인 은행들이 기업 대출을 축소하자, 은행이 아닌 대출기관들이 그 공백을 메우며 등장한 것이다. 이른바 프라이빗 크레딧(privare credit·사모대출)이 그것이다. 현재 세계 금융시장의 프라이빗 크레딧 규모는 약 2조 달러까지 성장했다. 더는 틈새시장이 아닌 기업금융의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한 축으로 성장한 것이다.
하지만 몇 가지 취약성 탓에 올해 초부터 위험 신호가 울리고 있다. 문제가 발생할 경우 금융시장 전반에까지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다.
프라이빗 크레딧은 은행을 대신해 투자펀드나 자산운용사, 전문 대출기관을 통해 이뤄지는 대출이다. 공모하는 채권과 달리 사적으로 이루어지며, 공개된 시장에서 거래가 이뤄지지 않는 특징이 있다. 프라이빗 크레딧은 신속한 자금 조달과 비밀 유지가 필요하거나 공개된 자금 시장 접근이 어려운 소기업이나 중견기업, 또는 사모펀드의 투자 포트폴리오 기업 등이 주 고객이다.
프라이빗 크레딧 시장은 대형 사모펀드 운용사인 아폴로(Apollo), 블랙스톤(Blackstone), 블루 아울(Blue Owl), 아레스(Ares) 등이 주도하고 있다. 이들 업체는 연금펀드와 보험사 같은 기관투자자뿐 아니라 고액 자산가들의 자금을 모아 자산을 운용한다. 대출의 상당수는 담보가 설정된 선순위 구조이며, 변동금리를 적용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투자자들은 주로 드로다운 펀드와 BDC(Business Development Company)를 통해 참여한다. 드로다운 펀드는 전통적인 파트너십 형태를 말하는 것으로 투자 기회가 발생할 때마다 자금을 집행하고 장기간 자금이 묶이는 구조다.
반면 BDC는 중소기업 자금 지원을 위해 1980년 연방의회에서 통과된 투자 방식이다. BDC는 기업 수익의 90%를 배당하도록 되어 있어 투자자에게 높은 배당 수익을 제공하는 경우가 많다. 다만 증시에 상장되어 거래가 이뤄지는 BDC도 있지만, 비상장 BDC는 주식 환매(periodic buybacks)가 제한되어 현금화가 어렵다는 특징도 있다.
프라이빗 크레딧 시장의 급성장에는 은행의 대출 축소 외에도 몇몇 구조적인 요인이 있다. 사모펀드 업계가 성장하면서 레버리지 인수 자금 수요가 꾸준히 증가했고, 금리 상승기에 변동금리 대출이 투자자들에게 매력적인 대안으로 작용했다. 일반 채권보다 높은 8~14%의 수익률을 제공한 프라이빗 크레딧 시장은 빠르게 자금을 끌어들일 수 있었다.
이런 급성장 탓에 프라이빗 크레딧 시장은 전환기를 맞고 있다. 보이지 않았던 취약성에 대한 우려다. 그중 하나가 가치 평가의 불투명성이다. 프라이빗 크레딧은 공개 시장에서 거래되지 않기 때문에 자산운용사의 자체적인 평가가 필요하다. 이 과정에서 시장 상황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할 수 있다는 것이다. 유동성 문제도 제기된다. 앞에서 언급했듯 일부 펀드는 쉽게 현금화할 수 없는 자산을 보유하고 있어 투자자의 환매 요청이 급증할 경우 인출을 제한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프라이빗 크레딧 시장은 이제 성숙의 과정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올해도 업종별로 크게 다른 실적을 보일 것으로 예상한다. 헬스케어 서비스 등의 분야는 인건비 상승으로 크게 고전할 것으로 보이지만, 테크 분야 기업들의 연체 비율은 2% 미만으로 낮아질 것으로 보인다. 테크 분양의 경우 프라이빗 크레딧도 점차 설비나 데이터센터와 같은 실물 자산을 담보로 하는 자산기반 금융(ABF)으로 이동하고 있어 안전성이 높아지고 있다.
시장 정점기에 진입했던 ‘관광객형’ 운용사들은 대가를 치를 가능성이 있지만, 구조조정에 전문성을 갖춘 대형 사모펀드들은 오히려 더 성장할 것으로 예상한다.
프라이빗 크레딧은 더는 대안 투자가 아니라 글로벌 금융 시스템의 중요한 축으로 자리를 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