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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뮤니티 액션] 짓밟힌 ‘투표권리법’

Los Angeles

2026.05.06 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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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갑송 / 미교협 나눔터 국장

김갑송 / 미교협 나눔터 국장

지난 4월 29일 연방 대법원은 6대 3으로 루이지애나주 연방 하원의원 선거구 조정 관련 판결을 내렸다. 흑인 커뮤니티를 하나로 묶어 소수계 의원 선출을 꾀하는 선거구 조정에 제동을 건 것이다. 루이지애나는 2022년 흑인 유권자가 많은 두 개 선거구를 마련했다. 그리고 역사상 처음으로 흑인 의원 두 명이 탄생했다. 이에 대해 비흑인 유권자를 차별한다는 소송이 제기됐고 대법원이 그들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대법원은 1965년 만들어진 투표권리법을 짓밟았다. 대법관 6명은 소수계를 한데 묶는 선거구 조정은 “주 정부가 인종에 따라 소수계에 불리한 선거구를 의도적으로 만들었다는 강한 추론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반대 의견을 낸 대법관 3명은 “이 판결이 투표권리법을 ‘사문화’시켰다”고 비판했다.
 
소수계 단체들은 반발하고 있다. “한 세대에 걸친 다인종 민주주의에 대한 가장 심각한 타격”고 평가했다. 이 판결을 흑인 커뮤니티만의 일로 생각한다면 잘못이다. 투표권리법 제2조는 흑인뿐 아니라 소수계 ‘언어’ 그룹도 보호 대상으로 밝혔다. 흑인 유권자 보호법은 아시안, 이민자 등 모든 소수계를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뉴욕에서 선거구 조정 활동을 펼쳐온 한인 단체인 ‘민권센터’ 등도 한인과 아시안 의원을 배출하는 성과를 거둬왔다. 아시안과 이민자 커뮤니티를 갈기갈기 찢으면 한인과 아시안 의원 탄생은 꿈도 꿀 수 없기에 10년마다 시행하는 인구조사 뒤 선거구 재조정에 땀을 흘린다. 텍사스주 아시안 커뮤니티, 워싱턴주 라틴계 커뮤니티 등 미 전역에서 같은 사례를 찾을 수 있다. 소수계를 위한 선거구 조정이 이뤄지지 않으면 이민자 가정, 영어 소통이 어려운 유권자, 저소득층 커뮤니티는 정치적 목소리를 낼 수 없는 구조에 갇힌다.
 
이제 주 의회가 ‘당파적 이익’을 내세워 인종차별적 선거구를 만들어도 법적으로 문제 삼기 어렵게 됐다. 그리고 언어 서비스 제공도 약화된다. 투표권리법은 선거구 조정뿐 아니라 선거 자료 번역 제공, 투표소 언어 지원 등 광범위한 의무를 담고 있다. 앞으로 이와 같은 행정적 보호 역시 도전을 받을 수 있다.  
 
또 지방 선거의 대표성이 타격을 받는다. 카운티와 시 선거 등 지방 선거에서도 소수계를 분산시키는 선거구 조정이 쉬워진다. 한인 밀집 지역 등을 여러 선거구로 쪼개는 이른바 ‘크래킹(cracking)’이 더 쉬워진다는 의미다.  
 
전국적인 도미노 현상도 우려된다. 루이지애나 판결에 고무된 앨라배마, 테네시 주지사들이 올해 중간선거를 앞두고 이미 기존 소수계 다수 선거구 해체에 속속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소수계 단체들은 주 정부 차원의 투표권리법 마련, 선거구 재조정 과정 참여, 유권자 등록과 투표 참여 확대, 법적 투쟁 연대 등으로 맞서지만 힘겨운 싸움을 펼쳐야 한다.  
 
대법원 판결에 반대 의견을 낸 엘레나 케이건 대법관은 “투표권리법은 놀라운 변화를 이끌었고, 이 나라를 민주주의와 인종평등에 더욱 가까이 만들었다. 이를 필요 없다고 말할 권리는 의회에만 있다. 이 법원의 판사들에게 있지 않다”고 주장했다.  
 
민주주의 역사는 참정권의 확대와 이를 막으려는 세력과의 투쟁의 반복이다. 한인 커뮤니티의 정치적 힘은 법원이 지켜줄 수 없다. 유권자 등록을 하고, 투표하고, 연대하고, 직접 나서는 우리 자신이 만들어 가야 한다.

김갑송 / 미교협 나눔터 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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