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닫기

[열린광장] 간병인

Los Angeles

2026.05.25 20:00 2026.05.24 23:34

  • 글자크기
  • 인쇄
  • 공유
글자 크기 조절
기사 공유
조만철 / 정신과 전문의

조만철 / 정신과 전문의

 “아야,아야.” “온몸이 다 아파.” “왜 이렇게 죽는 것이 힘이 들지?” “눈 감으면 다시 못 뜰 것 같아….”  
 
86세 어머니는 몇 분 주무시다 다시 신음을 내신다.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다 화난 표정을 짓기도 하고, 가끔은 정신이 또렷해졌다가도 헛것이 보인다고 말씀하신다.  
 
당뇨병과 고혈압,심장병이 있는 어머니는 자주 넘어지셨다. 갈비뼈에 두 번 금이 갔고, 쇄골과 엉치뼈도 손상을 입었고, 머리를 다친 후에는 기억력까지 급격히 떨어졌다. 3개월간 세 번 입원하셨다. 조카들과 동생들, 아버지, 고용간병인과 번갈아 병간호를 했다. 이 경험을 통해 나는 마지막 길을 함께 걷는 가족들의 고통과, 병원·양로원에서 환자를  돌보는 의사, 간호사, 간병인들의 수고를 절실히 느끼게 되었다.  
 
집에서 환자를 돌 보다 보면 어느 순간 밖으로 나가 몇 시간을 헤매다 발견되는 경우가  흔하다.  결국 병원이나 양로시설에 모시게 되지만, 그곳  역시 사고를 완벽히 막을 수는 없다.  물론 병원이나 양로시설 측의 부주의나 잘못이 있다면 책임을 져야 하지만, 불가피한 사고는 무조건 비난하기보다 이해와 격려가 필요하다.  
 
요즘 한인타운 양로병원은 필리핀 출신 간호사들이 대부분이다. 식사를 돕고, 목욕을 시키고, 기저귀를  갈아주는 일은 주로 라틴계 직원들이 한다. 한인 가족들의 마지막 시간을 그들이  돌보고 있는 셈이다.  
 
매년 5월엔 간호사 주간(6~12일)이 있다.앳된 모습으로 병원에  들어왔던 간호사들도 10년, 20년이 지나면 중년이 된다. 그들은 “직업병 때문에  살이 찐 것이니 산재 보상을 받아야 한다”고 농담처럼 말하고 웃지만 그 웃음 뒤에는 말 못 할 고단함이 숨어 있다.  
 
특히 양로병원은 삶과 죽음이 맞닿아 있는 처절한 현장이다. 옷이 없어졌다며 소리치는 환자, 예수님이 밖에서 기다린다며 나가려는 환자, 밤새  울부짖는 환자….
 
인간의 고통과 생명을 다루는 직업에 모두 겸허한 마음을 가졌으면 한다. 얼마 전 라틴계 간호보조사가 뇌 손상으로 움직이지 못하는 환자의 몸을  씻기고 욕창이 생기지 않도록 약을  발라주는 모습을 봤다. 간호보조사가 돌아서려는 순간, 그 환자가 입술을 살짝 내밀었다. 그러자 간호보조사는 미소를 지으며 “Thank you for the kiss”라고 말하는 게 아닌가. 그 짧은 한마디에서 인간에 대한 따뜻한 사랑을 느꼈다.  
 
조병화 시인의 ‘밤의 이야기’에는 “원래 생명은 아픔에서 시작된 거다/ 그리고 아픔을 뚫고 태어난 거다/ 그리고 그 아픔을 뚫고 다시 돌아가는 거다 /그리고 소리 없는 소리 저 소릴 들어보아라 /하나의 생명이 숨져가기 위하여 신음하는 /피울음 저 소리.” 라는 구절이 나온다.
 
양로병원에서 일하는 리셉셔니스트, 소셜워커,액티비티 운영자, 주방 근무자, 그 외 모든 분의 수고에 감사드린다.

조만철 / 정신과 전문의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