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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광장] 전작권, 자존심이 아니라 생존의 문제다

Los Angeles

2026.05.03 19:03 2026.05.03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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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학 6·25참전유공자회 회장

이재학 6·25참전유공자회 회장

전시작전권 전환을 둘러싼 정부의 조급한 행보가 불안하다. 국가 안보는 선언이나 감정이 아니라 냉정한 현실 인식 위에서 다뤄져야 한다. 그런데 한미동맹이라는 안보의 축을 마치 민족적 자존심을 해치는 굴레처럼 여기는 인식이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최근 정부 당국자의 무심한 한마디가 우리가 의존하고 있는 국가 간 정보 공유 체계에 찬물을 끼얹었다. 여기에 군 통수권자마저 한발 더 나아간 듯한 발언을 내놓으니 우려는 더욱 커진다.  동맹은 신뢰로 유지되는데, 그 신뢰를 흔드는 언사는 적보다 더 위험할 수 있다.
 
“우리 힘으로 우리를 지키겠다”는 말은 누구나 공감할 수 있다. 그러나 국방은 의지가 아니라 능력이다. 핵으로 위협하는 상대 앞에서 비핵 전력만으로 전쟁 수행이 가능한가. 세계 5위 군사력을 자부하는 것과 국가를 지켜내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다. 자위적 낙관은 전략이 아니다.
 
한미동맹은 전쟁 수행을 위한 편의적 협약이 아니다. 그것은 국가의 존립을 위한 생존의 약속이며, 우리는 이미 6·25전쟁에서 그 의미를 뼈저리게 경험했다. 동맹은 외세 의존이 아니라 상호 협력이다. 우방 간에 주고받는 국가적 이익은 지극히 당연하며, 그것이 국제 질서의 본질이다.
 
그런데도 동맹을 ‘간섭’으로, 협력을 ‘굴종’으로 규정하는 시각은 어디서 비롯된 것인가. 감정적 민족주의는 잠시 속을 시원하게 할 수는 있어도, 국가의 미래를 지켜주지는 않는다. 안보는 자존심이 아니라 생존이다.  
 
전작권 전환은 부정할 사안이 아니다. 언젠가는 가야 할 길일 수 있다. 그러나 기한을 정해놓고 밀어붙일 문제가 아니다. 준비와 능력, 그리고 국제 정세에 대한 냉철한 판단 위에서 단계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언제까지’가 아니라 ‘준비가 되었는가’가 기준이 되어야 한다. 지금처럼 시계를 정해놓고 서두르는 모습은 불안함만 키울 뿐이다.
 
정부는 스스로 물어야 한다. 현재의 정책 방향이 대한민국의 안전을 강화하는가, 아니면 불확실성을 증폭시키는가. 안보 정책은 실험의 대상이 아니며, 그 결과는 되돌릴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신중함은 약함이 아니라 책임의 다른 이름이다.
 
전쟁을 경험한 세대는 알고 있다. 전쟁은 구호로 막을 수 없으며 자유는 혼자 지켜낸 적이 없다. 우리는 피로, 그리고 동맹으로 이 나라를 지켜냈다. 그 역사를 잊지 말아야 한다. 안보는 구호로 지켜지지 않으며, 자유는 결코 공짜로 주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그리고 혼자만의 힘으로 가능했던 적도 없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이 절박한 외침 앞에서, 우리는 다시 묻는다. 지금 우리가 선택하려는 길은 과연 자유를 더 굳건히 지키는 길인가.

이재학 / 6·25참전유공자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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