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사가 아닌 체험으로 설계된 공간 20개 코스로 짜인 3막 미식 드라마 찰나에 맛 결정되는 숯불 야키토리 8석 카운터서 시작되는 야심찬 선언
야쿤은 LA에서 찾아보기 힘든 야키토리 오마카세로 운영되고 있다. 마츠모토 아키라 셰프가 야키토리를 굽고 있다.
미식가들에게는 이미 멋진 레스토랑이 즐비한 곳으로 이름이 높은 소텔. ‘리틀 오사카’로 불리는 동네 한복판에 지난해 12월 새로운 파인 다이닝이 들어섰다. 단 8석의 카운터에서 약 20코스에 이르는 야키토리 오마카세를 선보이는 ‘야쿤(YAKUN)’이다. 어둑한 외관 너머에 자리한 이 공간은 문을 연 지 반년이 채 되지 않은 시점부터 LA 미식계가 가장 주목하는 신예 중 하나로 빠르게 이름을 올리고 있다.
야쿤은 2025년 그랜드 오프닝과 함께 본격적인 영업을 시작했다. 야키토리라는 좁고 깊은 장르에서의 탁월함을 지향한다는 의미에서 야쿤이라고 지었다. 창업자는 UC어바인 출신의 20대 중국계 청년 케빈 황(Kevin Huang). 야쿤은 그가 처음부터 직접 그려낸 첫 레스토랑이다. 어릴 적 부터 야키토리를 누구보다 좋아했다는 그는 야키토리에 파인다이닝의 호흡과 고객 서비스의 디테일을 결합한 경험을 만들고 싶었다고 말한다. 운영 총괄은 홍콩 출신의 제롬 챈(Jerome Chan)이 맡고 있다.
밖에서만 보면 레스토랑인지 알기 어렵고 오히려 고급스러운 부티크 같은 느낌이다. 큰 간판 없이 까만 외벽으로 마감된 외관이 야쿤의 첫인상을 만든다. 처음 와본 손님이라면 입구에서 한 번쯤 멈칫하기 마련이다. 챈은 식당이 아닌 공연이 이루어지는 것 같은 느낌을 주고 싶었다고 했다. 실제로 매장 안은 검은색을 기조로 인테리어를 꾸미고 있고 빛이 완전히 차단돼서 셰프가 요리를 하는 모습에 집중할 수 있다. 핸드메이드 일본 도자기와 크리스털 식기가 조명 아래에서 조용히 감각을 끌어올린다. 한 자리에서 보내는 두세 시간이 한 편의 드라마처럼 흐르도록 의도된 설계다.
가격은 1인 280달러, 20코스로 짜인 단일 테이스팅 메뉴다. 챈은 이를 3막의 연극에 비유한다. 1막은 차가운 것, 2막은 비장탄에서 구워낸 야키토리, 3막은 식사와 디저트로 이어지는 서사다. 차가운 것에서 따뜻한 것으로 흘러가는 흐름이 이 코스의 핵심 골격이다.
기자가 방문한 4월 25일의 1막은 애피타이저 4종으로 시작됐다. 도미 알과 오키나와 해초 모즈쿠, 안키모(아귀 간) 위에 우리를 한 점 얹은 작은 한 입, 그리고 봄에만 만나는 식재료인 호타루 이카가 차례로 등장한다. 투명한 크리스탈 그릇에 담겨있기에 더 돋보인다. 이어진 사시미는 마다이(참돔) 한 점으로 단정하게 끊었다. 아츠모노 코너에서는 미소에 절인 은대구 사이쿄야키, 칠레 농어를 맑은 국물에 띄운 완모노, 그리고 A5등급 와규 샤부샤부가 이어지며 입안을 점차 따뜻하게 데워둔다. 음식 파트는 교토 출신의 셰프 혼고 히로츠구가 책임진다.
해산물 애피타이저
A5등급 와규
대부분의 파인 다이닝이 그렇듯 확실히 눈이 즐겁다. 눈처럼 내린 지방이 돋보이는 와규는 보기만 해도 그 감칠맛이 입에서 맴도는 듯하다.
2막은 야키토리. 그릴 앞에 서는 것은 일식 외길 27년 차의 셰프 마츠모토 아키라다. 야키토리는 이번이 처음이라는 그는 야쿤 측의 제안을 받고 새 도전을 결심했다. 그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건 단 하나, 온도다. 그는 “같은 닭이라도 매일 숯불 상태가 다르다. 몇 초 차이로 결과물이 완전히 달라진다”고 말했다. 그는 닭을 손질하는 단계부터 육즙이 빠지지 않도록 다듬는 데 정성을 들이고, 죽순·주키니 꽃처럼 함께 굽는 채소 또한 고기만큼이나 신경 써서 고른다고 설명한다. 그리고 이런 야키토리의 정점을 찍는 것은 바로 비장탄이다. 일본에서만 생산되는 최고급 숯으로 은은한 향기를 재료에 입히는데 탁월하다.
이날 카운터에 오른 꼬치는 12개. 닭 허벅지살에 파를 끼운 네기마로 시작해 닭 연골, 날개, 모래주머니, 간, 목살, 염통에 이르기까지 닭 한 마리를 부위별로 분해한 듯한 구성이 이어진다. 여기에 죽순, 두부 케이크, 방울양배추, 메추리알, 그리고 마지막을 장식하는 오리까지 더해져 단조로움이 끼어들 틈이 없다. 셰프 본인이 가장 아끼는 메뉴로 꼽은 것은 두부 케이크와 윙. 특히 두부 케이크는 비장탄의 향이 은은하게 배어들면서 신선하면서도 독특한 인상을 동시에 안긴다. 야키토리 소스에 대한 손님들의 칭찬이 유독 많은 것도 이곳의 자랑이다. 소스에 프리미엄 사케를 더한다는 점은 작지만 분명한 차별점이다.
닭 허벅지 살
두부케이크
셰프가 직접 소금을 뿌려가면서 조리하는 과정을 보는 것은 무척 즐거웠다. 왜 매장을 연극무대처럼 해놨는지 이해가 되는 순간이었다. 지글거리는 닭고기의 소리와 코를 잡아끄는 향기에 시간이 가는지 몰랐다.
마무리는 3막. 닭 육수로 지은 밥에 닭 소보로가 어우러진 한 그릇과 진한 치킨 수프, 그리고 그날 셰프가 정한 디저트가 천천히 이어진다. 차가운 시작에서 출발해 숯불 위 절정을 지나, 결국 한 그릇의 따뜻한 밥과 디저트로 안착하는 구조다. 이날 제공됐던 디저트 중 백미는 단연코 치즈케이크였다. 친한 치즈의 향이 살아있지만, 혀에서 녹아버릴 정도로 부드러운 식감이 일반적인 치즈케이크와는 전혀 달랐다. 식사의 마지막에서조차 놀라움을 주려는 것이 굉장히 인상 깊었다. 직접 서빙을 하던 챈은 “치즈 케이크 완전히 미쳤지”라면서 웃었다.
치즈케이크
음료 프로그램 역시 야쿤이 공들이는 부분이다. 프리미엄 사케 라인업을 중심으로, 매장 안에서 직접 만들어내는 시그너처 칵테일과 무알콜 칵테일까지 함께 준비돼 있다. 허니 진저 모히토는 그날그날 신선한 재료를 그 자리에서 즉석으로 만들어내는 대표 음료다. 미국에서 정식 유통되지 않는 희귀 일본 위스키와 단독 수입한 로열 블루 티, 비공개 프라이빗 라벨 사케까지 음료 한 잔에도 한 편의 코스를 설계하는 정성이 묻어난다.
야쿤은 예약제로만 운영된다. 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두 차례 서비스(이른 5시 30분~7시 30분, 늦은 8시~11시)로 나뉘며, 한 타임에 받는 손님은 카운터 8명이 전부다. 식사 중 셰프에게 너무 많은 질문을 던지는 것은 권하지 않는다. 굽는 데 집중력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라는 게 매장의 일관된 안내다. 그 대신 손님은 셰프의 손끝에서 일어나는 모든 동작을, 닭을 다듬고, 꼬치를 꽂고, 숯불 위에서 단 몇 초의 타이밍을 잡아내는 그 일련의 행위 자체를 한 편의 공연처럼 감상하면 된다.
LA의 일식당들은 이미 포화 상태에 가깝다. 그 안에서 야쿤이 들고나온 카드는 분명하다. 야키토리라는 한 점에 모든 것을 거는 것, 그리고 그것을 단순한 한 끼가 아니라 ‘체험’으로 설계하는 것. 야쿤의 다음 목표 또한 명확하다. 미슐랭 스타를 받는 것이 목표라는 말은, 소텔의 8석짜리 작은 카운터에서 들리는 가장 야심 찬 선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