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국 사회를 뒤흔든 스타벅스 코리아의 ‘탱크 텀블러’ 논란은 단순한 마케팅 실수를 넘어, 기업의 책임과 국가 권력의 개입 범위를 다시 묻게 만든 사건이었다.
스타벅스 코리아는 ‘탱크 텀블러 세트’ 판매 행사에서 ‘5·18 탱크데이’, ‘책상에 탁!’ 등의 문구를 사용했다. 많은 이들은 5·18 광주민주화운동과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희화화하고 역사적 의미를 폄훼한 것으로 받아들였다. 정용진 회장의 사과, 대표이사와 관련 임원 해임, 미국 본사의 공식 사과까지 이어지며 기업은 책임을 인정하고 후속 조치에 나섰다.
여기까지는 시장경제와 기업윤리의 영역이다. 소비자는 비판할 권리가 있고, 기업은 그 책임을 져야 한다. 역사적 아픔을 기업 마케팅에 사용한 것은 의도와 관계없이 부적절했고, 그에 대한 사회적 비판 역시 자연스러운 결과였다.
문제는 그다음에 있다. 기업이 이미 사과와 문책 인사까지 진행한 상황에서 국가 권력이 직접 나서 강도 높은 언어로 기업을 공격하는 모습은 또 다른 우려를 낳았다. 정부는 법과 제도를 통해 기준을 세우고 질서를 유지해야 한다. 그런데 감정적 수사와 정치적 언어가 앞서게 되면 민주주의 사회는 쉽게 또 다른 갈등의 장으로 변질될 수 있다.
이번 사태와 관련해 이재명 대통령은 해당 기업을 “저질 장사치의 비인간적 막장 행태”, “패륜 행위”라는 거친 표현으로 비판했다. 기업의 부주의는 비판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대통령의 언어는 개인의 분노와 다르다. 대통령의 한마디는 단순한 의견이 아니라 시장에 영향을 주고, 여론을 움직이며, 사회 전체에 강력한 신호를 보낸다. 자칫 편 가르기의 언어가 될 경우 국민통합에도 상처를 남길 수 있다. 그렇기에 대통령의 공적 언어는 정당성만큼이나 절제와 균형이 요구된다.
민주사회에서 권력은 도덕적 심판자가 아니라 법과 제도의 관리자여야 한다. 잘못을 지적할 수는 있지만, 대중의 갈등과 분노를 직접 증폭시키는 방식은 또 다른 부작용을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정부 부처와 공공기관, 일부 단체들까지 불매운동에 동참하는 모습은 자유시장경제 체제에서 국가 권력이 어디까지 개입해야 하느냐는 질문을 던진다.
더 우려되는 것은 이런 거대한 정치적 공방 속에서 가장 먼저 피해를 보는 이들이 현장의 평범한 노동자들이라는 점이다. 본사의 마케팅 실수와 정치권의 공방 사이에서 매장 직원들은 매출 하락으로 인한 일자리 감소를 우려하고 있다. 거대한 담론 속에서 가장 약한 이들이 먼저 흔들리는 현실은 늘 반복됐다.
기업의 실수는 비판받아야 한다. 그러나 대통령의 언어와 정부 관료들의 메시지가 시장 전체에 불필요한 불안과 왜곡된 신호를 줄 수 있다는 점도 함께 경계해야 한다.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는 감정이 아니라 법과 원칙 위에서 작동해야 하기 때문이다.
한인들은 이런 원칙에 익숙하다. 기업이 실수하면 소비자가 불매로 응답하고, 시장이 판단한다. 정부 권력이 특정 기업을 공개적으로 직접 압박하는 모습에는 익숙하지 않다.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는 권력의 선의만으로 유지되지 않기 때문이다. 권력 역시 절제될 때 건강한 민주주의가 가능하다.
이번 스타벅스 논란이 남긴 진짜 질문은 단순한 마케팅 실패가 아니다. 기업의 책임은 어디까지인가. 권력의 개입은 어디까지 허용되어야 하는가. 그리고 대통령의 언어는 어디까지 절제되어야 하는가. 이것이 핵심이다.
민주주의는 분노만으로 성숙하지 않는다. 책임과 절제, 법치와 통합이 함께 갈 때 비로소 건강한 사회가 된다. 이번 스타벅스 사태는 우리에게 다시 묻고 있다.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앞에서, 권력의 언어는 어디까지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