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가 시작되면 우리는 흔히 새로운 목표와 결심을 이야기한다. 더 건강해지겠다는 다짐, 더 열심히 살겠다는 계획 등이다. 그러나 필자는 새해를 맞아 개인적인 다짐보다 책임이라는 말을 먼저 떠올리게 된다. 이웃으로서, 동반자로서, 그리고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우리가 서로에게 어떤 책임을 지고 있는지에 대한 질문이다. 지난해는 정신 건강과 웰빙이 결코 특정 개인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문제라는 사실을 보여준 한 해였다. 한 사람의 건강한 삶이 미치는 영향은 개인에 그치지 않고 가족과 이웃, 나아가 공동체 전체로 확장된다. 반대로 누군가 도움을 받지 못한 채 고립이 된다면, 그 여파 역시 우리 모두에게 돌아온다. 공동체를 지탱하는 보이지 않는 연결의 실이 조금씩 느슨해지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실은 지난해 한인가정상담소(KFAM) 활동에서 수치로 확인된다. 정신 건강 서비스 이용은 전년 대비 37%가 급증했고, 전문 상담과 치료 요청자 가운데 약 40%가 남성으로 나타났다. KFAM의 43년 역사상 가장 높은 비율이다. 이 숫자들은 단순한 통계가 아니다. 도움을 요청하는 데 따르던 두려움과 주변의 시선에 대한 우려가 서서히 무너지고 있으며, 자신의 마음 상태를 돌보는 것이 용기 있는 선택이라는 인식이 퍼지고 있다는 분명한 신호다. 그동안 한인 사회는 ‘참는 게 미덕’이라는 인식이 지배적이었다. 힘들어도 말하지 않고, 아파도 버티며, 가족과 공동체를 위해 본인의 이익은 뒤로 미루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졌다. 그러나 침묵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오히려 상처를 깊게 만들 뿐이다. 진정한 회복은 누군가에게 손을 내밀 때, 그리고 그 손을 잡아주는 사람이 있을 때 시작된다. 한인 가정들은 2026년에도 여러 겹의 압박을 맞이할 것으로 보인다. 치솟는 생활비와 불안정한 경제 환경, 청소년과 노년층에서 많이 생기는 정신 건강 문제, 의료와 사회복지 시스템의 변화, 그리고 이 모든 것을 혼자 감당해야 하는 이민자라는 부담감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신적 웰빙을 사치로 취급하는 사회는 결국 더 큰 비용을 치르게 된다. 그래서 필자는 2026년이 정신 건강을 ‘선택 사항’이 아닌 ‘기본 권리’로 인식하는 해가 되기를 바란다. 마음을 돌보는 일은 약함의 표시가 아니라 자기 자신에 대한 존중이며, 신체 건강만큼이나 중요하게 다뤄져야 할 삶의 일부다. 우리가 아프면 병원을 찾듯, 마음이 지칠 때 도움을 요청하는 것도 자연스러워져야 한다. 이러한 문제의식 속에서 KFAM은 2026년의 분명한 방향을 세웠다. 정신 건강과 가족 웰빙을 강화하고, 안전하고 사랑이 넘치는 가정을 필요로 하는 한인 및 아시아·태평양계(API) 아동들을 위한 입양과 위탁가정 지원을 확대하며 학교와 지역사회 단체들과의 협력도 더욱 강화하는 것이다. 위기는 대응도 중요하지만 예방이 더 중요하다. 부모 교육과 청소년 프로그램, 지역사회 웰빙에 대한 투자는 가정이 무너지기 전에 공동체가 할 수 있는 가장 현명한 선택이다. 2026년 새해를 맞는 필자의 바람은 단순하지만 중요한 것이다. 누군가 도움이 필요할 때 보이지 않는 존재로 여겨지지 않고, 부끄러움이나 고립 속에 혼자 남겨지는 사람이 없는 공동체가 되는 것이다. 도움을 요청하는 것은 실패가 아니라 회복을 향한 첫걸음이다. 우리가 연민과 관계의 유지, 그리고 서로에 대한 관심을 선택한다면, 한인 가정들은 버티는 삶을 넘어 진정으로 건강하고 존엄한 미래를 함께 만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캐서린 염 / 한인가정상담소 소장가정 행복통신문 공동체 정신 정신 건강 정신적 웰빙 공동체 전체
2026.01.26. 19:17
2026년 새해가 밝았다. 새로운 해는 언제나 기대와 다짐을 안겨준다. 동포사회에 새해는 공동체의 방향을 다시 돌아보고 미래를 준비하는 소중한 계기이기도 하다. 이민의 역사 속에서 수많은 도전과 성취를 이뤄온 동포사회가, 새해에는 더욱 성숙하고 단단한 공동체로 나아가기를 소망하는 이유다. 새해를 맞아 세대 간 이해와 연대가 한층 깊어지기를 기대해본다. 연대는 함께하는 경험과 공정한 구조 속에서 형성된다. 1세대의 헌신과 희생 위에 1.5세와 2세대의 창의성과 전문성이 더해질 때, 동포사회는 다음 단계로 도약할 수 있다. 언어와 문화의 차이를 넘어 서로의 경험을 존중하고 배움으로 이어간다면, 세대 간의 간극은 갈등이 아니라 다양성의 힘으로 전환될 수 있을 것이다. 세대 간 협력의 장을 넓히고, 어느 한쪽의 희생을 전제로 하지 않는 공정한 구조가 마련될 때 신뢰와 연대는 지속 가능해진다. 1세대는 안정된 삶의 존엄을 지키고, 1.5세와 2세대는 미래를 설계할 기회를 가져야 한다. 한쪽의 희생에 기대는 연대는 오래갈 수 없다. 세대 갈등은 가치의 대립이라기보다, 각 세대가 살아온 시대적 조건의 차이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그렇기에 가정과 커뮤니티 차원의 이해와 소통이 더욱 중요해진다. 물론 한인회를 비롯한 여러 동포 단체들이 이러한 역할을 감당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 언론과 SNS의 책임도 점점 커지고 있다. 디지털 공간은 이제 단순한 정보 전달을 넘어, 공동체를 이어주는 중요한 통로가 되었다. 언론은 1세대의 경험을 젊은 세대의 언어로 풀어내고, 차세대의 목소리를 공동체 전체의 담론으로 확장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디지털 플랫폼과 전통 매체가 서로를 보완하며 세대 간 가교가 될 때, 동포사회는 새로운 통합의 가능성을 보여줄 수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우려스러운 현실도 존재한다. 일부 1세대 공동체가 SNS를 통해 전달되는 한국 정치에 깊이 매몰되면서, 이념적 대립과 갈등의 언어가 일상 속으로 스며들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정치 담론이 숙성된 토론이 아니라, 갈등의 구조로 거의 비판 없이 수용되며 공동체의 일상을 잠식하고 있다는 점이다. 차세대에게 1세대는 거울과 같은 존재다. 그러나 이미 1세대 내부는 정치적 성향에 따라 갈라져 있다. 한국에서 보던 진영 논리가 이곳에서도 재현되며, 사람을 줄 세우고 침묵을 강요하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그 과정에서 동포사회가 오랫동안 쌓아온 신뢰와 연대는 적지 않게 훼손되었다. 카카오톡을 통해 반복 재생되는 정치적 프레임에 많은 에너지가 소모되고 있는 현실도 부인하기 어렵다. 물론 조국의 정치에 관심 갖고 의견을 표현할 자유는 존중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 자유가 공동체를 분열시키고, 차세대에 부정적인 메시지를 남긴다면 우리는 한 번쯤 멈춰 서서 돌아볼 필요가 있다. 이곳은 민주주의와 자유시장 경제를 토대로 성장한 사회다. 이러한 환경에서 한국 정치의 극단적 갈등 구조가 그대로 공감되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우리는 단순한 정치 소비자가 아니라, 멀리서라도 성찰과 판단의 책임을 지는 존재여야 한다. 공동체 철학자 찰스 테일러는 정체성이란 관계와 공동체 속에서, 곧 ‘인정의 공간’에서 형성된다고 말한다. 서로 인정하지 못하는 사회는 결국 스스로를 잃게 된다. 정치적 입장이 다르다는 이유로 상대의 애국심을 의심하고 인격을 단정하며 대화를 거부하는 순간, 우리는 공동체가 아니라 이념으로 분절된 군중에 머무르게 된다. 그 모습은 고스란히 차세대의 기억에 남아 또 다른 갈등의 씨앗이 된다. 새해에 다시 묻는다. 우리는 어떤 공동체가 되고자 하는가. 그 답은 서로를 대하는 태도 속에 있다. 다름을 인정하며 토론 속에서 진실을 찾으려는 자세가 공동체의 품격을 결정한다. 2026년 새해의 바램은 분명하다. 차세대와 더 많이 소통하고, 더 오래 관계를 이어갈 수 있는 공동체가 되는 것이다. 우리가 차세대에 남겨줄 유산이 된다는 사실을 기억하며, 성찰과 절제 속에서 새로운 한 해를 시작하기를 소망한다. 박철웅 / 일사회 회장열린광장 한인사회 공동체 철학자 공동체 전체 한국 정치
2026.01.06. 18:55