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들의 둥지가 가득해졌다 천적을 피해 높은 곳에 튼 둥지 안에 새끼들의 입만 보인다 엄마 새는 배고플 틈 없이 바쁘다 하루에도 수십번 드나들며 먹여도 배고픈 새끼들의 입 당연한 것 같으면서도 당연하지 않은 엄마의 몸짓 고단함 뒤로 흐르던 엄마의 외마디 난 괜찮아. 라고 삶 안에서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얼마나 될까 김경희글마당 고백
2024.07.25. 17:52
한인들 마음이 아프다. 자살로 삶의 힘겨움을 벗어나려는 한인들이 캘리포니아주에서만 한 해 수십 명씩 나온다. 〈본지 2월 15일자 A-1, 4면〉 대안은 없을까. 정신건강 전문가들은 한인들에게 “극단 선택은 절대 대안이 될 수 없다”고 강조하고 또 강조한다. 그레이스 박 한인타운청소년회관(KYCC) 클리닉서비스 매니저는 “자살 충동을 느끼는 사람 대부분은 사실 진심으로 죽고 싶어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더 이상 희망이 없다’고 느낀 나머지 대안을 찾지 못한다”며 “현재의 고통을 벗어날 유일한 방법이 자살밖에 없다고 느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LA카운티 정신건강국(LACDMH) 김재원 정신건강 트레이닝 코디네이터도 “최악의 상황인 분들과 대화해보면 ‘지금 문제만 해결되면 살아갈 의미와 희망이 있다’는 모습을 보인다”고 말했다. ■마음 표현과 경청 자살을 생각하고 실행에 옮기려는 사람 대부분 사전에 위험신호를 보인다. 이 신호는 “나를 살려달라”는 외침이다. 자살을 실행에 옮기려는 이들에게 나타나는 공통점은 비슷하다. LACDMH에 따르면 자살위험 직접 신호는 “죽고 싶다. 모든 것을 끝내겠다. 살아갈 힘이 없다. 그동안 고마웠다”와 같은 말을 자주 하는 모습이다. 행동으로 보여주는 신호는 소중한 물건을 남에게 준다. 가족이나 사랑하는 이에게 “더 잘해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말을 한다. 삶의 목표 상실 및 자포자기 고립감을 표현한다. 사람들과 관계를 멀리한다. 정신과 전문의에 따르면 ‘우울증, 양극성장애, 불안 장애, 약물중독, 과도한 스트레스, 큰 정신적 충격’은 자살 충동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특히 중증 우울증이나 자살 생각에 빠져 있을 때는 ‘약물이나 술’을 멀리해야 한다. '약물과 술'로 스트레스를 해소하면 충동성이 높아져 자살 위험이 높다고 한다. 정신건강 상담전문가는 우울증 또는 자살 전조증상을 겪는 당사자는 내면의 아픔을 ‘적극 표현’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평소 마음을 나누고 속을 털어놓을 수 있는 ‘정서적 지지그룹’을 만드는 것도 좋다. 김 코디네이터는 “자살을 생각할 만큼 삶이 힘들 때 고통을 누군가에게 이야기하면 ‘끓어 오르는 냄비 뚜껑을 열어 열을 식히는 효과’처럼 극심한 고통을 줄일 수 있다. 도움받는 가장 빠른 길은 마음속 어려움을 호소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자성 정신과 전문의(LA)도 “현재 본인이 처한 힘든 상황을 전문가 등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하는 시도가 가장 큰 ‘관문’이자 상황 개선 가능성의 순간”이라고 강조했다. 이때 가족, 친구와 지인의 관심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평소와 다른 모습을 보이거나 우울해 보이는 가족이나 친구에게 ‘혹시 자살을 생각하느냐’고 묻고, 경청한 뒤 도움을 줘야 한다.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은 주변의 관심과 따뜻한 손길을 가장 원해서다. ■대화·상담·약물치료 실제 본지 한인사회 마음건강 설문조사(1월 12일~22일 진행) ‘죽고 싶은 생각이 들 때 가장 필요했던 도움’ 질문에서도 응답자 217명 중 절반 가까이가 가족과 주변의 관심(27%) 및 주변인과 대화(18%)를 꼽았다. 경제적 지원(25%), 기타(20%)상담 및 치료 관련 정보(10%)가 뒤를 이었다. 응답은 잠자기,스스로 극복, 성경읽기, 종교활동, 혼자 참기 등이다. 〈그래픽 참조〉 정신건강 전문의는 가족과 지인은 자살 충동을 호소하는 이의 말을 ‘유심히’ 듣고 ‘대화’를 나누라고 당부했다. 자살을 생각하는 당사자가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충분히 느끼게 해주는 자세가 중요하다. 김 코디네이터는 “특히 가족은 서로의 아주 작은 변화도 잘 알아볼 수 있는 가장 가까운 사이”라며 “가족구성원이 힘들어할 때는 작은 변화에도 민감하게 반응해야 한다. 힘든 일도 얼마든지 이야기하도록 ‘무비판적인 자세’로 대해주면 좋다”고 말했다. 또한 가족이나 주변인은 대화를 요청한 이에게 ‘자살을 언제부터 생각했는지, 구체적인 실행방법도 알아봤는지’ 등을 물어본 뒤, 전문가 상담을 권해야 한다. 상황에 따라 약물치료로 빠른 효과를 볼 수 있다고 한다. 김 정신과 전문의는 “(자살 충동 등) 힘든 상황을 수치나 실패로 여겨선 안 된다. 전문가와 이야기를 통해 상황을 객관화하면, 현재 처한 상황을 개선할 의지와 희망을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정신건강 무료상담 제공 본지 설문조사 응답자 중 약 57%는 정신건강 상담이나 지원단체 관련 정보를 ‘모른다’고 답했다. 언어장벽에 따른 정신건강 서비스 접근 불편, 한국어 사용 전문가 정보 부족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현재 여러 한인 비영리단체와 LACDMH에서는 한인 우울증과 자살예방을 위한 전문가 무료상담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특히 LACDMH는 2010년부터 한인 자살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자살 예방 및 중재기술을 위한 훈련 ▶자살예방 심화 과정 ▶찾아가는 자살예방 세미나([email protected]) 등을 한국어로 제공한다. LA한인타운에서는 정신건강센터(510 S Vermont Ave)도 운영하고 있다. LACDMH 핫라인(800-854-7771, 한국어 6번), 한인가정상담소(213-389-6755), 이웃케어클리닉(213-235-1210), 한인타운청소년회관(213-365-7400), 전국 자살방지 핫라인(988)은 우울증 등 말 못할 어려움에 부닥친 이들에게 정신건강 전문가 상담을 무료로 제공한다. 사설〉LA카운티 정신건강국(CDMH) 김재원 코디네이터가 한인들에게 자살중재훈련을 하고 있다. [LA카운티 정신건강국 제공] 관련기사 "성공 강박 벗어나 미국식 개방적 사고 즐겨야" "죽고 싶다" 고백은 "살려 달라"는 외침 한인 극단선택 비율, 아시안 중 최다…한인 극단 선택 실태·대책① [연도별 한인 극단적 선택 현황 분석] 아시아계의 2배…성공·체면 중시가 문제 키워 김형재 기자 [email protected]고백 외침 정신건강 상담전문가 la카운티 정신건강국 정신건강 전문가들
2024.02.15. 19:08
그 시절은 6·25전쟁 직후라 모두 가난하고 어려운 시기였다. 나는 고향의 모교인 초등학교로 발령받았다. 처음 시작하는 직장생활이라 설렘과 두려움의 기억이 까마득한 데 오랜 세월이 지나갔건만 추억은 생생하게 그대로 남아 있다. 학교 건물은 폭격으로 반 이상이 폐허가 되었고 넓은 강당과 교실 10여 개만 남아 있을 뿐이었다. 궁여지책으로 강당을 여섯 개의 교실로 나누었다. 그중 한구석에서 학생들은 송판에 네 다리를 세운 조그만 책상을 각자 가져와서 공부했다. 찬 마룻바닥에 앉아 오들오들 떨면서 매서운 추운 날씨였지만 빛나는 눈으로 나를 맞아 주었던 3학년 1반 남아들이었다. 학생들의 손등은 터서 갈라지고 발가락은 동상에 걸려 벌겋게 부어 있는 가여운 아이들이었다. 그래도 잘 참고 견디며 열심히 공부하는 그들이 대견했다. 그중에는 산 넘고 들길을 1시간 이상 걸어온 학생도 있었다. 전쟁 중 부모를 잃고 보육원에서 지내는 학생도 3명이 있었다. 하루는 가정방문을 핑계 대고 보육원을 찾아갔다. 그리고는 3명의 학생이 지내는 모습을 보았다. 시설은 너무도 비참했다. 사랑에 굶주린 아이들은 웃음을 잃고 양지바른 곳에서 병든 병아리처럼 웅크리고 않아 아무 표정이 없었다. 그들은 배고픔에 먹을 것만 신경 쓰고 눈치를 보는 듯했다. 그 당시 보육원은 구호물자에 의존하여 하루하루를 지탱하고 있었다. 가여운 아이들, 어떻게 할 수 없을까‘ 하는 마음은 있는데, 나에게는 아무런 힘이 없는 게 안타까웠다. 내가 제일 힘들었던 일은 가난한 학생들에게 매월 기성회비(학교 운영비)를 담임이 독촉하여 걷는 일이었다. 말할 수가 없었다. 그 탓에 우리 반이 항상 꼴찌였다. 무상으로 교육할 수 있으면 좋을까 싶었다. 그런데 형벌처럼 전교 학급에서 수납된 기성회비는 나에게 다 가져왔다. 서무과장에게 매일 통계를 내어 돈과 함께 보고하는 업무를 내게 맡으라고 한 것이었다. 그러다 아찔한 사건이 벌어졌다. 받은 기성회비를 교실에 두고 자리를 비운 사이 돈이 없어진 것이었다. 가슴은 두근두근 속만 태우고 조심하지 않은 나의 실수라 누구에게 말도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진땀을 흘리며 친지께 사정하여 겨우 해결했다. 안도의 한숨을 쉬고 서산을 바라보니 저녁노을이 붉게 물들어 있었다. 노을의 고운 빛깔은 나의 마음을 위로해 주었다. 삭막한 내 마음을 위로하여 주는 듯 황홀하고 포근하게 가슴 속 깊은 곳에 다가왔다. 그런데 어려움 속에서도 항상 웃는 얼굴의 똑똑한 반장, 조윤모가 퇴근하는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고개를 들지 못하는 반장과 함께 집으로 오는 동안 그의 이야기를 들었다. “강원도에서 피난 나올 때 부모를 잃고 작은 엄마와 둘이 삽니다. 작은 엄마는 돈 벌어 오라며 밥도 안 주고 매질까지 해요.” 윤모는 절박하게 돈이 필요한 사정을 털어놓았다. 어린 것이 얼마나 힘들어할까, 마음이 쓰렸다. 나는 저녁을 먹이고 위로하며 용기를 잃지 말라고 했다. 그의 표정을 보니 할 말이 있는듯한데 눈치만 보고 망설이다 말을 못하고 돌아가는 것이 눈에 띄었다. 근무했던 4년간 많은 사연을 뒤로하고 대전에 있는 초등학교로 옮기며 고향을 떠났다. 10여 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나는 결혼을 하고 엄마가 되었다. 하루는 해군 제복 차림의 말쑥한 군인이 집에 찾아왔다. 어떻게 왔을까? 그는 내게 정중히 인사를 하고는 “선생님. 저 조윤모입니다”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상상도 못 한 일이었다. 그보다는 바쁜 시간을 쪼개어 잊지 않고 찾아온 제자가 고맙고 반가웠다. 제자는 단정히 앉아 망설임 없이 “용서해 주세요. 제가 선생님의 돈을 훔쳤습니다” 하며 눈물을 흘리는 게 아닌가. 제자가 그 일로 인해 오랜 세월 얼마나 힘들었을까 생각하니 가슴이 찡했다. 그러면서 제자의 진정한 고백에 나도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나는 제자를 안아주며 흐르는 눈물을 닦아주었다. 용서하는 기쁨, 용서받는 기쁨, 그 순간의 감동을 지금까지 잊을 수 없다. 모진 세파를 겪으며 참고 견디었으니 잘 살기를 마음 깊이 빌어 주었다. 어려운 시절 만고풍파 겪으며 살았을 불쌍한 아이들, 그는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이제 이순을 넘긴 노년이 된 제자들이 궁금해진다. 어떻게 변해 있을까? 우연히 길거리에서 마주쳐도 서로 알아보지 못하고 지나가겠지 싶다. 만남과 헤어짐은 우연이 아니고 깊은 인연이 있다 생각한다. 제자는 진심으로 양심 고백을 할 수 있는 심성을 가졌으니 틀림없이 올바르게 살고 있을 거라 믿는다. 정직하게 정도를 걸어온 사람만이 마음의 평화와 축복을 받을 것이리라.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 없는 삶이 몇이나 있으랴. 잠시 있다 가는 인생길, 많이 사랑하고 아름다운 발자취 남기고 싶다. 이복자 / 수필가수필 제자 고백 양심 고백 강당과 교실 반장 조윤모
2024.01.25. 19:52
우는 걸 들키면 안 된다고 눈물은 혼자만의 몫이라고 누가 그러던가요 이유 묻지 않을게요 늘 곁에 있어 줄게요 사는 게 눅눅하게 느껴질 때 가슴 한구석에 비가 내릴 때 아무 걱정 말고 마음껏 우세요 제가 있는 한 당신은 그래도 됩니다 황박지현 / 시인시 제습기 고백 가슴 한구석
2022.06.09. 18:52
너와 나 나뉘어서 멀리를 바라본들 다음의 둘보다야 더 잘게 쪼개어져 우리 둘 지쳐간 이승 강물로 합치려나. -한국현대시조대사전 부부는 운명의 동행 부부란 한 곳을 바라보고 함께 가는 사람이다. 이 동행은 이승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다. 마침내 강물로 합쳐질 운명의 동행이 부부라고 하겠다. 성춘복 시인은 1959년 현대문학으로 데뷔한 이후 한국문인협회 이사장 등을 지내며 문단의 중심을 지켜온 분이다. 1971년 천상병 시인이 실종됐을 때, 선생은 동료 문인들과 함께 ‘새’라는 시집을 발간했다. 천 시인이 부디 살아 있기를 바라는 기원의 시집이었다. 동백림 간첩단 사건에 연루돼 고초를 겪어 심신장애를 겪고 있던 동료를 위해 시집은 사육배판 초호화 장정으로 꾸며졌다. 이 시집 발간이 보도됨으로써 무연고자로 서울시립정신병원에 수용돼 있던 천 시인이 발견됐다. 성 시인은 십시일반 모금을 하여 병원에서 조금이라도 나은 처우를 받을 수 있도록 주선했다. 그때까지 천상병은 평론가로 더 알려져 있어 시집 ‘새’의 발간으로 많은 시를 쓴 것을 알게 됐다고 허영자 시인은 회고한다. 유자효 / 시인시조가 있는 아침 성춘복 고백 성춘복 시인 천상병 시인 시집 발간
2021.10.27. 19:16
너와 나 나뉘어서 멀리를 바라본들 다음의 둘보다야 더 잘게 쪼개어져 우리 둘 지쳐간 이승 강물로 합치려나. - 한국현대시조대사전 시인의 따뜻한 우정 이야기 부부란 한 곳을 바라보고 함께 가는 사람이다. 이 동행은 이승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다. 마침내 강물로 합쳐질 운명의 동행이 부부라고 하겠다. 성춘복 시인은 1959년 현대문학으로 데뷔한 이후 한국문인협회 이사장 등을 지내며 문단의 중심을 지켜온 분이다. 1971년 천상병 시인이 실종됐을 때, 선생은 동료 문인들과 함께 『새』라는 시집을 발간했다. 천 시인이 부디 살아 있기를 바라는 기원의 시집이었다. 동백림 간첩단 사건에 연루돼 고초를 겪어 심신장애를 겪고 있던 동료를 위해 시집은 사육배판 초호화 장정으로 꾸며졌다. 이 시집 발간이 보도됨으로써 무연고자로 서울시립정신병원에 수용돼 있던 천 시인이 발견됐다. 유자효 시인시조가 있는 아침 성춘복 고백 성춘복 시인 한국현대시조대사전 시인 천상병 시인
2021.10.24. 17: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