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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예마당] 세탁소에서 생긴일

Los Angeles

2026.04.30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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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무슨 거창한 문화적 충돌은 아니라 해도 갑자기 낯선 땅으로 떠밀려와서 이민자로 살아간다는 것은 그 자체가 충격일 수밖에 없다.
 
천사의 도시라는 로스앤젤레스에서 세탁소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부족한 영어뿐만 아니라 주일이면 교회에 갈 수 있다고 했으니 솔깃했다. 그렇게 용감하게 출발은 했지만 어깨너머로 익힌 기술이 온전할 리가 없다. 거기에다 무슨 매상의 강박관념까지 있었으니 매일 일어나는 내 실수는 어쩌면 당연했는지도 모른다.
 
세탁소 문을 연 첫날부터 나는 어느 백인 손님 넥타이에 큰 구멍을 내고 말았다. 좀 더 잘해주려 했던 것인데 그런 형편이었으니 세탁비는커녕 손님에게 백배사죄를 하고 새것 값으로 물어 주어야 했다. 그리고 새벽부터 보일러를 켜고는 우람한 세탁 기계를 돌려야 하는 일인데, 솔벤트의 역한 냄새는 숨쉬기도 어려울 지경이다.
 
더구나 그런 중에 있던 큰 사고는 옷 주머니에 볼펜이 있는 줄 모르고 기계를 돌린 바람에 그만 모든 손님 옷은 잉크 범벅이 되고 말았다.
 
“이제 이 일을 어쩌지…. ” 저절로 나온 내 탄식에 아내는 기가 막혔던지 평소 하던 잔소리조차 유보하고 있었다. 그런 뒤에 손님들은 하나같이 새것이라고 우겨댔으므로 그나마 손님이 떨어질세라 아내는 억지 미소를 지어가며 새 옷값으로 변상해야 했다.  
 
또 못된 손님 때문에 법원까지 가는 일이 가끔 있었다. 경직된 분위기 속에 옷의 색이 달라졌다며 사진을 내밀면 재판장은 코메리칸의 어설픈 말은 들어보지도 않고 무조건 변상하라는 판결을 내린다. 억울하기 짝이 없는 일인데 미리 사진까지 찍어두었다는 수상한 정황은 아예 고려되지 않는다.
 
그런 속에서도 일 년이 금세 지나갔다. 그동안 나도 열심히 했지만 무엇보다 아내가 큰 역할을 했다. 그리고 몇 안 되는 직원들도 최선을 다해 주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다. 카운터 아가씨가 갑자기 놀란 목소리로 나를 찾는다. 조금 전에 세탁 양복 한 벌 찾아갔던 손님이 크게 찢어진 옷을 들고 다시 왔다는 것이다.
 
“아니 뭐라고? 잘 세탁해서 다림질까지 해준 양복이 찢겨있다니…. ” 도무지 있을 수 없는 일인데, 그 손님은 ‘이제 너희들이 어쩔 것이냐?’ 하는 표정으로 버티고 있었다.
 
나는 급히 양복부터 살펴보았다. 윗도리에는 한 뼘 정도 칼로 그어진 부분이 있었다. 한 눈으로 봐도 자작극이 분명했다.
 
세탁 기계는 옷을 찢을 만한 곳이 없을 뿐만 아니라 또 최소 다섯 사람의 손을 거쳐야 하는 과정에서 아무도 보지 못할 리가 없기 때문이다. 옷을 들고 나간 그 몇 분 사이에 저지른 짓이 분명했다. 하지만 심증 외에는 아무런 물증이 없으니 결국 6달러짜리 일 해주고 그 100배의 날벼락을 맞게 된 것이다. 두 눈 뜨고 당하는 일에 더욱 분통 터진다. 나는 우선 시간을 벌기 위해 3일 뒤에 다시 오라고 했다. 그는 성공의 확신을 잡았던 모양이다. 희죽 웃으며 나가는 발걸음조차 당당하다. 그렇다고 질 것이 뻔한 재판정은 기대도 하지 말아야 한다. 나는 찢긴 양복을 앞에 걸어놓고 이리저리 생각에 잠겼다.
 
“어찌 되든 본인의 짓을 증명하면 되는 것이 아닌가.” 논리야 쉽지만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다는 것은 언제나 현실문제다. 나는 곰곰이 생각 끝에 명탐정 ‘셜록 홈스’ 흉내를 내기로 했다.
 
그렇게 조심스럽게 옷을 관찰하니 양복 안감까지 잘려있어서 옷을 차 문에 걸어놓고 바깥쪽에서 칼로 그은 것이 틀림없었다.
 
그런 잠시 뒤였다. 그만 나도 모르게 큰소리를 치고 말았다. “옳거니 바로 이것이다.”
 
드디어 약속했던 날이다. 그는 새 양복을 얻는 기대 때문인지 휘파람을 불며 우리 앞에 나타났다. 그러니 이제부터 창과 방패의 대결이 시작된 셈이다. 이번에는 내가 먼저 너스레를 떨었다. “손님 잠깐 앉으십시오. 양복 찢은 범인을 잡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비닐 포장지에서 범인의 지문을 찾았다는 경찰서 전화가 방금 왔습니다.”
 
바로 그때였다. 아직 내 말이 채 끝나지도 않았는데 그는 ‘후다닥’ 뒤도 돌아보지 않고 뺑소니치고 있었다. 그야말로 전광석화 같은 재빠름이다.
 
그러자 모두 “와, 하하하” 하는 큰 웃음보가 합창처럼 터져 나왔다. 처음부터 이 일을 걱정스럽게 보던 우리 직원들이 함께 터트린 웃음이었는데, 그 유쾌한 웃음 속에는 긴 여운이 담겨 있었다.

이걸남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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