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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컬처의 열풍을 넘어 ‘지속 가능한 한국학’으로 [UBC 최호중 교수 인터뷰]

Vancouver

2026.05.11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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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 한국어 교육의 정점과 위기 속 학문적 뿌리 내리기 위한 과제 진단
소통과 유대감이 이끄는 한국어 학습 열기 속 전략적 투자와 전문가 배치 시급
교포 2·3세 위한 실무 역량 강화와 체험형 인턴십 확대 등 미래 비전 제시
▲UBC 최호중 교수

▲UBC 최호중 교수

 매년 5월, 캐나다는 ‘아시아 문화의 달(Asian Heritage Month)’을 맞아 아시아 공동체의 가치와 그들이 일궈온 문화적 성취를 기린다. 최근 세계 문화의 흐름 속에서 가장 극적인 변화를 꼽으라면 단연 ‘K-컬처’의 비상이다. 그러나 열풍의 이면에는 더 본질적인 물음이 기다리고 있다. 한국어와 한국학 교육은 이 거대한 흐름 위에서 얼마나 단단한 뿌리를 내리고 있는가. 그 답을 찾기 위해 교육 현장을 직접 찾았다. 20여 년간 한국어와 한국 문화를 가르쳐온 UBC 아시아학과 최호중 교수는 북미 한국학 교육의 최전선에 서 있는 전문가다. 한국어 교육의 폭과 깊이를 함께 넓혀온 그에게 오늘의 성취와 앞으로의 과제를 물었다.
 
Q: 최근 세계 곳곳에서 목격되는 K-컬처의 열기가 뜨겁습니다. 교수님께서도 이런 열기를 실감하시는지요?
 
=교육 현장과 일상 곳곳에서 매일같이 체감하고 있어요. 캠퍼스에서는 KQ: 팝 댄스 동아리의 공연이 자연스러운 풍경이 되었고, 학생들은 서울에서 열린 최신 문화 행사나 아티스트의 공연 소식을 먼저 듣고 와서 질문을 던집니다. 한국 문화가 특정 세대의 취향을 넘어, 이제 하나의 견고한 세계적 문화 양식으로 자리 잡았음을 깊이 실감하고 있습니다.
 
Q: 현재 어떤 과목을 가르치면서 학생들과 소통하고 계신지요?
 
=한국어와 한국 문화 전반에 걸친 교육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초급 과정부터 학문 목적 한국어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커리큘럼을 운영 중입니다. 특히 한국 문화에 막 호기심을 느끼기 시작한 초급 학생들부터, 보다 전문적인 식견을 갖추고자 하는 고급 한국어 학생들까지 각자의 목적에 부합하는 정교한 학습 경로를 제공하려고 해요. 또 어려서부터 한국어를 접하며 성장한 '계승어 학습자(Heritage Learners)'들을 위한 심화 과정을 새롭게 설계할 계획입니다.
 
Q: 학생들이 수많은 언어 중 '한국어'를 전공으로 선택하는 결정적인 동기는 무엇인가요?
 
=흥미롭게도 가장 큰 동력은 ‘인간관계’에 있습니다. 물론 K-팝이나 드라마가 입문의 계기가 되는 경우는 많지만, 그것을 ‘학문’으로서 지속하게 만드는 힘은 결국 ‘소통’입니다. 오랜 단짝 친구 혹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만난 동료와 더 깊이 교감하고 싶다는 마음이 학습의 원동력이 되곤 하죠. 언어라는 도구를 통해 타자의 세계에 발을 들이고, 진정한 유대감을 형성하고자 하는 열망이 학생들을 교실로 이끄는 셈입니다.
 
Q: 캐나다 친구들에게 한국어는 정말 배우기 어려운 언어일 텐데요.
 
=맞습니다. 한국어를 배운다는 것은 영어권 학습자들에게 생소한 문자와 문법 체계를 마주해야 하는 고단한 과정입니다. 스페인어 같은 언어와 비교한다면 업무 수행 수준에 도달하기까지 3배 이상의 노력이 더 필요합니다. 그래서 저는 첫 수업 때 학생들에게 늘 말합니다. “이 험난한 여정을 선택한 여러분이야말로 진정으로 용기 있는 영혼들(Brave Souls)이다.”
 
Q: 이 험난한 여정을 즐겁게 빠져들게 하는 교수님만의 특별한 교수법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언어는 시대의 사고방식과 문화를 잇는 가장 견고한 ‘다리’라고 볼 수 있어요. 그래서 저는 수업 시간에 최근 유행하는 노래의 가사와 드라마의 대사, 한국 사회의 역동성을 보여주는 소셜 미디어의 담론과 최신 뉴스도 텍스트로 활용합니다. 그리고 저는 무엇보다 진정한 배움은 교실 문을 나서는 순간 완성된다고 믿어요. 실제 경험과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사진=김밥 워크숍에서 참가자들이 강사의 지도에 따라 김 위에 밥을 고르게 펴 바르며 한국의 대표적인 간식인 김밥 만들기 체험에 열중하고 있다.

사진=김밥 워크숍에서 참가자들이 강사의 지도에 따라 김 위에 밥을 고르게 펴 바르며 한국의 대표적인 간식인 김밥 만들기 체험에 열중하고 있다.

Q: 실제 경험과 연결된다, 구체적으로 어떤 건가요?
 
=‘김밥 워크숍’이 대표적인 사례인데요. 제가 2006년에 아이오와대학에서 처음 강단에 설 당시만해도 수업에서 온전히 언어 교육에만 집중했습니다. 그러다가 한국 영화를 같이 보았고, 함께 재미있게 경험할 이벤트를 고민하다가 2007년부터 ‘김밥 워크숍'을 열었어요. 김밥은 재료만 준비되면 별다른 조리 과정 없이 만들 수 있으니까요. 프린스턴 대학교로 옮겨서도 이 프로그램을 이어갔는데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습니다. 이 워크숍이 여러 대학으로 확산되어 대표적인 한국 문화 체험 프로그램 중 하나로 자리잡았어요. 제가 UBC에 작년에 왔는데, 이제 여기서도 김밥 워크숍을 시작해 봐야겠습니다.
사진=민화 워크숍에서 참가자들이 강사의 시범에 따라 한국 전통 채색화인 민화 그리기에 열중하고 있다.

사진=민화 워크숍에서 참가자들이 강사의 시범에 따라 한국 전통 채색화인 민화 그리기에 열중하고 있다.

 
사진=한국 문학에 대한 현지의 뜨거운 관심을 증명하듯 박상영 소설가가 북토크 행사를 마친 후 독자들에게 정성스럽게 사인을 해주며 소통하고 있다.

사진=한국 문학에 대한 현지의 뜨거운 관심을 증명하듯 박상영 소설가가 북토크 행사를 마친 후 독자들에게 정성스럽게 사인을 해주며 소통하고 있다.

 Q: 디지털 시대일수록 아날로그적 체험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맞습니다. 민화 그리기도 학생들에게 반응이 좋았던 수업입니다. 초급 한국어에서 어려워하는 문법 중 하나가 '하얗다’가 ‘하얀'으로 바뀌는, 색깔 표현에서 주로 사용되는 'ㅎ 불규칙'입니다. 이것을 민화를 그리며 "빨간색을 써요", "하얀 종이에 그려요" 같은 표현을 쓰면서 언어를 몸으로 익히게 됩니다. 이와 더불어 전통적인 오방색도 알게 되죠. 또 제가 학생들에게 강조하는 것은 대학교 밖에서 경험하는 문화 행사나 인턴십, 그리고 지역 커뮤니티와의 협업입니다. ‘대도시의 사랑법’이라는 영화의 원작자로 잘 알려진 박상영 소설가를 초청해 북토크를 연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습니다. 그 외에도 밴쿠버의 다양한 사람들과 소통하고 글로벌 미디어를 접하면서, 수업 시간에 배운 표현들이 실생활 맥락(Context) 안에서 어떻게 살아 움직이는지 체험할 수도 있습니다. 한국분들이 있는 요양원에 가서 자원봉사로 말동무가 되어 드릴 수도 있고요.
 
Q: 언어교육 전문가로서 교수님이 보실 때 ‘한국어의 매력’은 무엇인지요?
 
=크게 말과 글, 그리고 문화적 연결성이라는 3가지 측면에서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한국어의 매력은 첫 번째, 우리 속담에 “아 다르고 어 다르다”는 말처럼 감정이나 뉘앙스를 아주 섬세하게 담아내는 겁니다. 두 번째, 한글은 과학적이고 체계적이라, 학생들이 빠르게 배울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사람과 세상을 잇는 '연결의 힘'입니다. 세계 곳곳의 학습자들이 한국어를 매개로 새로운 공동체를 형성하고 정서적으로 깊이 교감하는 모습은 한국어만이 가진 강력한 소프트파워라 할 수 있어요.
 
Q: 글자 자체가 가진 디자인적인 아름다움도 있지요?
 
=네, 최근 UBC 아시아학과 행사에서는 '한글 팔찌 만들기'를 했는데 인기가 높았습니다. 한글을 모르는 학생들도 '사랑', '봄' 같은 단어의 뜻을 배우며 구슬을 꿰어 팔찌를 완성하는데, 이런 체험을 통해 학생들은 한국어에 대해 정서적 애착을 갖게 됩니다.
 
Q: 최근 저는 걱정스러운 소식도 들었어요. 교육 현장에서 한국어 프로그램들이 줄고 있다고 하던데요.
 
=네, 최근 북미 지역 일부 대학에서 한국어 프로그램이 축소되거나 운영 중단 위기에 놓였다는 소식을 접하며 저도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실제로 캐나다와 미국의 여러 대학에서는 한국어 수강생 정체와 함께 프로그램 규모가 감소하는 추세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사실 그동안 한국어는 그 어떤 언어보다도 빠르게 성장해 왔지만, 어쩌면 지금이 성장의 '정점'에 다다른 것일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들어요. 지금 이 위기를 제대로 진단하고 대안을 마련하지 못하면, 어렵게 쌓아온 한국어 교육의 토대가 한순간에 무너질 수도 있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할 때입니다.
 
Q: 중요한 시기이네요. 한국어 교육을 넘어 ‘지속 가능한 한국학’을 위해 또 어떤 것들을 짚어봐야 할까요?
 
=전 세계 주요 문화 기관이나 교육 현장에 한국학 전문가가 과연 얼마나 배치되어 있을까요? 당장 UBC 인류학 박물관(MOA)만 보더라도 중국·일본학 전담 큐레이터는 상주하는 반면 한국학 전문가는 없어요. 대학 내부에서 한국의 역사와 예술을 전문적으로 대변해 줄 전문가 목소리가 없으면, 아무리 좋은 콘텐츠가 있어도 주류 박물관의 전시 기획에서 우선순위가 밀릴 수밖에 없습니다. 중국과 일본은 이미 1960~70년대부터 국가적 차원의 전략적 투자를 해왔습니다. 이제 우리도 단순한 문화 열풍을 넘어, 핵심 기관 안에 전문가들이 포진할 수 있는 학문적, 구조적 토대를 다져야 합니다.
 
Q: 많이 늦었네요. 멀리 보고 지금부터라도 투자해야 할 텐데요.
 
=일본은 이미 30년 전부터 인턴십을 통해 캐나다 청년들을 자국으로 초청했습니다. 당시의 청년들이 지금 캐나다 사회의 주요 의사결정권자가 되어 일본에 호의적인 태도를 갖게 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우리도 20~30년 뒤를 내다봐야죠. 현재 한국 정부의 지원은 대학원 장학금이나 연구 인력 양성과 같은 학문적 지원에 비교적 집중되어 있는 편입니다. 이러한 지원 역시 매우 중요하지만, 동시에 교실 현장에서 한국어와 한국 문화를 좋아하며 배우고 있는 학생들을 위한 다양한 교육·체험 프로그램 및 체험형 인턴십에 대한 관심도 함께 확대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학생들이 한국을 직접 방문하거나 현지 기업에서 한국어를 써볼 수 있는 체험형 인턴십 기회가 더욱 활성화된다면, 교실에서 배운 언어와 문화를 실제 경험과 연결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Q: 한국 문화를 세계에 알리는 관점에서 이민 2, 3세대의 역할도 중요해 보입니다. 한국의 정서를 현지의 언어로 가장 정확하게 번역해낼 수 있는 이들이야말로 K-컬처 확산의 핵심 동력이 아닐까 해요.
 
=물론입니다. 교포 학생들 개인에게도 한국어 학습은 누구도 가질 수 없는 차별화된 경쟁력이 될 수 있습니다. 가정에서 자연스럽게 한국어를 접하며 성장한 '계승어 학습자(Heritage Learners)'들의 경우, 말하기는 유창한 반면 읽기와 쓰기 능력은 상대적으로 제한적인 경우가 많아요. 부모님이 만들어주신 기초 위에 이메일을 쓰고 보고서를 작성하는 '실무 언어' 역량까지 갖추게 된다면 우리 아이들에게 한국어는 글로벌 인턴십과 취업 시장에서 강력한 무기가 될 것입니다. UBC에서 '계승어 학습자(Heritage Learners)'들을 위해 고급 과정을 새롭게 설계하고 있어요. 앞으로 UBC에 진학하는 교포 학생들이 고급 한국어 수업을 통해 자신의 한국어 역량을 더욱 발전시키고, 글로벌 시대를 이끌어갈 경쟁력 있는 이중언어 인재로 성장해 나가길 기대합니다.
 
Q: 마지막으로, 교수님이 꿈꾸는 한국어 교육의 종착지는 어디입니까?
 
=한국어가 단순히 학습 도구를 넘어 자신의 삶 일부가 되고, 시간이 지나도 언제든 다시 펼쳐보고 싶은 소중한 추억으로 남는 것입니다. 학생들이 한국어라는 렌즈를 통해 세상을 더 넓게 바라보고, 타인과 깊이 연결되는 즐거움을 누리게 하는 것이 교육자로서 제가 지향하는 가장 큰 목표입니다.
 
아시아문화유산의 달 5월, K-컬처의 눈부신 성취 너머에 놓인 과제들을 함께 살펴봤다. 최호중 교수는 ‘학문으로서의 한국어’를 넘어, 삶 속에서 경험되고 연결되는 한국 문화의 힘을 강조했다. 열풍은 사라질 수 있어도 사람의 마음에 뿌리내린 언어와 문화는 오래 남는다. 결국 지속 가능한 한국학이란 관계의 온기를 이어가는 일일지도 모른다. 먼 훗날 한국어로 마음을 나누었던 경험이 누군가의 삶 속에 따뜻한 기억으로 남는다면, K-컬처의 진정한 미래는 바로 그곳에서 다시 시작될 것이다.
 
 

이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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